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수의 미디어 속 이야기]‘불한당’ 정체성 드러낸 새누리당 정권
- 이봉수 | 시민편집인·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hibongsoo@hotmail.com
우 리 사회에서는 이제 이 통념이 바뀌고 있다. 땀 흘려 일해봤자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직장에서 쫓겨나는가 하면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노동자도 많다. 아예 직장을 갖지 못하거나 소득이 형편없는 이들은 결혼도 어렵고 결혼해도 아이 낳기가 두렵다. 모질고 거친 세파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많다.
각종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얼마 전까지 세계에서 ‘고아 수출’ 1위였던 나라가 저출산 1위로 바뀌고, 40대 남자 사망률도 1위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연간노동시간, 10만명당 산재사망자, 저임금노동자비율, 비정규직비율, 노인빈곤율, 자살률 등이 대개 압도적 1위이고, 2위 밑으로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복지지출은 까마득한 꼴찌 수준이다. 그런데도 복지지출이 과다하다고 주장하는 언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그런 정책을 펴는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홀대하는 대신 일하지 않는 ‘불한당’을 위한 정책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내놓는다.
지난해 4월에 발표한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대책’은 제대로 이름을 붙인다면 ‘서민 주거 불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비정상화 대책’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집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이 대부분이니 투기를 부추기는 ‘정책 조합’임이 분명하다.
집값이 계속 올라야 ‘주택시장 정상화’로 보는 주류 언론과 집권세력의 부유층 편향 시각이야말로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무산시키는 주범이다. 소득과 비교한 집값의 비율은 서울이 뉴욕·도쿄의 두 배가 넘는다. 집을 사는 데 소요되는 기간도 너무나 길고, 물려받은 재산 없는 봉급쟁이가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택을 갖기가 이토록 힘든 데다 공공임대주택이 적어 그야말로 ‘지상의 방 한 칸’을 마련하는 일이 지상과제가 된다. 미국은 자기집보유율이 65%나 되고 유럽 국가들은 대개 공공임대주택비율이 20~36%에 이르지만 우리는 둘 다 터무니없이 낮다. 반면 한국의 ‘주택 부자’ 상위 1%는 평균 5.5채의 집을 갖고 있다. 주택시장을 투기장으로 만들어온 경기부양책의 결과다.
올 9월 부동산대책은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낮춰 집값 띄우기를 시도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아파트 수명이 세계에서 가장 짧은 27년이다. 영국 128년, 독일 121년, 미국 72년에 견주면 청소년 시절에 살해당하는 꼴인데 ‘더 일찍 죽여도 좋다’는 허가를 내준 것이다.
어느 정도 경기부양은 필요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최악의 ‘정책 조합’이다. 재건축 연한 축소와 함께 금리를 낮추었으니 물량이 줄어든 데다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려는 집주인들의 이익추구 심리가 가중돼 우려했던 바와 같이 ‘전세대란’이 발발했다.
전셋값 상승을 방치함으로써 주택 매매수요를 촉진하는 정책은 ‘불한당’ 정권이 아니라면 발상하기조차 힘든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던 현 경제팀은 결국 길을 잃어버린 건가? 박근혜 정권 19개월간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이 3000만원 가까이 올랐다니 웬만한 봉급쟁이 연봉을 고스란히 가져간 셈이다.
급등하는 전셋값과 월세 지출은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을 줄여 내수에 타격을 주기 때문에 원래 정책목표였던 경기부양에도 해롭다. 집세 상승을 방치하면서 금리를 인하하고 대출규제를 푼 것은 ‘아니꼬우면 빚내서라도 집 사라’는 건데, 정부 정책에 홀리면 가계부채 상승으로 이어져 ‘하우스 푸어’가 되기 십상이다. 진정한 서민 주거 안정책은 빚을 내지 않고도 집을 살 수 있게 집값을 떨어뜨리는 건데 거꾸로 가고 있다.
▲ ‘서민 주거 불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비정상화 대책’
서민 주거 안정책은 집값 떨어지게 놔두는 것
▲ 불로소득 그대로 둔 채 간접세는 대폭 인상
선거가 없는 해여서 정권의 행패 더 심한가
‘복지 부메랑’ 등 선전선동 진보언론이 제압해야
재정지출 확대는 국가부채 증가로 이어진다. 가계부채 1100조, 국가부채 1000조 시대에 ‘골든 타임’ 운운하며 부동산과 주식시장을 띄우는 데 ‘올인’하는 것은, ‘경기부양의 역사’가 보여주듯 ‘돈이 돈을 벌게 하겠다’는 취지다.
재벌의 중복과잉투자로 촉발된 1997년 외환위기는 상대적으로 건전했던 가계와 정부가 부담을 떠맡았으나 이제는 안전판도 사라졌다. 사실 외환위기는 지내놓고 보니 재벌에는 기회였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부실을 털어버렸고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비정규직·저임금이 보편화하면서 기업 빚이 정부와 가계 빚으로 전가된 측면이 크다. 1997년에 국내 기업의 부채비율은 350%를 넘었으나, 지금은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이 500조원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된 법인세 인하가 상당한 구실을 했음은 물론이다.
주주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배당소득도 일부 대주주에게만 집중된다. 주식을 아예 갖지 못한 서민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2012년의 경우 주주 중에서도 상위 1%가 배당소득의 72%를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가계소득 확충을 명분으로 추진하는 ‘배당소득증대세제’는 결국 대주주에게 특혜를 준다. 이자소득도 상위 1%가 45%를 차지했다.
대표적 불로소득인 임대·주식·이자소득은 방치한 채 서민들이 많이 무는 담뱃세 등 간접세는 대폭 인상할 방침이어서 박근혜 정부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한국의 조세체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소득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는 바가 가장 작다.
담배, 소주, 자동차유류 등에 물리는 간접세의 비중은 2009년의 51.1%도 너무 높은데 2013년에는 54.5%로 높아졌고, 이제 담뱃세 인상 등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에 반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복지지출의 비중은 2012년 기준 9.3%로, 2011년 기준 프랑스 32.5%, 독일 25.9%, 일본 22.3%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낮은 부문은 아동과 노인을 위한 복지지출이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아동복지예산은 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2.3%의 3분의 1 수준이다. 노인빈곤율 48.6%는 회원국 평균인 12.4%의 4배 수준이다. 젊은 시절 어느 나라 노동자보다 열심히 일한 우리 노인들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고려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온종일 종편TV만 보고 자동으로 보수여당을 지지하는 다수 노인들의 자업자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보수언론과 정부는 복지지출이 재정 파탄의 원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선거 때 약속한 복지마저 축소하려 한다. ‘사자방 비리’라 불리는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사업에 100조원에 가까운 혈세를 쓴 것은 덮어두고 2조~3조원이면 되는 급식·보육비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은 우리나라 보수세력의 견강부회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박근혜 정부가 초래한 연간 세수부족분 8조~10조원도 실은 실효세율이 너무 낮은 법인세와 유명무실한 종합부동산세 감소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와중에 재벌 3세는 계열사 주식형 사채의 헐값 인수와 일감 몰아주기에 이은 기업의 증시 상장으로 수백 배 차익을 남기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삼성SDS 차익실현으로 18일 블룸버그가 발표한 세계 300대 부자 대열에 들어갔다. 그가 삼성그룹을 승계하면서 지금까지 낸 증여세는 고작 16억원이다.
복 지증세는 필요하지만 사실상의 탈세행위를 방조하고 있는 정부가 납세 의무를 강조하는 건 국민의 부아를 지르는 것이다. 중견기업까지 가업상속공제 대상에 포함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봉급쟁이들은 법정세율이 곧 실효세율이니 탈탈 털릴 수밖에 없는 데다 각종 공과금들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선거가 없는 해여서 행패가 더 심한 건가? 내가 ‘불한당 정권’이라 명명한 이유다.
‘우회 증세는 복지 탓’, ‘복지 부메랑’ 등 그럴듯한 선동문구를 만들어내는 일부 언론과 정부는 그 입을 다물어야 한다. 아니 다물게 해야 한다. 세금 논쟁은 유럽 복지국가에서조차 보수·진보언론이 가장 활발하게 의제활동을 벌이는 각축장이긴 하지만, 통계가 보여주는 사회 현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99%를 위한 신문을 제대로 만드는 일은 진보언론의 활로이기도 하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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