한민족과 관련하여 바스크지역의 특수성은 이미 널리 알려진 주제이다.
언어가 인도유럽어가 들어 오기 전의 교착어라 하여, 신용하 전 서울대 교수는 고조선의 지역이 아닌가 하였다. 고인돌 (Dolmens)도 많이 있다.
필자는 이미 이 지역이 한민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추정을 하였다.
Dolmen of Sorginetxe in Basque (source : Wikipedia)
Basque Women (정어리 생선을 머리에 이고 이동하고 있다) (source : Wikipedia)
이 지역을 포함한 이베리아반도를 점하였던 서고트왕국(AD 412-720)이 고구려라고 추정한 바 있다. (필자의 아래 글 '고트족은 고구려이다' 참조). 고트족은 당시 로마제국의 영토였던 프랑스 중남부지역과 이베리아반도지역을 점령했다. 이 시기가 한성백제를 망하게 한 고구려 장수왕 시기이다. 훈족의 아틸라는 이 시기에 프랑스 서북부에서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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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서고트왕국(고구려) 땅을 흡수한 나라가 이 지역의 아랍 사라센세력, 우마이야 왕조, 즉 통일신라라고 필자는 추정했다. 서고트왕국이 망할 때, 지배층들은 바스크지역으로 많이 피신했다고 위키피디아자료는 말하고 있다.
근래에는 신라, 후백제, 고려가 다투었던 강주(康州)지역이 이베리아반도에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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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백제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횡악(橫岳)이 피레네 산맥이 아닌가 추정했다.
그러나 아직 백제 온조왕이 정복한 마한의 지역에서 이베리아반도가 포함되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없다. 고구려의 협보가 해안을 따라 내려가 남마한에 이르러 왕이 되었다는 기록을 고려하면, 북아프리카 지역이 남마한이 된다. 북아프리카 주민들은 유럽에서 이베리아반도 해안을 따라 남하한 것으로 서구 사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북아프리카가 남마한이면, 이베리아반도는 마한이 되는 것이 순리이다.
또한 한성백제를 멸한 고구려가, Gaul지역과 이베리아반도의 로마제국을 흡수한 서고트왕국이라 한다면, 백제의 땅은 프랑스 중남부지역과 이베리아반도가 된다. 따라서 마한이 이 지역을 포함할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고구려 문자왕 시기의 한성공격 (AD 507) 실패로 횡악으로 물러났다는 것을, 고트족 역사와 비교하여, 백제의 한성이 프랑스의 Clermont Ferrand이라 추정했다.
한편 마한의 서쪽에 큰 섬인 주호국이 있다고 했다. 이태리반도를 마한으로 보면 서쪽의 큰 섬은 코르시카섬이나 샤르데니아섬이 된다. (필자의 아래 글, '마한은 이태리반도를 포함하였을까?' 참조). 반면, 프랑스와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마한의 영역으로 포함한다면, 서쪽의 큰 섬은 영국이나 아일랜드가 된다. 백제사에서 왕들은 서쪽의 큰 섬에서 사냥을 하곤 했다고 삼국사기 기록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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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프랑스와 이베리아 반도가 모두 마한이 된다면 그리고 이를 점령한 온조의 백제가 된다면, 이 당시의 중국인 후한(AD 25-220)의 위치가 없어진다. 물론 전한(BC 220-AD8)과 후한 시기 사이에 백제의 온조왕(BC 18 - AD 28), 고구려의 추모왕(재위 BC 37- BC 19), 그리고 신나라의 왕망(AD 9-23), 그리고 신라의 박혁거세(재위 : BC 57-AD 4)가 있었지만, 후한의 역사가 삼국사기에도 존재하는 바, 이를 부정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재야사학자 이중재님은 중공 사학자에게 후한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고 고구려가 아니냐는 언급에 중공 사학자들이 아무 대꾸를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있다. 현재 중공의 지역의 유물로 본다면, 고구려의 역사는 있어도 후한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기에 중공의 사학자는 반박을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지역에서의 후한의 역사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고구려와 후한의 전쟁역사가 현토 등 지역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한 역사가 마한의 위치와도 관계되는 것이다. 마한의 거수국인 해두국은 프랑스 Gaul지역의 동북부 Aedui로 보인다. 즉 마한의 영역이 이 지역까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바이킹의 역사를 보면서 북해에 있는 여러 도서 (Faroe island, Shetland islands)에서 중국 사서에 기록된 바와 같은 마한의 집모양 모습을 발견하고, 바이킹의 선조가 마한과 관련 있나 하였다. (아래 그림 및 필자의 아래 글 참조). 그래서 마한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The preserved ruins of a wheelhouse and broch at Jarlshof, described as "one of the most remarkable archaeological sites ever excavated in the British Isles" (in Shetland islands) (sourc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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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에서는 프랑스, 이베리아반도, 영국 지역까지 모두 로마의 영역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사와 한국사를 모두 묶어 놓은 것 같은 판단이 들면서도, 고구려의 추모왕(Julius Caesar?)이나 백제의 온조왕(Octavianus, Augutus 황제?)이 보다 광범한 지역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필자는 백제의 서해의 요충지인 관미성 전투지역이, 과거에 크림반도가 아닌가 추정했지만, 지금은 코르시카, 샤르데냐섬 지역 또는 아일랜드 근처의 하나로 생각한다. 위의 마한의 영역에서 오는 혼란과 같은 연유에서 아직 확신이 없는 것이다.
광개토태왕이 정벌한 마한의 54개 성 중에 가루성이 있는데, 아일랜드에 Carlow castle이 있는데, 고구려의 성곽 모습을 하고 있다. 광개토태왕이 정복한 루매성은 튀르키예에 있는 Rumeli castle로 판단된다.
즉 브리튼지역이나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프랑스, 발칸반도, 튀르키예에 고구려의 성곽모습의 성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고조선시대에서부터 이 지역을 점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한의 영역일 수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광태토태왕이 이들 지역을 정벌했다는 이야기이다.
필자는 켈트족이 고조선의 일부가 아닌가 한다. 서유럽의 많은 지역을 켈트족이 점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미케네문명 기간(BC 1600- BC 1100)이 중국의 상(商)나라 기간이다. 그런데 미케네문명 시기에 이들은 브리튼지역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이 위키피디아 자료에 나온다. 상나라는 고조선의 제후국 중의 하나이다. 즉 고조선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상나라는 요수인 프랑스 론강의 좌측에 있었고, 그리스의 미케네문명이나 같은 기간의 이집트문명 모두 고조선 문명이 아닌가 한다. 미케네문명에서 발견되는 무덤속의 사자(死子)의 황금가면이 근래에 중공 내륙지역에서 발견된 것은, 상나라의 동방행이라기 보다,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라 해석된다. 즉 중공지역에서 발견되는 소위 상나라의 갑골문자는 고조선의 갑골문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공지역에서 발견된 병마용갱도 진시황의 무덤이 아니라, 단군조선 시기의 무덤일 수 있다고 본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있고, 상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구이(九夷)의 색갈을 구비한 장수일 수 있고, 이들을 통솔하는 고조선의 어느 단군왕일 수 있는 것이다. (아래 자료 참조)
청동기 시기의 사륜마차가 발견된 것도 이를 강력히 시사해 준다. 동아시아에서는 BC 1600년경에 청동기 사륜마차가 전해진 것으로 서양사가들은 유물을 통해 추정한다. (아래 지도 참조)
사륜마차 (chariots)의 확장 시기 (기원전) (자료 : wikipedia)
Approximate historical map of the spread of the spoke-wheeled chariot, 2000–500 BCE
필자는 상나라 시기에 아메리카 멕시코(을멕문명)까지 진출했다는 추정을 했는데 (아래 글 참조), 상나라가 아니라 고조선문명이라고 판단된다.
즉 고조선은 유라시아 전체 그리고 아메리카 지역까지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즉 강력한 해상이동 수단을 가지고 있고 그를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의 흔적을 찾아 유민들을 구하려는 목표를 가졌던 광개토태왕도 또한 강력한 수군을 이용하여 유라시아 나아가 북아메리카까지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추는 유물이나 전통적 음악이나 춤, 관습 등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바스크지역의 전통리듬이 우리의 국악 리듬과 같은 면을 발견한 것은 또 하나의 증거라 생각되어 기쁘다.
바스크지역의 전통 음악 리듬
Txalaparta – Traditional music from Basque Country
3단 또는 5단의 나무로 만든 Txalaparta라고 하는 악기이다. 그리고 막대기로 이들을 두드려 장단을 연주하는데, 그 리듬이 우리의 장구나 북춤의 리듬과 너무 유사하다. 아래 설장구춤 유튜브 비디오의 6분 30초이후 빠른 템포부분을 잘 비교해 보시라.
국립국악원 토요명품공연[2015.11.14.] 07. 설장구춤(Seoljanggu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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