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에서 '安(안)'지역은 어디인가?

2015. 5. 29. 01:47과거의 생각

고대사에서 '安(안)'지역은 어디인가? 

 

당나라에서 1/3의 군권을 가졌던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키고 연황제임을 칭했다. 그런데 안록산은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소그드인 출신이기 때문에 '安(안)'씨 성을 가졌다 하며, 록산은 터키어로 '로우샨'으로 빛을 의미하는 말의 한자 음차음이라고 한다. 

 

후한(동한)시대에 불경을 번역한 安息國(안식국)의 왕자출신인 '안세고'도 역시 중앙아시아 이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安(안)씨성을 가졌다 한다. 안식국은 중앙아시아의 파르티마제국을 말한다 한다. 

 

현장과 혜초는 실크로드 철문관을 지나 "安國(안국)"으로 들어 갔다 한다. 철문관은 지금 중국이 주장하는 지역과 달리 우즈베키스탄에 있다고 하는 주장이 통설이다. 

 

나는 다뉴브강에 있는 Iron Gate 가 혹시 철문관이 아닌가 한다. 다뉴브강 하류쪽 지역에 스키타이족인 다키아인/트라키아인이 예전부터 살고 있었다 한다. 이들의 언어로 다뉴브강을 Donaris라 부른다 하는데 Don은 강이라는 뜻이라 한다. 따라서 혹시 다뉴브강이 아리수강이 아닌가 생각한다. 혜초가 지나갔다는 철문관이 여기라면 '안국'은 다뉴브강 지역의 스키타이인 지역인 다키아/트라키아/모에지아 지역이 될 수 있다. 

 

 

 

               다뉴브강의 iron gate (source : Wikipedia)

 

 

 

Iron Gate Gorge at Danuve River (source : Wikipedia)

 

 

 

                              다키아/트라키아/모에지아 민족들의 위치 (source : Wikipedia)

 

 

소그드인이 사는 '安國(안국)'의 북쪽에 '康國(강국)'이 있었다 한다. '康居(강거) ' 즉 康氏(강씨)가 사는 나라라는 것이다. 안록산은 아버지가 소그드인 강씨라 한다. 어머니는 돌궐인이라 한다. 그래서 성이 "康(강)"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앙아시아 지도 (source : Wikipedia)

 

 

광개토왕의 이름은 '담덕'으로 알려져 있는데 , 중국 사서에서는 "安(안)"이라고 한다. 장수왕이 서거했을 때 외교관계가 각별했던 북위의 효문제는 "康王(강왕)"이라는 시호를 보냈다 한다. '康國(강국)'의 康(강), '康居(강거)'국의 그 '康(강)'자이다. 즉 중앙아시아 또는 더 서역의 스키타이인이 사는 다뉴브강지역의 왕이라는 것이다. 이는 광개토왕의 이름을 "安(안)"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로마를 뒤흔들었던 훈족이 누구인가에 대해 유럽의 역사가들은 궁금해 했다. 그들이 각궁을 이용하고, 말위에서 뒤로 가며 화살을 쏘는 배사법으로 활을 쏘며, 말에 등자를 쓰며 양손을 움직여 전투하고, 화살이 날아가며 소리를 내는 "명적"이 있으며, 동이족의 편두를 가졌다 하여 한민족이라고 최근 재야 사학자는 주장한다. 독일의 ZDF 방송에서도 이들이 한국과 관련된 것 같다고 한단다. 

 

흉노와 훈족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역사계에서는 관계가 있다 없다 설왕설래 하지만 서양 역사학자 중에서도 동일하다고 하는 학자가 있다. 고구려의 5부족 소노부 절노부 계루부 순노부 관노부 등의 '奴(노)'자가 흉노의 奴(노)자이다. (그래서 슬라브족이 흉노족인지도 모른다) 초기에는 소노부에서 왕이 났다고 한다. 少西奴(소서노)는 서쪽의 少奴部(소노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절노부는 주로 왕비를 내는 부족이고 후에는 계루부에서 주로 왕이 나왔다 한다. 그래서 흉노의 두만선우나 모돈선우가 고구려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주몽은 몽고역사에서 투멘 메르켄 칸이라고 불리는데 두만선우와 동일인일 수 있다. 그래서 고구려의 역사가 900년이라는 말이 나온지 모른다. 

 

훈족의 유럽 정복활동은 고대 로마사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울딘"이라는 훈족의 최고사령관이 있었는데, 동로마를 유린하며 아나톨리아 (지금의 터키지역) 지역까지 정복활동을 하였다. 이에 트라키아 총독이 동로마를 대신해 협상을 하였는데 '울딘'은 협상 사절단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정복할 것이라고. 이 '울딘'이 사망한 해가 410-412년경 이라 한다. 광개토왕이 서거한 년도이다. 난 이 '울딘'이 광개토왕이 아닌가 한다. 훈족이 자기들의 조상이라 하는 헝가리 어느 family site는 '울딘'이 흑해 위 지방에서 태어났고 헝거리에서 죽었다고 했다. 광개토왕의 이름이 '安(안)'이라고 하는 것과 상통한다. 

 

 

 

이민족의 로마 침입 (AD 100- AD 500) (source : Wikipedia)

 

 

 

                    훈족의 아틸라 정복지역 (source : Wikipedia)

 

 

광개토왕의 시기에 신라가 왜의 침입을 받아 광개토왕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광개토왕은 400 AD, 5만의 기보병으로 이들을 물리치고 왜의 근거지까지 쫓아가 괴멸하였다 했다. 아신왕의 백제사를 보면 이때 백제 왜 가야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한 것으로 나온다. 백제는 근초고왕 시절부터 왜와 국교를 수립하고, 백제의 왕들은 (예: 근구수왕) 왕자시절 왜에서 천황으로 지내고 있었다. 따라서 백제 왜 가야가 연합세력이 되고, 신라 고구려가 연합하는 상황이었다. 고구려의 신라 원정이후 고구려는 약 100년간 신라에 머무르며 간섭을 했다고 나온다. 

 

 

 

           AD 400년에 세워진 지금도 이용되고 있는 로마의 성곽 (source : Wikipedia)

 

서로마의 역사에서도 훈족의 도움을 요구한다. 그래서 훈족 '울딘'의 도움(406년)으로 위기를 벗어 난다. 훈족은 그러나 비잔틴제국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지낸다. 훈족의 '울딘'은 투나강-헝가리에서는 다뉴브강을 'Duna'라 했다 함 - 을 건너 동로마를 지나 아나톨리아를 여러차례 걸쳐 (395, 397, 404-405, 409년) 유린한다. 그래서 도움을 받은 서로마가 신라이고, 훈족이 여러번 유린한 비잔틴제국이 '백잔' (광개토왕의 비문에 나옴)이라는 백제가 아닌가 한다. 

 

 

 

               Mamure castle in Anamur in Turkey (source : Wikipedia)

 

 

 

Carcassonne city walls in southern  France (source : Wikipedia)

 

 

 

                     Avila city walls in Spain (source : Wikipedia)

 

 

 

              보스포러스해협 아나톨리 성 (터어키) (source : Wikipedia)

                      

 

 

보스포러스 해협에 있는 Rumeli Hisari (Turkey) (source : Wikipedia)

 

광개토왕 시절에는 백제 근초고왕때 당한 치욕 (평양성 함락 및 고국원왕의 전사)을 갚기 위해 아리수를 건너 백제를 매우 공격하여 여러 성을 취하였다. 천혜의 요새라는 '관미성'을 7개 길로 진격하여 20일 동안 포위하여 함락시키고 취하였다. '수곡성'도 점령했다. 관미성은 바다로 둘러 쌓였다 한다. 水谷城(수곡성)은 물수 계곡 곡이다. 역시 험한 강 계곡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들은 관미성이 지중해에 접해 있는 트로이성이거나 에게해 섬의 성일 수 있고, 수곡성은 다뉴브강변의 Iron gate gorge에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지형적으로 다른 주위의 강이나 중앙 아시아에는 이에 걸맞는 곳을 아직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평양 천도 이후 신라, 백제는 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공동으로 대항했다. 서로마, 동로마도 비슷한 양상으로 훈족에 대항한다. 

 

연대는 다소 차이가 나지만, 광개토왕이 신라를 도와 왜를 물리친 후 신라의 왕을 내물이사금에서 실성이사금으로 교체했다. 훈족의 도움을 받은 로마도 원로원의 결정으로 왕을 교체했다. 

 

로마의 원로원은 만장일치제인데 신라의 귀족회의인 화백회의도 만장일치제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연유로 서로마는 신라, 비잔틴제국은 백제라 생각된다. 

 

이는 많은 의미를 포함한다. 

 

다뉴브강이 아리수 (한강)이며, 백제와 연합한 왜와 가야는 지중해에 있는 섬이거나 북아프리카에 있는 세력이 된다. 신라는 로마제국이 된다. 이경우 경주의 무덤에서 로마 문화와 많은 연관있는 유물이 나온 것을 설명하고, 스페인의 신라지명, 나폴레옹의 스페인에서의 학살을 Massacre en Coree (고려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 등을 설명할 수 있다. 

 

유럽에서의 훈족의 역사가 고구려의 그것이 된다. 다뉴브강 지역을 지배한 훈족의 역사가 고구려의 역사가 된다. 다뉴브강(Donaris), 볼가강(란하) 드네프로강(멀리 있는 강, 요하?), 드네이스트강(가까이 있는 강), 아무다리야강 (약스강), 시르다리야강 (옥수스강), 인더스강(Sindhu), 갠지스강(Ganga 강가) 등의 강이 괄호안의 이름같이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들 지역이 고조선의 활동 지역으로 판단되는데, 고구려가 이러한 고조선의 옛 영역을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서로마는 475년 오도아케르에 의해 망했다고 한다. 이는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 한성 백제를 멸망시키는 해이다. 오도아케르도 고트족이라 하지만 다른 주장은 훈족이라 하고, 사망한 해(493년)가 장수왕(491년)과 비슷하다. 

 

신라는 진의 유민이 세운 나라라 했다. 로마를 조선에서는 '大秦(대진)제국'이라 했다 하는데, 신라가 로마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이라는 진시황의 진나라, 유방, 한무제의 한나라, 그리고 당나라가 중앙아시아나 지중해에서 활동한 나라인지 모른다. 위키백과에는 後秦(후진), 後漢(후한), 後唐(후당)이 중앙아시아 역사지역에 소개 된다. 이들 국가를 세운 사람들이 소그드인이라서 그렇게 분류했다 한다. 그들이 秦(진), 漢(한), 唐(당)이 있던 지역에 나라를 세웠으니 후진, 후한, 후당이라 하지 않았을까? 

 

현재 지나 중국은 현재의 땅이 대대로의 중국 역사지역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서양학자들도 중국과 아랍이 역사 조작을 했다고 말한다. 

 

요수 즉 요하는 역사적으로 많이 언급되는 지역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중국의 3대강이 황허, 장강, 그리고 압록수인 요수라 했다. 현 지나 중국은 이들이 황하강, 양자강, 란창강 (메콩강 상중류)이라 한다. 

 

그러나 중국지역이 지중해 지역이나 중앙아시아 지역을 말한다면, 이들은 볼가강 (란하, yellow river란 뜻, 황하?), 다뉴브강(장강? 한강?), 그리고 아직 어딘지 연구 중인 압록수인 요수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발상은 다음과 같은 주장도 참고한 후이다. 

 

'샤먼제국'이란 책을 쓴 박용숙 교수는 알렉산더왕이 진시황이라고 주장한다. 한부을님의 세계삼한역사 블로그에서는 진시황이 알렉산더왕이라는 것을 10여 가지 이유를 대며 주장하는데 매우 설득력이 있다. 

 

러시아의 한 수학자(Anatoly Fomenko: "History; fiction or science"의 저자)는 유럽의 고대 로마사, 고대 그리스사, 고대 이집트사는 모두 조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로마가 신라, 백제이고, 훈족의 역사가 고구려의 그것이라면, 진한, 마한은 지중해, 유럽지역일 수 있다. 

광개토왕시절 고구려는 마한 여러 나라를 정복했다고 광개토왕비문에 나온다. 훈족이 울딘이 광개토왕이라면 로마와 동유럽, 소아시아 아나톨리아 지역, 중앙아시아 등에서의 활동이 마한지역일 수 있다. 

 

마한은 목지국 또는 월지국이 리드한 국가였는데 중국 사서에서는 월지국이 타림분지에 있다가 흉노에 쫓겨 중앙아시아로 갔다가 더 서진했다고 한다. 즉 마한은 서역에 있었다는 이 이야기는 나의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안국'의 安(안)은 중앙아시아를 넘어 동유럽지역을 말하게 된다. 왜냐하면 백제지역이란 당나라의 '안남'도호부가 비잔틴제국 지역이 되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일부인 '안북'도호부 지역은 다뉴브강 위지역이 될 것이다. 이경우 혜초가 '안국'을 가기 위해 지나쳤다는 철문관은 우즈베키스탄의 그것이 아니라 다뉴브강의 iron gate 가 되는 것이다. 

 

나는 미국 사학계는 가야가 인도지역에 있다고 주장한다는 말을 듣고 가야를 인도에서 찾아 보았다. 구글에서 찾아 보니 인도 동북부에 Gaya시가 지금 존재한다. 위키백과에서는 보드가야란 나라가 이곳에 있었는데 석가모니가 깨우치고 설법한 곳이라 한다.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의 성지인 현재의 가야시에는 4개의 성지 temples이 언덕 위에 있는데, Rama-shila, mangla-gauri, shringana, Ramayana가 그것이다. 난 라마-신라는 로마 신라를 숭배하는 것이고, 막라(?)-가우리는 고구려를 숭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Mangla를 구글에서 찾아보니 manglar=mangrove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로 영국 독일 프랑스 지역이 원산지라 한다. 그래서 이들 지역까지 진출한 훈족의 고구려를 숭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라마야나는 힌두교 신화인데 라마와 라바나와의 싸움을 말하고 있다. 혹시 로마와 라벤나의 대결을 의미한 것이 아닌지 상상한다. 두 곳 모두 로마의 수도였다. 진시황과 알렉산더왕은 샨스크리트어로 된 서적을 모두 불살랐다 한다. 고조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은유적으로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나의 주장도 다음과 같은 숙제를 안고 있다. 즉 서로마가 신라도 되었다가 백제도 되는 문제이다. 서로마 지역이 워낙 넓고 이민족의 침략도 많아 그 주인이 바뀌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보다 깊은 연구가 더 있어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과 북인도지역의 사산왕조가 (두 여왕을 비교하며) 신라라고 비정하는 분석을 보았는데, 이것은 신라의 동진과 서신라, 동신라의 구분 등을 더 연구해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백제도 왕성이 거발성과 고마성 두 곳이었다고 하는데, 475년 망한 서로마 지역이 다뉴브강 (한강) 지역의 위례성(거발성)을 갖고 있는 한성 백제같고, 웅진의 백제는 고마성(고마는 곰이란 뜻)일 것으로 짐작되는 비잔틴제국의 이스탄불이 아닐까 생각된다. 

 

심백강선생은 백제가 당에 망한 것은 일부이며, 계속 존재하여 원나라에도 백제가 조공했다고 나온다 한다. 비록 비잔틴제국이 약해졌지만 15세기 중반까지 존재한 것을 보면 비잔틴제국이 백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백제는 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당에 백제가 망한후 일부 세력은 왜와 함께 부흥운동을 하였으며 왜로 건너갔다고 하였다. 이는 왜로 짐작되는 북아프리카 지역을 계속 점하고 있는 비잔틴제국을 그래서 또한 백제로 비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7세기 백제와 신라 당과의 전쟁시 연구는 추후 과제이다. 

 

이러한 나의 가정은 평양이었다는 '西安(서안)'이란 市(시)는 지금의 중국이 아닌 다뉴브강 연안의 어느 도시인지 모른다. 그리고 安市城(안시성)도 중앙아시아 지역이나 동유럽지역에 있을 것이다. 요하 가까운 서쪽에 안시성이 있다 했으니 요수도 이 지역에서 찾아야 하고, 그렇다면 산해관의 위치도 그럴 것이다. 고구려와 수 당의 전쟁터, 고구려와 연나라와의 전장터인 요동 요서지역이 모두 관련된 지역이 이곳이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고조선지역인 낙랑, 대방, 현도지역이 이 지역이 되는 것이다. 패수, 살수도 이 지역에 있어야 한다. 백제는 패수를 건너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했고, 신라는 살수에서 고구려와 싸웠다. 

 

훈족의 이동으로 게르만족이 이동하여 로마가 결국 망했다 하는데, 고트족, 반달족 켈트족, 앵글로 색슨족, 프랑크족 등 게르만족은 너무 많은 종족을 포함하고 있어 그 특징을 찾기 힘들다. 금발에 흰 피부라는 아리안이라는 것보다는 게르(몽고족의 천막)를 쓰는 유목 야만족을 게르만이라 일컬은 것이 아닌가 상상해 본다. 그래서 금나라 요나라가 중앙아시아, 동유럽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이러한 나의 비정은 앞으로도 계속 검토될 것이다. 세계사를 모두 알고 검토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역사를 한반도에 비정하고 우리 조상들의 찬란한 역사를 지우는 역사 왜곡의 최첨단에 서 있는 그들의 역사가 구글 모든 곳에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열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어 이러한 지난한 일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