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필자는 금관가야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아의 카르타고에 있었다는 글을 쓴 바 있다. 김수로왕과 석탈해의 전쟁에서 신라와 가야 사이의 바다(김해?)의 존재, 그리고 허황옥의 여행이 아유타국(Ayutap)으로 추정되는 Cilicia (튀르키예 동남부)에서 배를 타고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 도달하는 여행이라 추정했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https://lostcorea.tistory.com/1709
김수로왕 부인 허황옥과 카르타고의 Dido 여왕
제목 : 김수로왕 부인 허황옥과 카르타고의 Dido 여왕 I. 머리말 우리는 김수로왕의 부인이 된 허황옥이 인도에 있는 아유타국의 공주가 와서 금관가야의 부인이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lostcorea.tistory.com
https://lostcorea.tistory.com/1711
금관가야는 지중해의 카르타고인가?
머리말 '한단고기 고구려본기 중 협보가 마한의 산중에 살았는데 그를 따라서 사는 자가 수백여집이나 되었다. 여러해 동안 흉년이 들어 떠돌아 다니다가 장혁을 알게 되었다. 이에 무리를 꾀
lostcorea.tistory.com
그런데 최근 중앙아시아지역으로 연구지역을 확장하면서 인도의 보드가야 지역에 대가야가 있는 것이 아닌가 궁금해졌다. 어느 미국인 역사학자가 가야는 인도에 있었다고 주장한다는 말을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펜을 들게 되었다.
II. 본 론
1. 가야에 대한 기존 자료
1) 대가야는 아시아에 있다.
최치원의 "석이정전"에서 가야 시조에 대한 설을 모은 이야기가 있는데, 금관가야의 시조 뇌질 청예는 얼굴색이 하얀 백인이며,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이라 한다. 반면 대가야의 시조 뇌질 주일은 얼굴이 둥근 황인이라 했다. (아래 자료 참조) 이로 미루어 보면 금관가야는 서구에 있었고 대가야는 동양에 있지 않았나 하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최치원이 썼다는 《석이정전》을 인용한 기록에서 나오는데 여기서는 천신 이비가지와 가야산신 정견모주 사이에서 반파국의 초대 국왕인 이진아시(뇌질주일), 금관국의 수로왕(뇌질청예) 형제를 얻었다는 것이다.
|
399년
|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정으로 금관가야가 쇠퇴하고 전기가야 연맹이 끝남
|
(자료 : 가야, 나무위키)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기록들을 수집하여 쓴 석이정전(釋利貞傳)의 내용에 따르면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하늘의 신(神)인 이비가지(夷毗訶之)에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 명은 이름이 뇌질주일(惱室朱日)이었고, 다른 한 명은 뇌질청예(惱窒靑裔)라고 하였다. 금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청예(김수로왕)는 여신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희고 갸름했으며 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주일(이진아시왕)은 이비가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었다고 한다. 이는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맏형이었다고 한 ≪가락국기≫에 전하는 금관가야 중심의 형제설화와는 대비되는 것이다...........
(자료 : 수로왕, 위키백과)
2) 가야인은 고깔을 쓴다 ; 스키타인/사카인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이 가야는 가나 (가라)가 기원이고 가야인들은 끝이 뽀족한 고깔을 쓰고 다닌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주장하였다 중국학자들도 변한, 변진이 이 모습을 형용한 것이라 하고, 다른 실학자들이 동의하고, 일본의 학자도 같은 견해를 보인다 했다. (아래 내용 참조)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본인의 저서 강역고에서 '가나(駕那)'가 기원이고 이는 가야 사람들이 끝이 뾰족한 고깔을 쓰고 다닌 데서 유래한 말이고 이를 중국인들이 삼국지를 쓸 때 변한(弁韓) 또는 변진(弁辰)으로 쓴 것은 그 모습을 형용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한치윤 등 많은 실학자들이 이 견해를 따랐고 일본의 아유가이도 가야가 갈(冠弁)에 기원을 둔다고 같은 견해를 보였다. "
(자료: 가야, 나무위키)
3) 신라 법흥왕과 진흥왕의 가야 정벌
"《일본서기》에는 법흥왕 16년에 해당하는 계체천황 23년(529) 임나의 4개 마을을 점령하는[5] 한편 탁순국의 웅천(熊川)을 공격해 가락국의 부흥을 지원하던 오미노 케누(近江毛野臣)의 왜병을 패퇴시키고, 법흥왕(法興王) 18년(531)에는 구례모라(久禮牟羅)의 백제군을 격파하여 이듬해에 금관국을 신라에 합병시켰다. "
(자료 : 이사부, 위키백과)
아래 일본서기의 기록에는 이사부를 '이질부례지간기' 또는 '이질부례지나말' 로 소개되어 있다. 이는 외국어 이름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즉 이사부는 외국인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사부는 임나관가 10국을 공격해서 562년 멸망시킨 것으로 기록한다.
"《일본서기》에는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 또는 이질부례지나말(伊叱夫禮知奈末)로 소개되어 있다..........
이사부가 가야를 정벌한 562년을 《일본서기》는 신라가 임나관가 10국을 공격해서 멸망시킨 시기로 기록한다.[10] 멸망한 임나 10국은 가라국, 안라국, 사이기국, 다라국, 졸마국, 고차국, 자타국, 산반하국, 걸손국, 임례국인데 구체적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서기》 흠명 23년(562), "23년(562) 봄 정월 신라가 임나관가(任那官家)를 쳐서 멸망시켰다(어떤 책에는 21년에 임나가 멸망했다고 한다). 통틀어 말하면 임나요, 개별적으로는 加羅國, 安羅國, 斯二岐國, 多羅國, 卒麻國, 古嵯國, 子他國, 散半下國, 乞飡國, 稔禮國으로 모두 열 나라이다(卄三年春正月新羅打滅任那官家[一本云卄一年任那滅焉]. 總言任那, 別言加羅國安羅國斯二岐國多羅國卒麻國古嵯國子他國散半下國乞飡國稔禮國合十國)."
(자료 : 이사부, 위키백과)
4) 인도 동북부에 보드가야가 있다
보드가야는 인도 Bihar주의 가야 district에 있는 종교적인 장소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장소로 유명하다. 보드가야는 고대로부터 힌두교와 불교 신자들의 순례장소이다. 불교신자에게는 보드가야는 석가모니 부처와 관련된 4개의 성지중의 하나인데, 다른 3지역은 Kushinagar, Lumbini, Sarnath 도시이다. (아래 내용 참조)
"Bodh Gaya is a religious site and place of pilgrimage associated with the Mahabodhi Temple Complex in Gaya district in the Indian state of Bihar. It is famous as it is the place where Gautama Buddha is said to have obtained Enlightenment (Pali: bodhi) under what became known as the Bodhi Tree.[2] Since antiquity, Bodh Gaya has remained the object of pilgrimage and veneration for both Hindus and Buddhists.[3]
For Buddhists, Bodh Gaya is the most important of the main four pilgrimage sites related to the life of Gautama Buddha, the other three being Kushinagar, Lumbini, and Sarnath. In 2002, Mahabodhi Temple, located in Bodh Gaya, became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source : Bodh Gaya,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중세인도)

인도 동북부 보드가야 주위의 불교 성지 (자료 : 위키피디아)
2. 인도 동북부에 대가야가 있는가의 분석
1) 인도 동북부의 사카와 연관성
(1) 사카관련 유물
아래 마우리언 두상이 있는데, 스키타인(사카인)이 쓰는 모자를 쓰고 있으며, 이는 보드 가야 바로 이웃한 순례도시 Sarnath에서 나왔다 한다. 마우리야 왕조 시기에 활동한 사카엘리뜨로 판단된다.

Sarnath에서 발견된 마우리언 사카인 두상 (자료: 위키피디아)
Figure of a foreigner, found in Sarnath, 3rd century BCE.[108] This is a probable member of the West Asian Pahlava or Saka elite in the Gangetic plains during the Mauryan period.[109][110][111]
아래 보드가야에 있는 문양을 보면 태양신 Surya의 양 옆에 활을 든 자들이 스키타인과 관련 있는 Phrygian cap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AI 활용
Bodh Gaya quadriga relief of the sun god Surya riding between pillars (detail of a railing post), 2nd–1st century BCE (source : wikipedia)
(2) 사카관련 역사 : Shakyamuni (석가모니)와 사카
우리는 석가모니라 부르는 부처의 이름이 사카와 관련된 이름이다. 석가는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였다. 당시의 Shakya 왕국은 팔리 문자로는 Sakka, 즉 사카이다. (아래 자료 참조) 즉 사카는 오래전부터 인도 북동부에서 활동했을 수 있다.
** Shakya kingdom (7c - 5c bc)
"The name of the Shakyas is attested primarily in the Pali forms Sakya and Sakka, and the Sanskrit form Śākya."
(source : shakya,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 카테고리, 고대인도)

BC 500 Sakya location (KOSALA 위) map (source : wikipedia)
(3) Ganga (goddess) 여신과 고깔모자
Ganga는 힌두교 여신이며, 과거 갠지스강을 Ganga라 불렀다. 필자는 이것이 한국어 "강가"로 들린다. 그런데 아래 여신상을 보면 고깔모자를 쓴 것으로 보인다.
"Ganga (Sanskrit: गङ्गा, IAST: Gaṅgā) is the personification of the river Ganges, who is worshipped by Hindus as the goddess of purification and forgiveness. Known by many names, Ganga is often depicted as a fair, beautiful woman, riding a divine crocodile-like creature called the makara.
Some of the earliest mentions of Ganga are found in the Rigveda, where she is mentioned as the holiest of the rivers. Her stories mainly appear in post-Vedic texts such as the Ramayana, Mahabharata, and the Puranas."
(source : Ganga(goddess),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고대인도)

Ganga stone statue, 8th century AD, Ellora. Currently at National Museum, New Delhi, India. (source : wikipedia)
(4) Mathura지역에서의 스키타인 활동
마우리아왕조 이후의 서술에서 인도 스키타인의 활동이 언급된다. (아래 내용 참조) 즉 인도 북부지역에서 인도 스키타인이 백년동안 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The fall of the Mauryas left the Khyber Pass unguarded, and a wave of foreign invasion followed. The Greco-Bactrian king Demetrius capitalised on the break-up, and he conquered southern Afghanistan and parts of northwestern India around 180 BCE, forming the Indo-Greek Kingdom. The Indo-Greeks would maintain holdings on the trans-Indus region, and make forays into central India, for about a century.............
Although the extent of their successes against indigenous powers such as the Shungas, Satavahanas, and Kalinga are unclear, what is clear is that Scythian tribes, named Indo-Scythians, brought about the demise of the Indo-Greeks from around 70 BCE and retained lands in the trans-Indus, the region of Mathura, and Gujarat."
(source : Mauryan Empire,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고대인도)

Mathura in Punjab, India (source : Wikipedia)
2) 보드가야와 한국사 연관성
과거 위키피디아 자료에서는, 보드가야의 사찰에 4개의 숭배하는 것이 있었는데, Mangla-Gauri, Rama-Shila, Shringa-Sthan, Ramayana가 있었다 했는데, 아래 내용으로 변질되었다. 위키피디아에도 역사를 감추려는 자들이 필진으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
"The city is surrounded on three sides by small, rocky hills (Mangla-Gauri, Shringa-Sthan, Ram-Shila, and Brahmayoni), with the Phalgu River on its fourth (eastern) side. "
(source : Gaya, India,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중세인도)
(1) Mangla-Gauri
Mangla는 mangla fort가 있는 역사적 도시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Mangla Fort가 영락없는 고구려 성이다. 더구나 Gauri도 고구려의 이름이다. 즉 mangla-Gauri는 고구려가 이 지역에 진출한 것으로 말한다. 필자는 아직 그 역사적 서술 내용을 찾지 못하였지만, 이 지역이 카시미르지역에 있는 것으로 판단할 때, Transoxiana를 두고 신라 고구려가 대결할 때, 고구려가 판잡지역에 진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이다. 지금은 주위 지역이 댐으로 인해 대부분 수장되어 있다.
"Mangla (Urdu: منگلا)) is a town situated in District Mirpur within the region of Azad Kashmir. The village is located in the west of the foothills of Mangla's fort (which also derived its name from the same village). It is surrounded on three sides by the semicurvature of river Jhelum flowing North to South. It is bordered with Jhelum district and with the right bank of Mangla between the State of Azad Kashmir and Punjab province of Pakistan.
...
Mangla is the site of the historic Mangla Fort.[4] The fort is situated on a high hill overlooking the Jhelum river, dividing the Mirpur and Jhelum districts.
(source : Mangla, wikipedia, 인용출처 : 본 블로그, 카테고리, 중세인도)

Mangla fort (source : wikipedia)
(2) Rama - Shila
이어 숭배되는 라마-신라는 로마의 신라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위키피디아는 인도 동북부 해안가의 도시를 말한다 설명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없다. 역사를 감추기 위한 왜곡으로 보인다. Ramayana에서는 Rama와 Ravana가 싸우는 내용이다. Ravana가 악마로 표시된다. 이는 Roma(신라 수도)와 Ravena(백제 수도)의 전투를 묘사한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당시에는 신라에 속한 가야지역이라서 그렇게 서술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아래 라마야나 이야기를 소개하는 ebook의 이미지를 보면 주인공 Rama는 가운데 활통을 매고 있고 영 옆의 무사들도 활과 활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두 꼭대기가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다. 꼬깔모자의 형태라 볼 수 있다. 스키타인이나 사카인을 묘사할 때의 모습이다.

Asia society Ramayana image (source : wikipedia)
즉 고구려와 신라와 연관된 가야, 모두 한국사와 연관된 모습이며, 또한 사카와 연관된 이미지를 보인다.
이상으로 어느 정도 인도 북동부에 가야의 고깔모자와 관련된 사카의 흔적이 있고, 보드가야를 중심으로 한국사와의 연관성도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이제 추상적인 접근을 넘어서 신라에서 법흥왕과 진흥왕 시기에 가야를 정벌한 역사가 이곳 인도에 있었는가 하는 구체적인 분석을 해야한다. 글이 길어져 이에 대해서는 2부 다음 글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한국의 역사 > 가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대가야는 인도에 있었다 (II) (0) | 2026.06.07 |
|---|---|
| 금관가야는 지중해의 카르타고인가? (0) | 2023.01.29 |
| 김수로왕 부인 허황옥과 카르타고의 Dido 여왕 (0) | 2023.01.26 |
| 신라 지마이사금이 공격한 가야는 시실리에 있었는가? (0) | 2023.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