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이 정복한 백제의 관미성은 흑해의 크리미아반도에 있었다

2019. 2. 14. 06:44과거의 생각

광개토대왕이 정복한 백제의 난공불락 관미성, 수곡성은 흑해의 크리미아 반도에 있다. 난 비잔틴제국이 백제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관미성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보았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다 했다. 그리고 암석으로 해안이 둘러 쌓여 있다고 했다. 그래서 광개토대왕이 7개 진로로 20일 밤낮을 공격하여 마침내 함락 시켰다 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고 했다. 

 

비잔틴 백제는 흑해를 통해 실크로드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래서 흑해연안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난 이미 본 블로그에 올린 " 요수(압록수), 살수, 패수의 비정을 통한 갈석산의 위치 검토" 글에서 비잔틴 백제가 요서에 2개현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했다. 

 

그런데 흑해에서 매우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또 하나 있는 곳이 크리미아 반도이다. 역사적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다. 그래서 크리미아를 살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관미성을 묘사한 지형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이 공격한 시기(391 AD) 비슷한 시기에 훈족이 정복(AD 376년)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난 본 블로그에 올린 글, " 한국 고대사에 '안'지역은 어디인가?" 에서 광개토대왕의 백제, 신라 정벌이 훈족의 로마 정벌일 수 있다고 이미 추정한 바 있다. 

 

아래 관미성에 관한 나무위키 자료를 옮긴다. 

 

"겨울 10월에 백제 관미성(關彌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그 성은 사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바닷물이 둘러싸고 있어 왕이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20일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6 광개토왕 1년 겨울 10월 기사.

 

"겨울 10월에 고구려가 관미성을 쳐서 함락시켰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3 진사왕 8년 겨울 10월 기사.

 

"영락 6년 병신년에 왕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잔국(백제)을 토벌하였다. (우리) 군은 영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성, 각미성 , 모로성, 미사성, □사조성, 아단성, 고리성, □리성, 잡진성, 오리성, 구모성, 고모야라성, 혈□□□□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성, 두노성, 비□□리성, 미추성, 야리성, 태산한성, 소가성, 돈발성, □□□성, 루매성, 산나성, 나단성, 세성, 모루성, 우루성, 소회성, 연루성, 석지리성, 암문□성, 임성, □□□□□□□리성, 취추성, □발성, 고모루성, 윤노성, 관노성, 삼양성, 증□성, □□노성, 구천성 등을 공취(攻取)하고, 그 도성(위례성)에 다다랐다."(이후생략)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討伐殘國. 軍□□首攻取 寧八城,臼模盧城,各模盧城,幹?利城,□□城, 閣彌城 ,牟盧城,彌沙城,□舍?城,阿旦城,古利城,□利城,雜珍城,奧利城,勾牟城,古模耶羅城,頁□□□□城,□而耶羅城,?城,於利城,□□城,豆奴城,沸□□利城,彌鄒城,也利城,太山韓城,掃加城,敦拔城,□□□城,婁賣城,散那城,那旦城,細城,牟婁城,于婁城,蘇灰城,燕婁城,析支利城,巖門□城,林城,□□□□□□□利城,就鄒城,□拔城,古牟婁城,閏奴城,貫奴城,?穰城,曾□城,□□盧城,仇天城,□□□□□其國城

광개토대왕릉비 영락 6년(396년) 기사.


원래는 백제의 북방을 지키던 천혜의 요새[3]로, 사면이 가파른 절벽에다 바다에 둘러싸인 구조로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다. 하지만 고구려 광개토대왕 1년(391) 겨울 10월에 광개토대왕이 직접 백제를 침공하여 수곡성 등 백제 북방의 성들을 함락시켰을 때 관미성 역시 공격하였고, 일곱 방향에서 20일 동안 밤낮으로 성을 공략한 끝에 결국에는 관미성을 함락시켰다.

관미성이 빼앗긴 것은 백제에게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이는 백제 북방의 주요 방어거점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서해로 빠져나가는 해상기지를 잃은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 당연히 백제에서는 이후 진사왕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아신왕이 392년 8월에 군사 1만과 진무를 보내어 관미성을 탈환하게 하였으나 관미성의 압도적인 방어력과 고구려군의 보급로 차단으로 인하여 성을 탈환하는데 실패했고 이후로도 백제는 고구려에 대하여 공격을 시도하나 매번 실패로 돌아간다. 오히려 4년 뒤 396년에 광개토대왕이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공략할 때 수군의 전진기지로 관미성을 이용하여 지상군은 위례성 북쪽의 아차산성, 수군은 한강을 통하여 위례성을 압박하였고, 결국 아신왕을 항복시키고 58성 1400촌[4]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로도 관미성은 고구려의 수군기지로서 고구려가 서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고 남방을 압박하게 된다.

자료 : 나무위키

 

다음은 영문 Wikipedia자료를 살펴 보자.

 

"The recorded history of the Crimean Peninsula, historically known as Tauris (Greek: Ταυρικ?), Taurica, and the Tauric Chersonese (Greek: Χερσ?νησο? Ταυρικ?, "Tauric Peninsula"), begins around the 5th century BC when several Greek colonies were established along its coast. The southern coast remained Greek in culture for almost two thousand years as part of the Roman Empire (47 BC - 330 AD), and its successor states, the Byzantine Empire (330 AD - 1204 AD), the Empire of Trebizond (1204 AD - 1461 AD), and the independent Principality of Theodoro (ended 1475 AD). In the 13th century, some port cities were controlled by the Venetians and by the Genovese. The Crimean interior was much less stable, enduring a long series of conquests and invasions; by the early medieval period it had been settled by Scythians (Scytho-Cimmerians), Tauri, Greeks, Romans, Goths, Huns, Bulgars, Kipchaks and Khazars. In the medieval period, it was acquired partly by Kievan Rus', but fell to the Mongol invasions as part of the Golden Horde. They were followed by the Crimean Khanate and the Ottoman Empire, which conquered the coastal areas as well, in the 15th to 18th centuries...….

 

The Crimean Peninsula north of the Crimean Mountains was occupied by Scythian tribes. Their center was the city of Scythian Neapolis on the outskirts of present-day Simferopol. The town ruled over a small kingdom covering the lands between the lower Dnieper River and northern Crimea. In the 3rd and 2nd centuries BC, Scythian Neapolis was a city "with a mixed Scythian-Greek population, strong defensive walls and large public buildings constructed using the orders of Greek architecture". The city was eventually destroyed in the mid-3rd century AD by the Goths

......

Throughout the later centuries, Crimea was invaded or occupied successively by the Goths (AD 250), the Huns (376), the Bulgars (4th-8th century), the Khazars (8th century)." (source ; Wikipedia)


이지역은 BC 3세기부터 스키타이가 살던 곳으로 전해진다. 스키타이족, 고트족, 훈족, 불가(부여족)족 모두 우리와 관련이 깊은 종족이다. 훈족에 의해 376년 정복되었다고 기술된다. 우리나라 역사의 광개토대왕 정복년도 391년과 다소 차이가 있다. 최근의 유적발굴에서 스키타이, 즉 사카족의 무덤양식이 많이 발굴된다고 한다. 즉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곳 지형을 사진으로 살펴 보자. 바위로 둘러 쌓인 해변을 보면, 그리고 내륙으로도 바위산이 많은 Grand Canyon이라 하는 것을 보면 관미성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아래 사진에서 수닥성 (수곡성)은 백제의 성곽임을 보여 주며, 고구려의 성곽은 원형 Tower 모양을 보이는 Cembalo Fortress가 그것일 것으로 판단된다. 

 

Swallow's Nest Castle in south central coast of Crimea Peninsula (source : Wikipedia)

 

 

Sudak Fortress by Genoese Byzantine empire at south central coast of Crimea Peninsula (source : Wikipedia)

 

 

 

Sudak Fortress at south central coast of Crimea Peninsula (source : Wikipedia)

 

 

Crimea Peninsula Map (source : Wikipedia)

 

 

Cembalo Fortress in Balaklava at south west coast of Crimea Peninsula (source ; Wikipedia)

 

 

South west coast at Balaklava, Sevastopol city in Crimea Peninsula (source : Wikipedia)

 

 

Cape Tarkhankut, 크리미아 반도 중간 서쪽끝 해안 (source ; Wikipedia)

 

 

Cape Tarkhankut: 크리미아반도 중간 서쪽끝 해안 (source ; Wikipedia)

 

 

크리미아 반도 어느 흑해 연안 (source : Wikipedia)

 

크리미아 남쪽 해안 중간지점에 있는 수닥성의 해안 (free source : iStock)

 

Ruins of Old Arabat Peninsula Fortress in Crimea (source : Wikipedia)

 

 

Yeni Kale Fortress in Kerch, south east end coast of Crimea Peninsula (source ; Wikipedia)

 

 

Sudak Fortress는 Sugda가 원래인데 바닷가에 위치한 성곽이다. 광개토대왕이 관미성을 공격할 때 같이  함락 시킨 수곡성이 아닌가 한다.  관미성은 구체적으로 찾기 힘들었다. 보다 침략이 잦았던 내륙지역에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은 위의 자료에서 보듯이 드네프로강과 연결되는 주요한 무역 교통로가 된다. 따라서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전략적인 요충지가 된다. 이곳은 또한 세계 2차대전이 끝난 후 얄타회담이 열린 곳이다. 러시아가 2014년에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지역이기도 하다. 


Map of Crimea Peninsula in Byzantine Empire (source : Wikipedia)

 

"396년에 광개토대왕이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공략할 때 수군의 전진기지로 관미성을 이용하여 지상군은 위례성 북쪽의 아차산성, 수군은 한강을 통하여 위례성을 압박하였고, 결국 아신왕을 항복시키고 58성 1400촌[4]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로도 관미성은 고구려의 수군기지로서 고구려가 서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고 남방을 압박하게 된다." (나무위키 자료)

 


백제의 위례성은 한강인 다뉴브강 아래 있을 것이다. 결국 고구려는 이곳 수군기지를 이용하여 백제의 위례성 북쪽의 아차산성을 함락 시키고, 결국 위례성까지 진격하여 항복을 받았다. 그리고 이곳을 잘 지킴으로써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백제는 이 관미성을 잃음으로써 드네프로강 (패강)을 경계로 하던 고구려와의 국경이 다뉴브강 아래로 밀린 듯하다. 후에 성왕으로 추정되는 비잔틴제국의 Justinian I세때의 비잔틴 제국 최대 영역은 다뉴브강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사에서는 백제가 패강을 경계로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했다. (패강이 드네프로 강인 것에 대해서는 바로 전에 올린 글 " 요수(압록수), 살수, 패수 비정을 통한 갈석산 위치의 검토"에서 논한 바 있다.) 즉 드네프로강과 연결되어 있는 크리미아 반도의 관미성을 잃음으로써 결국 드네프로강에서 다뉴브강까지 국경이 밀리게 된 것이다. 고구려는 이 전략적 요충지를 이용하여 다뉴브강가에 있는 백제의 위례성까지 함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이곳 관미성, 크리미아반도는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