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필자의 글, '광개토태왕의 비문을 통한 정벌 지역 추정' 에서 추정한 것을 수정하는 글이다. 이중에서 특히 일군국, 양운국 등의 위치 추정을 수정하고자 한다. 구다천국과 구다국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수정하는 글을 올리고자 한다.
1. 일군국 : 저족, 양운국 : 강족이라는 기록 : 죽서기년, 단군세기
아래 자료에서 보면 일군국은 저족이며, 양운국은 강족이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즉 단군세기 자료에 의하면, 기원전 1289년 욕살 고등이 귀방을 공격하여 멸망 시키자, 일군국, 양운국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했다.
(자료 : 환단고기 진서론 3, 유튜브 자료 sceenshot)
(자료 : 환단고기 진서론 3, 유튜브 자료 sceenshot)
(자료 : 환단고기 진서론 3, 유튜브 자료 sceenshot)
상기 죽서기년 자료에 의하면 은나라 왕 무정이 귀방에 이긴 후, 저족과 강족이 내빈하였다고 하였다. 단군세기는 보다 자세하게, 소태단군 47년 (BC 1291)에 은나라 무정이 귀방을 공격했다고 하고, 이후 2년후 BC 1289년에는 소태단군하의 욕살 고등이 귀방을 멸망시켰다 정리하고 있다. 그러자 일군국, 양운국 사신이 조공을 바쳤다 하고 정리했다. 이는 일군국, 양운국이 은나라나 단군조선의 속국이 아닌 독립국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자료 : 환단고기 진서론 3, 유튜브 자료 sceenshot)
귀방은 흉노의 다른 이름이다. 청나라때 왕국유가 지은 '귀방곤이험윤고'에서 흉노의 명칭이 은나라때는 '귀방, 곤이, 훈죽'의 명칭으로, 주나라때는 '험윤'의 명칭으로, 춘추시기에는 '융, 적'의 명칭으로, 전국시기에는 '호'의 명칭으로 불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래 자료 참조)
(자료 : 환단고기 진서론 3, 유튜브 자료 sceenshot)
(자료 : 환단고기 진서론 3, 유튜브 자료 sceenshot)
상기 자료에서 죽서기년, 후한서, 단군세기를 비교하며, 일군국이 저족, 양운국이 강족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럼 이제 저족과 강족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보자.
2. 저족
아래 위키자료에 의하면, 저족은 흉노족 지배층이 이끌었던 티베트민족이라 한다. 그리고 중국의 서쪽 청해 주변에 거주하였다 한다. 특히 파(巴지역에 살았던 저족을 파저족이라 불렀다 한다. 그리고 강족이 근처에 있었다 한다.
"저족(氐族)은 지금의 칭하이성(靑海) 주변에 거주하였던 흉노족 지배층이 이끌었던 티베트 민족이다. 기원전 2세기경 칭하이 지역에 생활을 하며 살았다. 한족들을 )농노로 붙잡아 농업을 시켰고 한족들이 사는 곳에 칩입하여 살았지만 계속 이동하였고 한족들과는 잡거하지 않고 저족끼리 혼인하는 풍습으로 오랫동안 정체성을 지키고 살았다. 이후 선비족의 북위 이후부터 지배층에 편입되었다. 근처에는 강족(羌族)이 있었다. 파(巴) 지역에 살던 저족을 파저족(巴氐族)이라 부르기도 한다.
개요[편집]
저족은 티베트 민족이지만 흉노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저족은 양(羊)을 토템으로 하는 강족과 근본적으로는 다르다고 하며, 백적과도 다른 것으로 알려 졌다.
후한 말기, 저족 수장 아귀(阿貴)와 양천만(楊千萬)이 조조를 반대하여 공격하였으나 하후연에게 패하여 서남쪽으로 달아나 촉(蜀)에 망명하였다. 이후 저족의 5만여락(落)을 부풍, 천수의 경계지역에서 살았다.
저족은 오호십육국 시대에 흉노, 선비, 강, 갈과 함께 한족의 국가를 정복하여, 성한, 전진, 후량 등의 나라를 건국하였다. 그 중에 부견이 세운 전진은 화북을 전부 정복하기도 했으나 선비족에 의해 394년 멸망하였다.
저족 한자 성씨[편집]
중국 문헌 상 한족들은 저족들을 한족식으로 한자 성씨를 붙여 불렀다. 하지만 실제 저족 성씨가 존재했으며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다.
(자료 : 저족, 위키백과)
상기 자료를 고려하면, 저족인 일군국은 티베트족으로 포루투갈에 있었던 토욕혼족이 아닌가 한다. (아래 자료 참조). 저족은 중국의 서부, 청해 즉 바닷가에 살았다 하므로. 대서양에 접한 이베리아반도지역에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https://lostcorea.tistory.com/1730
https://lostcorea.tistory.com/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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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족
강족은 양을 기르는 양과 깊은 관련이 있는 민족이다. 주로 진나라, 한나라 시대 중국의 서쪽을 자주 침범했으며, 북강, 마강(갑골문, 은나라시대?), 월수강(越雋羌), 광한강(廣漢羌), 무도강(武都羌) (진나라시대), 서강, 동강 (한나라 이후) 등으로 불리었다.
"갑골문에 따르면 이때 강방(羌方)이라 불렀고 두 개의 큰 부락이 있어 북강(北羌), 마강(馬羌)이라 불렀다.
상나라 말에 주나라가 상나라를 공격할 때 강족을 상나라가 인신공양할 때 제물로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주나라의 세력에 가담해 이를 도왔다.[2]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해관계가 맞물려 손을 잡았던 지라 오래치 않아 다시 사이가 벌어졌고, 춘추시대 때 진(秦)나라가 발전하면서 진나라에게 밀려, 서쪽으로 이동했으며, 월수강(越雋羌), 광한강(廣漢羌), 무도강(武都羌) 등으로 발전했다.ㅇ강
진 효공 때 진나라에게 굴복했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몽염을 통해 흉노와 함께 압박을 받았으며, 한나라 초에 묵돌이 서역을 압박하고 세력이 매우 강성하자 흉노에 귀부해 한나라의 서쪽 지역을 자주 침범했다.
한나라 때에 이르러 중국을 자주 공격해 농서까지 진출했지만 강족과 흉노가 왕래하는 길을 끊어 황중 지역에서 쫓겨났다가 선제 때 이르러 흉노와 연합해 장액, 주천 등 하서 지역을 공략했지만 의거안국, 조충국 등의 공격을 받아 패했으며, 전한 말기에는 중국이 혼란하자 금성, 농서 지역으로 몰려들었고 후한 초기에 내흡, 마원 등의 공격을 받아 한나라에게 귀부와 저항을 반복하면서 한양, 안정, 농서를 정복하며 살았다.
이때부터 강족은 거주 지역에 따라 서강과 동강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삼국시대와 서진 시기에도 중국을 정복해 관중 지역에 거주했으며, 오호십육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강족이 중국 지역을 정복하여 건국한 국가인 후진이 건국되었다.
토번의 압박을 받아 감숙, 영하, 섬서 북쪽 일대로 옮겼다가 후에 하주로 옮겨갔으며, 북송 때 강족들이 한족들을 정복하면서 한족들을 피지배민족으로 둔 서하국이 건국되었고, 서하국은 철저히 몽골보다 더욱 대부분의 한족들을 노예로 만들어 농락한 국가였다. 서하를 세운 강족의 일파인 탕구트족이 있다......
후한 초기의 허신이 지은 설문에 따르면 서융 가운데 양을 목축하는 사람들로 사람 인(人)과 양 양(羊)의 뜻을 따른다고 했다.
후한 말의 응소가 지은 풍속통의에 따르면 강족은 주로 양을 기르기 때문에 강(姜)이란 글자는 양(羊)의 뜻에 따르고 그 곳 사람들을 이 때문에 강족이라 불렀다고 하며.....
(자료 : 강족, 나무위키,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티베트, 토욕혼, 토번, 강족)
양운국 즉 강족은 백양국 등이 존재한 스페인지역이 아닌가 한다. (아래 자료 참조). 양운국의 양은 羊이 되어야 하는데, 養으로 바꿔치기한 것 같다.
https://lainfos.tistory.com/369
https://lostcorea.tistory.com/1724
4. 신석기 시대의 일군국, 양운국 위치 추정
위에서 필자는 저족인 일군국, 강족인 양운국이 이베리아 반도에 있지 않나 추정했다. 그럼 실제 이들 지역에서 신석시대인 기원전 2000년경 일군국, 양운국의 문명이 있었는지 알아 보자.
아래 지도가 중기 신석기시대 (BC 4200 - BC 2000)의 유럽의 문명이 있던 분포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일군국, 양운국의 가능성이 있는 위치는 이베리아반도 남쪽의 두곳이다.
Middle Neolithic Europe (BC 4200 - BC 2000) (source : Wikipedia)
즉 양운국은 이베리아반도 남쪽의 La almagra (갈색지역)지역이 유력하고, 일군국은 포루투갈지역인 Lusitanian megalithism (적색지역) 지역이 유력하다. 그럼 이들 지역의 문명이 어떤지 또 그후 이 지역에서의 국가들의 행태는 일군국, 양운국 등과 같이 독립적이었는지 알아 보자.
1) 양운국 위치 추정
양운국이 있는 지역으로 추정되는 Andalusia지역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4천년대시대에 동지중해로부터 이전된 것으로 추정한다. 농업과 목축업이 근간인 이 시대에는 갈아진 돌과 도자기 모습이 특징이다. 신석기시대에는 마을을 이루거나 동굴에 머무르는 삶을 영위했다. 동굴은 거주하거나 매장장소로 이용되었다. (아래 자료 참조)
"Neolithic
Neolithic sits in Andalusia
Megalithic construction of Dolmen of Menga
The Neolithic, characterized by a productive economy based on agriculture and livestock and with new samples of material culture such as polished stone and pottery, arrived in Andalusia around the 5th millennium BC. Being introduced by diffusion from the Eastern Mediterranean, the first Neolithic samples are located in the Levante Almeriense.[8]
This period is characterized by the existence of two types of habitat or human settlements: the villages and the caves. The villages were simple groupings of huts with a circular base and walls of adobe or wood, located in river valleys or in more arid areas and whose activity was predominantly agricultural and livestock. The caves, more frequent, were used both as dwellings and for burial. As for ceramics, the cardium pottery and Almagra pottery are characteristic.""
(source : History of Adalusia, Wikipedia, 필자의 Naver Blog (lainfos), 카테고리, 고대유럽 -신석기시대)
안달루시아지역의 La Almagra Pottery Culture는 붉은 도자기로 특징 지워진다. 아마도 이 지역의 적색땅이 그 원인으로 생각된다.
안달루시아지역은 기원전 5천년대에 농업이 시작되었다. 어디서 그 농부들이 왔는지 불확실하지만, 북아프리카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에 대한 자료가 없어 이를 현재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최초의 농부는 안달루시아에 이미 경작된 곡식과 채소를 가지고 도달했다.
동물은 돼지나 토끼가 발견되나, 가축화된 것인지 야생동물을 잡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올리브도 많이 발견되나 역시 경작한 것인지 야생의 것을 수확했는지 알 수 없다.
이지역 처음 진출한 농부의 주목할 만한 유물은 La Almagra 스타일의 도자기이다. 그러나 그 모습은 상당히 다양하다. 안달루시아 신석기문화는 남부 포루투갈에 퍼졌는데, 이곳에서 기원전 4800년경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아마 가장 오래된 고인돌이 아닌가 한다. 기원전 4700년경에는 지중해의 신석기시대 Cardium Pottery Culture가 이베리아 반도 동쪽에 도달했다. (아래 자료 참조)
"La Almagra (red ochre), also known as ″La Almagra Pottery culture″ is a red pottery found in a number of archaeological sites of the Neolithic period in Spain.[1] It is not known how it relates to other pottery of the Neolithic period.
In the sixth millennium BC Andalusia experienced the arrival of the first agriculturalists. The origin of these first agriculturalists is uncertain, and although North Africa is a serious candidate, desertification there in the few centuries immediately prior to the arrival of the agriculturalists in Andalusia has made archaeological work on possibly related cultures of North Africa very difficult. For now, the North African cultures remain little understood, with possible material remains lost to the sands or coasts. However, the first Agriculturalists arrived in Andalusia with crops such as domesticated forms of cereals and legumes already developed. The presence of domestic animals is uncertain, but remains of domestic species of pig and rabbit known later have been found in large quantities, although these could belong to wild animals. The agriculturalists also consumed many olives, but it is uncertain whether the olive was cultivated or harvested in its wild form.
A typical artifact of the first agriculturalists is the La Almagra style pottery, quite variegated.
The cultures of the Andalusian Neolithic spread, for example, to Southern Portugal, where the first dolmen tombs appeared c.4800 BC, possibly the oldest of their kind anywhere.
Ca. 4700 BC Cardium Pottery Neolithic culture (also known as Mediterranean Neolithic) reached Eastern Iberia....."
(source : La Almagra pottery, Wikipedia, lainfos)
이상으로 살펴 본 바와 같이, Andalusia에는 이미 기원전 4천년대부터 농경이 발달한 지역이며, 이때는 12환국의 시대 (BC 7197 - BC 3897년)에 해당한다. 즉 양운국이 12환국중의 하나이므로, 이 조건을 갖춘 것이다. 따라서 상기 자료에서 나타난 강족인 양운국은 기원전 2천년경에는 이보다 상당히 발달된 문명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시기도 살펴 보자 : (1) Los Millares (3200- 2300 BC), (2) Bell Beaker culture (2800-1800 BC), (3) Argaric culture (2200-1300 BC)
(1) Los Millares culture (3200-2300 BC) : 남부 스페인
기원전 3천년경부터 기원전 2천년경까지 이 지역에 있었던 Los Millares Culture에 대해 알아 보자 . 이 시대는 신시배달국 시대(BC 2897 - BC 2333)에 해당한다. 신시 배달국시대에는 18대의 환웅이 있었다 한다.
"Los Millares is a Chalcolithic occupation site 17 km north of Almería, in the municipality of Santa Fe de Mondújar, Andalucía, Spain. The complex was in use from the fourth millennium BC (c. 3000 BC) to the end of the third millennium BC (2000 BC)......
Los Millares location in Spain (source : Wikipedia)
Los Millares culture는 위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스페인 남부에 있었다. 그리고 2핵타르지역에 3개의 돌로 만든 성벽이 있었는데, 가장 큰 원형의 것은 둘레가 200미터가 넘으며, 19개의 보루가 있었다. (아래 자료 참조) 아래 그림은 그 모형을 만든 것인데, 성벽에 고구려식 '치'가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고구려식 '치'는 단군조선시대의 것을 따라한 것이라 하는데, 즉 신시배달국과 관계가 있는 양운국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The site covers 2 hectares (4.9 acres) and comprises three concentric lines of stone walls, the outer ring the largest, running more than 200 meters (650 feet) with nineteen 'bastions' and a gate guarded by foreworks.[1] The road to the site is guarded by four smaller outlying stone forts.[1] There is an extensive cemetery of eighty passage grave tombs.[1] Radiocarbon dating has established that one wall collapsed and was rebuilt around 3025 BC.
Reconstruction of Los Millares castle (source : Wikipedia)
또한 이들은 농부이면서도 구리를 주조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 가는 과정을 알게 해주며, 이들은 이 기술로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아래 자료 참조)
A cluster of simple dwellings lay inside the walls as well as one large building containing evidence of copper smelting. Pottery excavated from the site included plain and decorated wares including symbolkeramik bowls bearing oculus motifs. Similar designs appear on various carved stone idols found at the site. Although primarily farmers, the inhabitants of Los Millares had crucially also learned metal working, especially the smelting and forming of copper, and the site is considered highly important in understanding the transition from the Neolithic to the Bronze Age.[4] The Millaran culture eventually came to dominate the Iberian peninsula.........
The labor involved in its construction, the large volume of stones used, its geometric characteristics and sophisticated design all indicate multiple functionality, including defense and power.[2][5]
Relationship to other prehistoric cultures[edit]
Los Millares participated in the continental trends of Megalithism and the Beaker culture[citation needed]. Analysis of occupation material and grave goods from the Los Millares cemetery of 70 tholos tombs with port-hole slabs has led archaeologists to suggest that the people who lived at Los Millares were part of a stratified, unequal society which was often at war with its neighbors[citation needed]. The Los Millares civilisation was replaced circa 1800 BC, with the arrival of Bronze by the El Argar civilisation, whose successor culture is embodied in the contemporary culture of Vila Nova de São Pedro in nearby Portugal.
Los Millares culture는 구성원들이 계층화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가졌으며, 때때로 이웃들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후는 청동기 문명인 El Argar문명으로 넘어 간다. (상기 자료 참조)
Other Iberian settlements in this region of a similar age to Los Millares include the settlement of Los Silillos and Neolithic finds at Cabrera [es].[6]
Similarities between Los Millares architecture and the step pyramid at Monte d'Accoddi in Sardinia have been noticed."
Los Millares건축물과 Sardinia섬의 Monte d'Accoddi의 계단식 피라미드와는 유사한 점이 관찰되었다. 즉 계단식 피라미드가 Los Millares 지역에 있었다는 말이다.
Sardinia섬의 Monte d'Accoddi 의 계단식 피라미드 (자료 : Wikipedia)
(source: Los Millare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유럽-신석기시대)
계단식 피라미드는 메소포타미아, 고대이집트,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일본 등에 있지만 유럽에는 Sardinia 지역에 기원전 3천년대에 있었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그런데 이 계단식 피라미드가 Los Millares문명(양운국)에도 있었다는 언급이다. 고대 수메르문명(수밀이국)에서도 이러한 계단식 피라미드인 지구라트가 건축된 것을 상기하자. (아래 자료 참조)
"Mesopotamia[edit]
Main article: Ziggurat
The 4100-year-old Great Ziggurat of Ur in southern Iraq
Ziggurats were huge religious monuments built in the ancient Mesopotamian valley and western Iranian plateau, having the form of a terraced step pyramid of successively receding stories or levels. There are 32 ziggurats known at, and near, Mesopotamia. Twenty-eight of them are in Iraq, and four of them are in Iran. Notable Ziggurats include the Great Ziggurat of Ur near Nasiriyah, Iraq, the Ziggurat of Aqar Quf near Baghdad, Iraq, Chogha Zanbil in Khūzestān, Iran, the most recent to be discovered – Sialk near Kashan, Iran and others.
Ziggurats were built by the Sumerians, Babylonians, Elamites and Assyrians as monuments to local religions..........
Europe
A step pyramid exists in the archaeological site of Monte d'Accoddi, in Sardinia, dating to the 4th millennium BC: "a trapezoidal platform on an artificial mound, reached by a sloped causeway. At one time a rectangular structure sat atop the platform ... the platform dates from the Copper Age (c. 2700–2000 BC), with some minor subsequent activity in the Early Bronze Age (c. 2000–1600 BC). Near the mound are several standing stones, and a large limestone slab, now at the foot of the mound, may have served as an altar."[10]
(source : Step Pyramid,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lainfos), 카테고리, 고대유럽-신석기)
(2) Bell Beaker Culture (2800-1800 BC) : 서유럽
Bell Beaker Culture는 BC 2800년 시작해, 중부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해 영국, 아일랜드까지 퍼졌으며, 이베리아 반도는 해안을 중심으로 퍼졌다. 그리고 포루투갈 북부지역에 초기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안달루시아지역은 비교적 늦게 BC 2500-2200 BC기간에 존재했다. (아래 자료 참조) 특히 Los Millares지역은 이 culture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반면 포루투갈 지역은 이 문명이 존재하여 구분되기도 한다. 안달루시아지역이 BC 2500-2200 BC기간 동안 Bell Beaker문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Los Millares문명이 이러한 culture가 없었다는 것은 독립적인 위치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BC 2000년경 양운국은 은나라, 단군조선, 어느 나라의 식민지가 아닌, 이들에게 사신을 보낸 독립국이었던 점을 상기하자.
Bell Beaker culture에 대한 분석은 다음의 일군국지역으로 추정되는 포루투갈지역의 분석 후에 자세히 하고자 한다.
"The Bell Beaker culture (or, in short, Beaker culture) is an archaeological culture named after the inverted-bell beaker drinking vessel used at the very beginning of the European Bronze Age. Arising from around 2800 BC, it lasted in Britain until as late as 1800 BC[3][4] but in continental Europe only until 2300 BC,.....
Iberian Peninsula
Vessel from Ciempozuelos, beginning of the second millennium BC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of Spain, Madrid)
The Bell Beaker phenomenon in the Iberian Peninsula defines the late phase of the local Chalcolithic and even intrudes in the earliest centuries of the Bronze Age.[48] A review of radiocarbon dates for Bell Beaker across Europe found that some of the earliest were found in Portugal, where the range from Zambujal and Cerro de la Virgen (Spain) ran c. 2900–2500 BC, in contrast to the rather later range for Andalusia (c. 2500–2200 BC).[49]
..............................
Very early dates for Bell Beakers were found in Castelo Velho de Freixo de Numão in Guarda, northern Portugal. ..........
The lack or presence of Bell Beaker elements is the basis for the division of Los Millares and Vila Nova cultures into two periods: I and II........
(source : Bell Beaker culture,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유럽-청동기)
(3) Argaric culture (2200-1550 BC) : SE Spain
Argaric culture는 스페인 동남부 El Agar지역이름(아래 지도 참조)을 딴 이름이며, 초기 청동기시대로서 BC 2200 - BC 1550 동안 번창했다. 이 시대는 단군조선의 시대(BC 2333 - 238 BC)에 해당한다.
Bronze age in Iberia (source : Wikipedia)
"The Argaric culture, named from the type site El Argar near the town of Antas, in what is now the province of Almería in southeastern Spain, is an Early Bronze Age culture which flourished between c. 2200 BC and 1550 BC.[1]
The Argaric culture was characterised by its early adoption of bronze, which briefly allowed this tribe local dominance over other, Copper Age peoples.[2] El Argar also developed sophisticated pottery and ceramic techniques, which they traded with other Mediterranean tribes.
Argaric Culture는 청동기의 빠른 도입으로 특징지워지는데, 이를 통해 구리시대에 머문 다른 부족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들은 또한 복잡한 도자기와 요업 기술을 발달시켰으며, 이들을 지중해 부족들과 교역했다.
The center of this civilization is displaced to the north and its extension and influence is clearly greater than that of its ancestor. Their mining and metallurgy were quite advanced, with bronze, silver and gold being mined and worked for weapons and jewelry.
이 문명의 중심지는 북쪽으로 이동했으며, 그들의 조상보다 훨낀 넓게 영향을 주고 퍼졌다. 그들의 광업과 금속제조업은 상당히 발달하여, 청동, 은, 금 등을 캐서 무기와 장식구를 만들었다.
이러한 언급은 양운국이 스페인남부에서 더 북쪽으로 확장된 지역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Pollen analysis in a peat deposit in the Cañada del Gitano basin high in the Sierra de Baza suggests that the Argaric exhausted precious natural resources, helping bring about its own ruin.[3] The deciduous oak forest that covered the region's slopes were burned off, leaving a tell-tale carbon layer, and replaced by the fire-tolerant, and fire-prone, Mediterranean scrub familiar under the names garrigue and maquis.[4][5]
Extension
Main Argaric towns
La Bastida de Totana, remains of the outer wall fortifications.
Argaric culture site 중 상기 La Bastida de Totana의 성벽 모습은 필자가 '광개토태왕 비문을 통한 정벌지역 추정'이란 글에서 고조선의 영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벽돌성곽모습이다.
https://lostcorea.tistory.com/1459
- El Argar: irregularly shaped (280 x 90 m).
- Fuente Vermeja: small fortified site, 3 km north of El Argar
- Lugarico Viejo: larger town very close to Fuente Vermeja.
- La Bastida de Totana: larger fortified site.[7]
- La Almoloya (Pliego, Murcia): in the top of a plateau.[11]
- Puntarrón Chico: in the top of a small hill, near Beniaján (Murcia)
- Ifre (Murcia): on a rocky elevation.
- Zapata (Murcia): 4 km. west of Ifre, fortified.
- Cabezo Redondo (Villena, Alicante): one of the biggest settlements, on a rocky elevation next to an old lagoon and salt evaporation pond.
- Gatas (4 km west of Mojácar, Almería): fortified town on a hill with remarkable water canalizations.
- El Oficio (9 km north of Villaricos, Almería): atop of a well defended hill, strongly fortified, especially towards the sea.
- Cerro de las Viñas, Coy, Spain
- Fuente Álamo (7 km north of Cuevas de Almazora, Almería): the citadel is atop a hill, while the houses are terraced in its southern slope.
- Almizaraque (Almería): a town dating to Los Millares civilization.
- Cerro de la Virgen de Orce (Granada).
- Cerro de la Encina (Monachil, Granada).
- Cuesta del Negro (Purullena, Granada).
Material culture
Gold diadem of Caravaca, c. 1600 BC.
Glass beads
A meaningful element are the glass beads (of blue, green and white colors) that are found in this culture and which have been related with similar findings in Egypt (Amarna), Mycenaean Greece (dated in the 14th century BC), the British Wessex culture (dated c. 1400 BC) and some sites in France. Nevertheless, some of these beads are already found in chalcolithic contexts (site of La Pastora) which has brought some to speculate on an earlier date for the introduction of this material in southeast Iberia (late 3rd millennium BC).
특이한 것은 유리구슬 목걸이 (청색, 녹색, 백색)가 발견된 것인데, 이것은 이집트(Amarna), 미케네 그리스문명 (14세기 BC), 영국 Wessex culture (1400 BC), 프랑스 등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구리시대에 발견된 것을 고려하면 동남부 이베리아에서는 기원전 2천년대에 이미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한다.
Other manufactured goods
Pottery undergoes important changes, almost totally abandoning decoration and with new types.
도자기는 중요한 변화가 있었는데, decoration을 버리고 새로운 형태로 변하였다.
Textile manufacture seems important, working specially with wool and flax. Basket-making also seems to have been important, showing greater extent and diversification than in previous periods.
섬유업도 중요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양모와 아마섬유로 만들었다. 바구니 만드는 것도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전 시대보다 더 다양하고 더 확장된 것으로 나타난다.
Funerary customs
The collective burial tradition typical of European Megalithic culture is abandoned in favor of individual burials. The tholos is abandoned in favour of small cists, either under the homes or outside. This trend seems to come from the Eastern Mediterranean, most likely from Mycenaean Greece (skipping Sicily and Italy, where the collective burial tradition remains for some time yet).
From the Argarian civilization, these new burial customs will gradually and irregularly extend to the rest of Iberia.
In the phase B of this civilization, burial in pithoi (large jars) becomes most frequent (see: Jar-burials). Again this custom (that never reached beyond the Argarian circle) seems to come from Greece, where it was used after. ca 2000 BC.
매장관습은 유럽의 Megalithic culture인 집단적 매장 관습을 버리고 개인적 매장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아마도 지중해 동부의 그리스의 미케네문명으로부터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매장관습은 Argarian 문명에서 점차 이베리아 나머지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이 문명의 Phase B에서는 large jars(커다란 용기)에 매장하는 관습이 흔했는데 (Argarian지역만) 역시 그리스로부터 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2000년부터 이러한 매장관습이 있었다.
매장관습이 그리스 미케네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설명되는데, 미케네 문명은 단군조선의 문명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그리고 상나라는 요수인 론강의 서쪽 프랑스지역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따라서 우리가 앞에서 양운국, 일군국이 은(상)나라와 단군조선과의 사신 교류가 있던 것을 살폈는데, 이를 설명하는 자료가 된다고 본다.
상(은)나라왕 무정이 공격한 귀방(흉노의 다른이름)은 이베리아 반도 북부나 중앙지역에 있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필자는 흉노의 묵특선우가 정벌한 강족의 백양국이 이베리아반도에 있지 않았을까 추정했다. 그리고 남흉노의 강거선우가 강거지역인 이베리아반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즉 이베리아반도에 흉노의 전신인 귀방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이다. 따라서 상(은)나라 왕 무정이 귀방을 공격했을 때, 이베리아반도 남쪽에 있는 양운국이 사신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이다.
또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단군조선도 소태단군 시절 욕살 고등이 이베리아 반도 북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귀방을 멸망 시켰다 하는 바, 이베리아 반도 남쪽의 강족인 양운국이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Genetic profile
Out of 36 males tested from La Almoloya and La Bastida sites, 35 were assigned to haplogroup R1b-M269 (the exact phylogenetic position on the Y haplogroup tree could be resolved further in 14 males, who carry the derived variant at Y-SNP P312, and the derived subvariant Y-SNP Z195 in 18 males), only an individual was from another clade, E1b-L618. The Argar Culture was likely formed from a mixture of new groups arriving from north-central Iberia (which already carried the predominant Y-chromosome lineage and central European steppe-related ancestry) and local southeastern Iberian Copper Age groups that differed from other Iberian regions in that they carried an Iran Neolithic-like ancestry (similar to that found in eastern and/or central Mediterranean ancient groups). The major additional ancestry source resembled central European Bell Beaker groups, which first contributed ancestry to northern Iberia, followed by a southward spread. The distal sources were ~60% Anatolian farmer, ~25% Western Hunter-Gatherer, ~15% Yamnaya. Some phenotypìc traits were: absolute majority of brown eyes, pale skin was majoritary, and brown hair was more usual than black hair. [12]
유전자적 분석에서는 이들이 이베리아 북쪽과 중앙으로부터 온 그룹과 이베리아 동남지역의 구리시대그룹과의 혼합으로 보여진다. 또 하나의 주요 추가적 조상 요소는 중부유럽의 Bell Beaker 그룹인데, 이들은 이베리아 북쪽에 도착해서 점차 남쪽으로 퍼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대부분 갈색눈, 하얀 피부가 대부분이며, 검은 머리보다는 갈색머리가 더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유전자 분석은 이 지역의 문명이 바다로는 지중해 동쪽의 그리스의 영향을 받고, 육지로는 중부 유럽의 세력이 북쪽 이베리아로 들어와 점차 남쪽으로 이동한 것을 보여 준다.
(source: Argaric culture,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유럽-청동기)
또한 유럽의 고대문화가 중동지역에서 출발했다는 Prehistoric Europe의 기록을 감안하면, 12환국 중 수메르 문화의 수밀이국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는 차후 더 분석하여 12환국의 모든 위치를 가늠한 후에나 확실한 것이 될 것이다. 여하튼 12환국을 열거 할 때, 비리국, 양운국 순으로 되어 마지막에 수밀이국이 거론된다. 필자는 비리국을 Briton 즉 영국이나 프랑스 서안의 Bretagne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2) 일군국 위치 추정
일군국은 포루투갈 남부의 Lusitanian Megalithism지역으로 앞의 중기 신석기시대 유럽의 지도에서 추정했다. 이 위치는 아래 이베리아반도의 VNSP 즉 Vila Nova de Sao Pedro지역이다. 이 지역의 문명은 Pahse I, Phase II로 나누어진다.
Bronze age in Iberia (source : Wikipedia)
(1) VNSP I (=Vila Nova de Sao Pedro I)
"It has been determined that early inhabitants in this region began building fortifications around 2700 BCE,[2] with the Dolmen of Herdade de Zambujal being the more central, with a very complex plan and up to six reconstructions in its lifetime.
이 지역의 초기 주민들은 약 BC 2700년경에 요새를 쌓기 시작했다. 중심지에는 Herdade de Zambujal의 고인돌이 있고, 매우 복잡한 요새를 지었는데, 여섯번이나 재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6번이나 성곽이 재건축을 했다는 것은 외부의 침입이 자주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서양 바닷가에 있어 해양으로 접근한 여러 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기원전 2700년경 초기부터 요새를 쌓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독립적인 세력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는 신시배달국시대(BC 3897 - BC 2333)에 해당한다. 중심지에는 고인돌이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These cultures left behind many traces of their culture: stylized cups, crescents of clay, sticks of slate and the so-called plate-idols, that some archaeo-astronomers consider to be precise calendars. Nevertheless, the exchange with other groups, particularly Los Millares, is also present in the archaeological record. The inhabitants of the fort had its economy based on agriculture and grazing, which was suitable to the surrounding lowlands.[1][2]
이들 문명은 많은 흔적을 남겼는데, 예를 들어, 스타일 있는 컵, 초승달 모양의 점토, 점판암으로 된 막대기, 소위 접시 우상, 그리고 고고학 천문학자들이 보기에 정확한 달력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그룹과의 교역, 특히 Los Millares와 교역한 흔적이 보인다. 성안의 주민들은 부근의 저지대에 알맞는 농업과 방목을 경제기반으로 하였다.
정확한 달력이 있었다는 것은 상당히 발달된 문명이라는 것이다. 이웃인 Los Millares문명과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 양운국과 더불어 같이 행동한 일군국을 연상케 한다.
(2) VNSP II
"But, trade proved to have greater interest: the first settlers brought with them red-tinged pottery, more delicate then later ceramics, with excellent decoration, suggesting their contact with peoples of a superior civilization (something that they could not produce with similar quality).[1][2] With the arrival of the Beaker peoples around 2200 BCE[citation needed], the local culture entered a new period of development that mixed the Beaker people burial rites, while maintaining other traditions.
교역은 보다 큰 이익을 준 것 같다 : 최초 정착자들은 붉은색 계통의 도기를 가져 왔는데, 후에는 더 세밀하고 훌륭한 장식을 가진 도자기를 변하는데, 이것은 그들보다 우수한 문명 (그들이 같은 품질의 원가를 생산할 수 없는)과 접촉한 것을 말해 준다. 약 기원전 2200년경 Beaker peoples의 도착과 함께, 이 지역 문화는 Beaker people의 매장의례가 섞인, 그러나 다른 전통은 간직하며, 새로운 발달의 시기로 접어 든다.
기원전 2200년경부터의 2단계의 이지역 문명은 Beaker peoples의 도착과 함께 보다 선진적인 문화로 변화되는 모습이다. 단군조선이 기원전 2333년부터 시작했다 하니 이 즈음이 아닌가 한다. 즉 단군조선과 더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졌다 할 수 있다. 이는 대서양에 접해 있어 더욱 가능했을 것이다.
Beaker Culture 지역을 보면, 프랑스의 중앙 지역을 제외하고, 영국을 포함한 이태리 북부까지의 서유럽을 포함하고 있다. 즉 대서양에 접한 지역이 많다는 것이다. (아래 지도 참조) 프랑스 중앙지역은 상(은)나라 지역이 아닌가 한다.
Distribution of the Mature Beaker culture (source : Wikipedia)
It is likely that the Beaker people's presence within this region also resulted in secondary phase of development of this culture. The inter-cultural exchanges between groups were more frequent, and their influence spread to distances of 1000 kilometres or greater, as was the case with the Treilles, in the French Languedoc. Local artifacts associated with these cultures, such as the Palmela arrowheads or bell-shaped beakers, were commonly found dispersed in the western half of the Iberian peninsula, suggesting an origin in the region. After 1900 BCE there is a decentralization in the Iberian peninsula, resulting in a dispersion of many of these artifacts to as far as Bohemia.
Beaker people의 등장은 이 지역문화의 두번째 발달 시기로 결과된다. 그룹간 내부적 문화교류가 빈번해지고, 그들의 영향은 1000킬로미터 또는 그이상 떨어진 지역까지 퍼지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 Languedoc지역의 Treilles(프랑스 동남부 스페인 접경지역) 경우 같은 것이다. 이 문화와 관련된 지역적 유물로는 Pamela 화살촉 또는 종모양의 비커 등이 이베리아반도 서쪽지역에 매우 흔하게 퍼져 있었다. 이는 이 지역이 origin임을 말한다. 기원전 1900년이후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분산화가 진행되어 이러한 많은 유물들이 보헤미아 지역까지 퍼지는 결과를 보인다.
이 포루투갈 지역의 Beaker 도자기문화가 프랑스 동남부, 보헤미아까지 퍼진 것으로 해석하지만, 이는 이러한 도자기에 한한 것일 수 있다. 필자의 판단에 단군조선의 지역이 북유럽, 중부유럽 등에 걸쳐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중부유럽지역 등에서 이 지역까지 여러 선진문화가 전파된 것이 아닌가 한다. 상기 VNSP II의 설명에서 외부의 선진문화가 전해져 많이 바뀌었다는 설명은 이러한 필자의 판단을 옹호해 준다.
With the arrival of Bronze Age technologies in southern Iberia after 1800 BCE (particularly in El Argar), the influence of the castro culture of Vila Nova de São Pedro begins to slowly decline. Finally, around 1300, it merges with the wider culture associated with internally burnished pottery, including most of Portugal and the wider Atlantic Bronze Age cultures....
기원전 1800년이후 남부 이베리아는 청동기시대로 접어 들며, VNSP culture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마침내 기원전 1300년경에는 안에서 구운 도기와 관련하여 보다 넓은 문화권으로 통합되는데, 포루투갈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한 대서양의 청동기문화로 통합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다 넓은 문화권으로의 통합은 이 지역이 다른 큰 강국에 정복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는 단군조선 소태단군 시절 욕살 고등에 의한 귀방의 멸망과 세력 확장이 기원전 2000년경 있었는데, 그 이후, 단군조선에 흡수되는 경우를 말할 수 있다고 본다.
(source: Castro of Vila Nova de São Pedro, Wikipedia, 인용출처: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유럽-신석기)
(3) Bell Beaker culture in Iberian Peninsula
Vessel from Ciempozuelos, beginning of the second millennium BC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of Spain, Madrid)
The Bell Beaker phenomenon in the Iberian Peninsula defines the late phase of the local Chalcolithic and even intrudes in the earliest centuries of the Bronze Age.[48] A review of radiocarbon dates for Bell Beaker across Europe found that some of the earliest were found in Portugal, where the range from Zambujal and Cerro de la Virgen (Spain) ran c. 2900–2500 BC, in contrast to the rather later range for Andalusia (c. 2500–2200 BC).[49]
이베리아반도에서의 Bell Beaker현상은 지역적 구리시대의 말기나 청동기시대의 초기로 나타난다. 유럽에서의 Bell Beaker시대를 탄소측정해 보면, 포루투갈에서 초기의 것이 발견되고, 스페인 북부에서는 기원전 2900-2500 기간동안, 안달루시아지역에서는 BC 2500-2200BC 기간으로 나타난다.
At present, no internal chronology for the various Bell Beaker-related styles has been achieved yet for Iberia.[50] Peninsular corded Bell Beakers are usually found in coastal or near coastal regions in three main regions: the western Pyrenees, the lower Ebro and adjacent east coast, and the northwest (Galicia and northern Portugal).[51] A corded-zoned Maritime variety (C/ZM), proposed to be a hybrid between AOC and Maritime Herringbone, was mainly found in burial contexts and expanded westward, especially along the mountain systems of the Meseta.
Bell Beaker 관련된 스타일은 주로 이베리아 반도 해안지방에서 발견된다.: 서쪽의 피레네, Ebro강 하류, 북서쪽의 Galicia와 북쪽 포루투갈 지역 등이다.
Reconstruction of a Beaker burial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of Spain, Madrid)
With some notable exceptions, most Iberian early Bell Beaker "burials" are at or near the coastal regions. As for the settlements and monuments within the Iberian context, Beaker pottery is generally found in association with local Chalcolithic material and appears most of all as an "intrusion" from the third millennium in burial monuments whose origin may go back to the fourth or fifth millennia BC.
Bell Beaker를 이용한 매장풍습도 주로 해안지방에서 발견된다.
Very early dates for Bell Beakers were found in Castelo Velho de Freixo de Numão in Guarda, northern Portugal. The site was located on the summit of a spur. A short-lived first occupation of pre-Bell Beaker building phase about 3000 BC revealed the remains of a tower, some pavings, and structures for burning. After a break of one or two centuries, Bell Beaker pottery was introduced in a second building phase that lasted to the Early Bronze Age, about 1800 BC. A third building phase followed directly and lasted to about 1300 BC, after which the site was covered with layers of stone and clay, apparently deliberately, and abandoned.
초기의 Bell Beaker 문화는 포루투갈 북부 Guarda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지역의 건축문화는 3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기원전 3천년경의 pre-Bell Beaker 시대로, Tower, 포장도로, 소각구조물, 등이 나타난다. 1-2백년이후, 제2의 Bell Beaker 건축시대가 오는데 기원전 1800년까지 지속되었다. 3번째 Bell Beaker 건축문화는 BC 1300년까지 이어지는데, 이후는 돌과 흙의 층으로 덮혀 있어 확연히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
(source : Bell Beaker culture,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유럽-청동기)
3) 양운국과 일군국의 교류
이상으로 양운국과 일군국의 위치가 가능한 지역의 문화를 살펴 보았는데, 양운국과 일군국이 그러한 것처럼, 이베리아반도의 이 두 문화는 서로간 교류가 많은 것으로 언급된다. (아래 자료 참조)
"Large towns with stone walls appeared in two different areas of the Iberian Peninsula: one in the Portuguese region of Estremadura (culture of Vila Nova de Sao Pedro), strongly embedded in the Atlantic Megalithic culture; the other near Almería (southeastern Spain), centred around the large town of Los Millares, of Mediterranean character, probably affected by eastern cultural influxes (tholoi). Despite the many differences, both civilisations seem to have had friendly contact and to productive exchanges."
석조 성벽이 거대 도시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두 지역이 있는데, 바로 포루투갈 지역의 Vila Nova de Sao Pedro culture와 동남부 스페인의 Los Millares culture이다. 전자는 대서양의 문화를 강하게 영향받은 것으로 보이며, 후자는 지중해권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문명은 우호적인 접촉이 있었으며, 생산적인 교역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source: Prehistoric Europe,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유럽 -구석기시대)
5. Bell Beaker culture에 대한 추가 연구
상기 글에서 Bell Beaker Culture가 보다 선진화된 문명이라는 표현을 우리는 보았다. 그래서 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한다. 신시배달국이나 단군조선의 문명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Distribution of the mature Bell Beaker culture (source : Wikipedia)
"The Bell Beaker culture (or, in short, Beaker culture) is an archaeological culture named after the inverted-bell beaker drinking vessel used at the very beginning of the European Bronze Age. Arising from around 2800 BC, it lasted in Britain until as late as 1800 BC[3][4] but in continental Europe only until 2300 BC, when it was succeeded by the Unetice culture. The culture was widely dispersed throughout Western Europe, from various regions in Iberia and spots facing northern Africa to the Danubian plains, the islands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and also the islands of Sicily and Sardinia.......
Bell Beaker culture는 종모양의 마시는 용기(컵) 이름을 따서 지어진 명칭인데, 유럽의 청동기시대 초기의 것이다. BC 2800년부터 생겨난 것으로 영국에서는 BC 1800년까지 지속되었고, 유럽대륙에서는 BC 2300년까지 지속되었고, Unetice culture로 이어졌다. 이 문화는 서유럽에 광범위하게 퍼졌는데, 이베리아의 여러 지역에서부터 북아프리카 여러 곳, 다뉴브강 평야, 영국과 아일랜드의 섬들, 그리고 시실리와 사르디니아섬들이 포함된다.
Extent and impact (확장과 영향)
Bell Beaker people took advantage of transport by sea and rivers, creating a cultural spread extending from Ireland to the Carpathian Basin and south along the Atlantic coast and along the Rhône valley to Portugal, North Africa, and Sicily, even penetrating northern and central Italy.[47] Its remains have been found in what is now Portugal, Spain, France (excluding the central massif), Ireland and Great Britain, the Low Countries and Germany between the Elbe and Rhine, with an extension along the upper Danube into the Vienna Basin (Austria), Hungary and the Czech Republic, with Mediterranean outposts on Sardinia and Sicily; there is less certain evidence for direct penetration in the east.
Bell Beaker people은 바다와 강을 이동수단으로 삼아 문화를 전파했는데, 아일랜드에서 카르파티언 유역까지, 그리고 대서양 해안을 따른 남쪽과 론강 협곡에서 포루투갈, 북아프리카, 시실리, 심지어 북이태리와 중앙이태리까지이다. 그 유물들은 지금의 포루투갈, 스페인, 프랑스(중앙 산맥지역 제외), 아일란드, 영국, 네델란드 등 저지대 국가들, 엘베강과 라인강 사이의 독일, 다뉴브강 상류에서 오스트리아의 비인유역, 항가리, 체코공화국, 지중해의 사르디니아와 시실리 등에서 발견된다.
Beaker-type vessels remained in use longest in the British Isles; late beakers in other areas are classified as early Bronze Age (Barbed Wire Beakers in the Netherlands, Giant Beakers (Riesenbecher)). The new international trade routes opened by the Beaker people became firmly established and the culture was succeeded by a number of Bronze Age cultures, among them the Únětice culture in Central Europe, the Elp culture and Hilversum culture in the Netherlands, the Atlantic Bronze Age in the British Isles and the Atlantic coast of Europe, and by the Nordic Bronze Age, a culture of Scandinavia and northernmost Germany–Poland.
이러한 Beaker 타입의 용기는 Bitish isles에서 가자 오래 이용되었다. 다른 지역에서의 후기 beakers는 청동기시대로 분류된다. Beaker people에 의해 개발된 새로운 국제교역 루트는 확고히 정착되었고, 이 문화는 많은 청동기문화로 이어졌다. 그중에는 중부유럽의 Unetice culture, 네델란드의 Elp culture, Hilversum culture, 영국 주위 섬들과 유럽 대서양 해안의 Atlantic Bronze Age,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와 북부 독일및 폴란드의 Nordic Broze Age가 그들이다.
(source : Bell Beaker culture,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고대유럽-청동기)
이상을 고려할 때, 바다와 강을 교통수단으로 활발하게 교역을 한 서유럽지역의 Bell Beaker culture는 12환국을 이은 신시배달국이나 9환을 통일한 단군조선의 문명이 아닌가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12환국의 위치를 추정하면서, 향후 추가적인 연구가 있을 것이다.
6. 결 론
이베리아반도에 있는 두 지역은 매우 특이하다.
첫째, 이베리아반도에서 성곽으로 둘러 쌓인 도시는 이 두 지역뿐이다. 그것도 매우 오래된 기원전 4천년대에 말이다. 이러한 면이 우선 과거 12환국의 하나가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둘째, 두 지역 모두 고인돌이 중심지에 있었다. 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흔적이다.
셋째, 이들 모두 도자기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럽 거의 전지역에 신석기시대에 도자기문화가 있었지만, 발달된 도자기문화는 고인돌과 더불어 무시할 수 없는 문화이다.
넷째, 양운국으로 추정되는 남동쪽 스페인에 있는 Los Millares문명은 계단식 피라미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Sardinia섬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고대이집트 뿐만 아니라, 수메르문명에서도 있었다. 수메르문명은 수밀이국이라 할 때, 이는 12환국의 하나일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다섯째, 양운국의 위치로 판정되는 Los Millares지역의 고대 성곽은 고구려의 성곽의 특징인 '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성곽모습은 단군조선 시기에도 있었다 한다. 즉 이 성곽이 단군조선 또는 그 이전 시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12환국의 하나가 될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섯째, 스페인 남동부의 Los Millares는 양모를 이용한 섬유업이 발달했다. 즉 양을 기르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양운국은 강족이라 했고, 강족은 양을 특별히 취급하는 부족이었다. 따라서 이 지역이 양운국의 가능성이 한층 높은 것이다.
일곱째, 우리가 양운국, 일군국 위치 추정에 대해 실마리를 잡은 것은 이들이 각가 강족, 저족이라는 은나라 무정왕 시기의 중국 사서내용 덕분이다.
환단고기에도 기원전 2000년경의 소태단군 시절, 단군조선의 욕살 고등이 귀방을 정벌하자, 양운국, 일군국이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고 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이 지역에서의 변화를 살펴보면, 우리가 추정하는 유럽의 단군조선문명이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스페인 남동부의 Los Millares문명은 구리시대의 기존 문화를 지키면서도 선진화된 문화가 유입되었다. 포루투갈의 서남부 VNSP(=Vila Nova de Sao Pedro)문명도 Bell Beaker culture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모두 BC 2500-2200년경의 일이다. 즉 BC 2000년경의 은나라와 단군조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가 이들 지역이 양운국, 일군국의 문명일 가능성이 높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덟째, 양운국, 일군국은 이웃한 국가로서, 동일한 행동을 같이 하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사신을 동시에 파견하여 조공한 것과 같은 일이다. 이는 이들이 독립한 국가이면서, 이웃한 근접국가라는 것을 보여 주며, 동시에 상호간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독립적 위치 유지와 근접위치, 그리고 친밀한 상호교류를 Los Millares문화와 VNSP 문화가 보여주고 있다. 즉 이러한 경향도 이들이 양운국, 일군국일 가능성이 높은 것을 말해 준다.
마지막으로 Bell Beaker culture는 서유럽에 널리 유포된 문명으로 단군조선의 문명인지, 상나라의 문명인지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다른 유럽지역의 문명을 살펴 보면서 12 환국의 다른 국가들의 위치를 보다 정확히 추정하면 그 의문도 풀릴 것이라 판단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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