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백제

백제의 백강, 주류성은 터어키 남부 지중해 연안에 있었다

Chung Park 2019. 9. 18. 05:11

백제 최후의 항전지 백강 (백촌강), 기벌포그리고 주류성 등에 대해 기존 사학계는 아직도 한반도내에서 그 위치 비정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내고 있지만그 지리적 특성에 맞는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이에 필자는 비잔틴제국이 백제라는 관점에서 백제의 최후 항전지 백강기벌포그리고 주류성피성덕물도 등의 위치를 비정해 보고자 한다.

 

필자가 백제의 최후 항전지를 비잔틴제국에서 찾는 것은 필자가 본 블로그 글, ‘로마는 백제이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신라이다’, ‘광개토태왕이 점령한 관미성은 흑해의 크리미아 반도에 있다’, ‘장보고의 청해진은 지중해 시칠리아섬과 샤르데냐섬에 있었다’, ‘김수로의 금관가야는 코카서스산맥 아래 아르메니아에 있었다’, ‘ 우마이야 왕조는 신라이다’,그리고 최근 의 글, ‘신라 백제고구려가 다툰 한강은 코카서스산맥 아래 Kura River이다’ 등의 글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백제는 비잔틴제국신라는 사산왕조 페르시아그리고 고구려는 이들 지역의 북쪽을 포함한 훈족흉노돌궐의 지배지역이라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만약 필자의 백제 최후의 항전지 비정이 비잔틴제국에서 찾아지지 않는다면그동안의 연관된 주장이 설득력을 잃을 것이고반대로 필자의 주장이 백제의 최후의 항전지 비정에 설득력을 얻는다면 그동안의 필자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된다 하겠다.

 

백제의 의자왕 시절충신 성충과 흥수는 이구동성으로 기벌포와 탄현을 주 방어지로 삼을 것을 목숨을 걸고 주장했다그만큼 지역적으로 이들 지역이 백제에의 침략 루트로서 가장 취약한 지역이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이들 지역은 당시 신라와의 대척상태에서 지형적으로 특수한 방어 군사요새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그 구체적인 지역 설정은 막연히 찾기에는 바다 속에서 금반지를 찾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그래서 필자는 우마이야 왕조의 초대 칼리프인 Muawiyah 신라 문무왕으로 추정되는 것에 착안하여그의 military campaign을 추적하면 신라의 백제 통일 전쟁에 대한 기록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연구를 시작했다그래서 Muawiyah가 칼리프가 되기 전의 역사를 추적하게 되었고결국 단서를 찾고 확신하게 되어 이글을 쓰게 되었다.

 

 

1. 신라의 백제 통일전쟁으로 판단되는 Battle of Masts (654-655)

 

Battle of Masts는 아래 자료에서 보듯이우마이야왕조 전의 Rashidun Caliphate시대 (623-661)에 당시 시리아의 Governor인 Muawiyah가 비잔틴제국(=백제)을 상대로, 654년 지상으로는 터어키의 아나톨리아에 있는 카파도키아로 진격하면서한편으로는 그의 수군이 이집트에서 온 수군과 함께터어키 아나톨리아 남부 해안 Antalya province 지역의 Phoenix(현재 Finike)(Lycia지역)을 공격하고 승리하여이후 Constantinople까지 진격하는 전쟁이다이러한 공격은 그동안 지중해의 여러 섬들과 북아프리카를 공격하여 점령한 후654-655 비잔틴제국의 500척의 Emperor Constans II (641-668 재위)(의자왕 추정)의 함대와 마지막 결정적 전쟁을 한 것이다 

 

 

 

 

Location of Antalya Province in Turkey (source : Wikipedia)

 

 

 

 

Location of Lycia in Turkey (source : Wikipedia)

 

우리 역사에서는 660년 한번의 전쟁으로 백제가 망하는 것으로 기록되었다한반도에서는 가능할 것이나백제를 지중해 전지역을 관할하고 북아프리카이집트시리아까지 포함한 비잔틴제국으로 고려할 때한번의 전쟁으로 멸망 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백제가 멸망한 이후 부흥운동 등으로 전쟁이 계속된 것을 보면 한차례의 전쟁으로 백제가 망한다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여하튼 비잔틴제국은 642년 시리아이집트를 Muawiyah에게 빼앗기며이어 646년 Alexandria, 649년 Cyprus 653년 Crete, Rhodes 섬 등을 점령당한다결국 비잔틴제국(백제)은 654-655년 Battle of Masts에서 결정적 패배를 안고 이후 지중해의 해상권을 빼앗기게 된다비잔틴제국의 Constans II 황제는 이 전쟁 패배후 시칠리아로 간신히 살아 도망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래 자료에서 보듯이 이러한 연대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대체적으로 비잔틴제국 자료아랍자료가 일치함을 보여 준다.그리고 Muawiyah는 콘스탄티노플까지 진격하지만 함락하지는 못하고아랍내 내란(First Fitna)으로 인하여 철수한 것으로 기술된다.

 

이 점은 백제 의자왕이 사비성에서 웅진성으로 피신하여 버티다가 항복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우리 역사와는 다소 차이를 보여 준다비잔틴제국의 역사는 동로마역사로서 서양 역사의 자존심의 하나이므로 각색 윤색될 수 있다고 본다실제 비잔틴제국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기술되는데나라 시스템이 바뀌는 점을 지적하며 뭔가 큰 변화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또한 필자가 본 블로그의 글 ‘김헌창의 난은 지중해 크레타섬 및 터어키 아나톨리아에서 있었다’라는 글에서 주장하듯이 822년 시기의 비잔틴제국은 신라임을 고려할 때, Battle of Masts(654-655)이후 언젠가 왕조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 역사서에서는 당나라의 수군이 참여하는 것으로 기술되는데비잔틴제국과 아랍국가간의 전쟁 역사를 보면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수군의 참여가 있었으며이는 Muawiyah가 시리아이집트를 관할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외부의 수군이라 할 수 없다또한 당이 이집트 등의 위치로 고려하기에는 고구려와의 전쟁 등으로 위치 추정상 무리가 있어 보인다결과적으로 당이 신라라는 의구심도 들 수 있는데이는 매우 큰 주제이므로 이 다음 연구과제로 삼고자 한다.

 

또 하나왜의 수군이 원군으로 백제 수군을 도왔다고 한다그러나 비잔틴제국의 기록과 아랍의 기록에는 이러한 기술이 없다단 그 당시 비잔틴제국의 입장에서 협력적인 관계는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섬들이므로 이들이 왜의 원군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본다비잔틴제국의 기술에서는 Constans II 황제가 Battle of the Masts를 직접 지휘하고 전쟁하다가 패하니까 부하의 옷으로 변복하고 간신히 살아 남아 시칠리아섬으로 피신했다고 나온다. Constans II 황제는 의자왕으로 추정되지만이 전쟁에서의 모습은 후일 왜에서 돌아와 백제 부흥운동을 한 백제 왕자 풍이 아닐까 한다시칠리아 섬으로 갔다는 것은 왜의 수군이 함께 전쟁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난 본 블로그 글 ‘광개토태왕이 경략한 임나 가라는 지중해에 있었다’라는 글에서 왜의 ‘임나’지역이 시칠리아섬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이에 대해서도 왜의 정체를 연구하는 기회가 있을 때 후일 추가 연구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백제의 마지막 항전지로 간주되는 백강 (백촌강), 기벌포주류성피성덕물도 등의 위치를 비정하는 차원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The Battle of the Masts (Arabicمعركة ذات الصواريromanized Ma‘rakat Dhāt al-Ṣawārī) or Battle of Phoenix was a crucial naval battle fought in 654 (A.H. 34) between the Muslim Arabs, led by Abu'l-Awar and the Byzantine fleet under the personal command of Emperor Constans IIThe battle is considered to be "the first decisive conflict of Islam on the deepas well as part of the earliest campaign by Muawiyah to conquer Constantin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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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645, Abdallah ibn Sa'd was made Governor of Egypt by his foster brother Rashidun Caliph Uthman, replacing the semi-independent 'Amr ibn al-'AsUthman permitted Muawiyah to raid the island of Cyprus in 649 and the success of that campaign set the stage for the undertaking of naval activities by the Government of Egypt. Abdallah ibn Sa'd built a strong navy and proved to be a skilled naval commander. Under him the Muslim navy won a number of naval victories including repulsing a Byzantine counter-attack on Alexandria in 646.

 

In 654, Muawiyah undertook an expedition in Cappadocia while his fleet, under the command of Abu'l-Awar, advanced along the southern coast of Anatolia. Emperor Constans embarked against it with a large fleet.


The two forces met off the coast of Mount Phoenix in Lycia, near the harbour of Phoenix (modern Finike).


Due to the rough seas, Tabari describes the Byzantine and Arab ships being arranged in lines and lashed together, to allow for melee combat. The Arabs were victorious in battle, although losses were heavy for both sides, and Constans barely escaped to Constantinople. According to Theophanes, he managed to make his escape by exchanging uniforms with one of his officers.


– Siege of Constantinople of 654

 

Following their defeat, the respite the Byzantines were granted is typically ascribed to the Arab fleet retreating after its victory and conflict over the authority of Uthman among the crew, the first stirrings of a civil war among the Muslims. No further naval attacks on this expedition are recorded in traditional Arabic sources.



However the Armenian historian Sebeos records that the Arab fleet continued on beyond the battle at Phoenix to attempt a siege of Constantinople. The siege was unsuccessful, however, due to a fierce storm that sunk the ships with war machines aboard, an event the Byzantines attributed to divine interventionThe land force led by Muawiyah in Chalcedon, having lost their artillery and siege engines, returned to Syria thereafter.



Muslim sources do not mention this event but it corresponds to notices in other Christian histories of the eastern Mediterranean, such as the chronicle of Theophanes. It suggests the early 650s invasions of Rhodes, Cyprus, and Asia Minor were preparatory to a full-scale assault on the walls of Byzantium. Also it provides a strategic explanation for the Arab fleet's retreat following the victory in the Battle of the Masts, since the First Fitna would not break out until a year later, perhaps influenced by setbacks against the Byzantines and in the Caucasus.

- Aftermath

The Battle of the Masts was a significant milestone in the history of the Mediterranean, Islam and the Byzantine Empire, as it established the superiority of the Muslims at sea as well as on land. For the next four centuries, the Mediterranean would be a battleground between Byzantines and Muslims.”

(source : Battle of Masts, Wikipedia)

 

Meanwhile, the advance of the Caliphate continued unabated. In 647 they entered Armenia and Cappadocia and sacked Caesarea MazacaIn the same year, they raided Africa and killed Gregory. In 648 the Arabs raided into Phrygiaand in 649 they launched their first maritime expedition against CreteA major Arab offensive into Cilicia and Isauria in 650–651 forced the Emperor to enter into negotiations with Caliph Uthman's governor of SyriaMuawiyah. The truce that followed allowed a short respite and made it possible for Constans to hold on to the western portions of Armenia.



In 654, however, Muawiyah renewed his raids by sea, plundering Rhodes. Constans led a fleet to attack the Muslims at Phoinike (off Lycia) in 655 at the Battle of the Masts, but he was defeated: 500 Byzantine ships were destroyed in the battle, and the Emperor himself was almost killed. The sea battle was so devastating that the emperor escaped only by trading clothes with one of his men. Before the battle, chronicler Theophanes the Confessor says, the Emperor dreamed of being at Thessalonika; this dream predicted his defeat against the Arabs because the word Thessalonika is similar to the sentence "thes allo niken", which means "gave victory to another (the enemy)". Caliph Uthman was preparing to attack Constantinople, but he did not carry out the plan, as the first Fitna broke out in 656.”

(source : Constans II, wikipedia)

 

In 655 Byzantine Emperor Constans II led a fleet in person to attack the Muslims at Phoinike (off Lycia) but it was defeated: both sides suffered heavy losses in the battle, and the emperor himself narrowly avoided death.”

 

(source : Rashidun Caliphate, wikipedia)

 

 

Dominance of the eastern Mediterranean enabled Mu'awiya's naval forces to raid Crete and Rhodes in 653. From the raid on Rhodes, Mu'awiya remitted significant war spoils to Uthman. In 654/55, a joint naval expedition launched from Alexandria, Egypt and the harbors of Syria routed a Byzantine fleet commanded by Constans II off the Lycian coast at the Battle of the Masts. Constans II was forced to sail to Sicily, opening the way for an ultimately unsuccessful Arab naval attack on ConstantinopleThe Arabs were commanded by Abd Allah ibn Abi Sarh or Mu'awiya's lieutenant Abu'l-A'war.”

[출처<> Muawiyah I (661-680 재위)|작성자 죽엽

 

 

2. 백강 (백촌강)으로 추정되는 Aksu River or Xanthus river

 

우리 역사서의 기록을 보면 백강(백촌강)으로 추정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김영래 저, ‘백제 최후의 항전지 주류성백강은 어디인가?’와 나무위키위키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기타 블로그에 나온 사서들(삼국사기일본서기구당서 등)의 내용들을 고려한 내용이다.

 

1) 백제군의 진을 피하여 소정방의 수군이 백강의 동안으로 올라갔다는 기록으로

    그 강이 남북으로 흐른다는 것

2) 웅진강에서 가까운 곳

3) 주류성에서 가까운 곳

4) 백강의 하구인 기벌포가 전략적인 방어기지가 될 것

5) 덕물도와 가까이 있을 것

6) 상류지역 가까이 그리고 황산벌 가까이 사비성이 있을 것

7) 이름이 백강백촌강(일본서기등으로 흰색과 연관이 있을 것

8) 백제본기에 의하면 백강이 ‘흐름에 따라 나란히 배를 댈 수 없는 험애한 지형’이라 했으므로

     백강의 모습이 이러한 지형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여러가지 사항을 고려할 때 백강(백촌강)은 터어키 남부 연안으로 흐르는 Esen River (=Xanthus River)로 추정된다.

 

우선 이강(Esen river,Xanthus river)은 아래 글에서 보듯이 남으로 흐른다그리고 Xanthus Valley가 있다아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Saklikent Gorge 가 있어 험한 지형을 이룬다.

 

그리고 아래 주류성에서 설명하듯이 바로 옆에 Alanya Castle(주류성)이 있으며웅진하는 바로 좌측 옆에 있는 에게해로 흐르는 Buyuk Menderes river이다. (웅진하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 글, ‘신라 하대 김헌창의 난은 지중해의 크레타섬과 터어키의 아나톨리아에 있었다’ 참조)

 

덕물도는 바로 옆에 있는 Rhodes 섬으로 판단되며이강과 바로 이웃한 Aksu river (최근에는 물이 말라버리는 강)은 white water 라는 뜻이라 한다Esen river의 이웃에 흰산이라는 Akdaglari가 있다.

 

이강의 하구인 Patara가 전략적인 지형인 것은 아래 기벌포 설명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우측의 Taurus Mountains과 뒷쪽의 산악지형으로 오직 Xanthus river의 하구인 Patara항구만이 지형적 약점으로 작용한다Phoenix(Finike) 무역항은 같은 Lycia지역에 있는 바로 옆에 있는 현재의 무역항으로서 같은 방비상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Xanthus river의 상류지역 가까이는 아나톨리아의 카파도키아의 좌측이 됨으로서이 지역 어디에 사비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차후 사비성 연구에서 더 상세히 설명 하고자 한다.

 

이상으로 Esen river, 즉 Xanthus river는 위 8가지 항목의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따라서 백강백촌강으로 비정된다터어키 남부 지중해에 임한 곳인 만큼지중해의 여러 나라들과 활발한 교류가 있던 항구가 있는 지역이며또한 이강의 입구는 역사적으로 기원전부터 많은 침략의 대상이 된 전쟁지역이다.

 

 

 

Map of Xanthus River in Turkey (source : Wikipedia)

 

 

 

 

Relief of western Taurus Mountains (source : Wikipedia)

 

 

The next ridge to the east is Akdağlari, "the White Mountains," about 150 km (93 mi) long, with a high point at Uyluktepe, "Uyluk Peak," of 3,024 m (9,921 ft). This massif may have been ancient Mount Cragus. Along its western side flows Eşen Çayi, "the Esen River," anciently the Xanthus, Lycian Arñna, originating in the Boncuk Mountains, flowing south, and transecting the several-mile-long beach at PataraThe Xanthus Valley was the country called Tŗmmis in dynastic Lycia, from which the people were the Termilae or Tremilae, or Kragos in the coin inscriptions of Greek Lycia: Kr or Ksan Kr. The name of western Lycia was given by Charles Fellows to it and points of Lycia west of it.“

(source : Lycia, Wikipedia)

 

 

 

 

Picture of Xanthus river (source : Wikipedia)

 

 

 

 

 

picture of Saklikent Gorge in Xanthus river

 

The site (Patara) is a plain surrounded by hills and included in ancient times a large natural harbor (since silted up). ….It was situated at a distance of 60 stadia to the southeast of the mouth of the river Xanthos.

...Patara as one of the principal cities of Lyciait was Lycia's primary seaport,…..” (source : Parata, Wikipedia)

 

아래의 보다 자세한 지도에서는 Aksu river(=Akcay)가 남북으로 흐르며, 강하구 왼쪽에 Alanya castle (주류성)이 있다. (Alanya위치는 위의 Xanthus river 지도 참조) Aksu river는 터어키말로 white river라 한다. 이 강이 백강일 수 있다. 그런데 이 강은 지금은 물이 말라가는 상황이라 한다. 

 

"The Akcay, or "White River," the ancient Aedesa, brought water from the slopes to the plain, where it pooled in two lakes below the town, Karagol and Avlangol. Currently the two lakes are dry, the waters being captured on an ongoing basis by irrigation systems for the trees."

(source : Lycia, Wikipedia) 

 

 

 

 

Map showing Aksu River in Antalya Province in Turkey (확대해서 보길 권함)

 

Aksu river에 대한 Wikipedia 자료는 다음과 같다. 강하구에서 7마일까지는 배가 다닐 수 있다고 기술된다. 폭은 330보(100m), 깊이는 3m라 한다. 비잔틴제국시절에 걸쳐 강하구에 토사가 쌓여 그 이후 강의 기능이 쇠퇴했다고 기술된다. 그리고 강하구의 놀(swell)이 거친 파도(violent surf)를 유발한다고 했다.

 

"The Aksu (ancient name in Greek Κ?στρo?, Kestros), is a river in Antalya Province (southwestern Turkey), which rises in the mountains of Toros. The course of the Aksu is between the Duden to the west and of the Koprucay to the east.

History

A treaty between the Hittite Great King Tudhaliya IV and his vassal, the king of Tarhuntassa, defined the latter's western border at the "Kastaraya River", near "Parha". Parha is likely the future Perga.

As Kestros, the river is mentioned by Pomponius Mela as navigable, as far upriver as Perga, 60 stadia (about 11.1 kilometres (6.9 mi)) from its mouth, according to Strabo. It silted up over the Byzantine era, and Perga declined as a result.

Today

The Aksu is 100 metres (330 ft) wide at its mouth, and 3 metres (9.8 ft) deep within the bar, which extends across the mouth, and so shallow in places in its delta as to be impassable to boats that draw more than 1 foot (0.30 m) of water. The swell from the sea meeting the stream generally produces a violent surf.

At its headwaters is the Kovada Lake and just below that the Karacaoren Dam reservoir."

(source : Aksu river (Turkey), Wikipedia)

 

그런데 Phoenix(Finike) 앞바다가 거칠어서 Battle of Masts의 치열함이 있었다고 했다. 따라서 위의 Aksu river가 백강으로 보다 가능성을 더 가진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된 내용을 다시 한번 인용하면 당시의 치열한 전투를 말해 준다. 

 

"Due to the rough seas, Tabari describes the Byzantine and Arab ships being arranged in lines and lashed together, to allow for melee combat. The Arabs were victorious in battle, although losses were heavy for both sides, and Constans barely escaped to Constantinople." (source : Battle of Masts, Wikipedia)

 

강의 주위가 험준하였는지는 지금 자료가 없으나 위의 지도에서 강의 상류로 갈수록 산악지형에 가깝기 때문에 Xanthus river와 유사한 지형일 것이라고 본다. 단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강의 서쪽은 산이고 다른 동쪽은 나무가 무성하여 당의 소정방군이 동안으로 올라갔다는 표현이 오히려 부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Picture of Aksu River (White water) in Lycia, Antalya province, Turkey

 

 

2. 주류성피성과 동굴 : Alanya Castle, Pydnai Fortress, Damlatas Cave

 

주류성은 아래 자료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험준한 산악지형에 위치하고 있어 방어하기 용이하며열이현에 있다고 했다또한 근처에 동굴이 있어 복신이 풍왕을 시해하고자 숨었다고 나온다그리고 근처에 식량확보가 가능한 피성이 있다고 했다또한 백강(백촌강)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

 

주류성은 「농사짓는 땅과는 거리가 멀고 돌이 많고 척박하여 농사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성이면서동시에 「방어하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난공불락의 요새로 기록되어 있다……

안정된 식량 확보가 어렵다는 단점 때문에 자칫 장기전으로 갈 경우 불리할 것을 염려한 부흥군 지휘부는 주류성에서 멀지 않은 피성(避城)으로의 천도를 시도하지만오히려 그 직후인 663 초부터 신라군의 공세에 밀려 다시 주류성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

 

《삼국사기》권제37 지리지 백제조에서 백제 열이현(悅已縣)의 다른 이름을 두릉윤성또는 두곶성윤성(尹城)이라고 한 기록


《일본서기》에는 주류성을 가리켜 "농사짓는 밭과는 거리가 멀고 토지가 척박해서 농사 짓고 누에 칠 땅이 아니라 막아 싸울 땅이다", "산악이 험준하고 높아서 방어하기는 쉬워도 공격하기는 어려운 곳이다"…..

 

《삼국사기》 및 《당서》에는 복신이 풍왕을 시해하고자 병을 핑계로 동굴에 숨었다는 기술….

 

《삼국사기》에 백제 부흥군의 지휘부였던 두솔성(주류성)을 함락시킨 신라군이마지막 남은 부흥군 거점이었던 임존성을 치는 것에 대해 "남쪽은 이미 평정되었으므로 군사를 돌려 북쪽을 벌한다(南方旣定廻軍北伐)"고 한 기술…..”

 

(자료 주류성위키백과)


이러한 특성에 맞는 성으로 지중해에 접한 250m 높이의 암벽위에 있는 3가지 방향으로부터 보호되는 Alanya Castle 이 있다. 둘러싼 성벽길이가 6.5킬로미터(4마일)에 달한다. 아래 설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의 성은 로마시대비잔틴시대의 성곽에 증축한 것이라 했다. Alayna가 열이현의 열이와 비슷한 발음의 뉴앙스를 준다.

 

Alanya Castle (Alanya Kalesi) is a medieval castle in the southern Turkish city of Alanya. ….

The castle was built on the remnants of earlier Byzantine era and Roman era fortifications.

 

The castle is located 250 metres (820 ft) high on a rocky peninsula jutting into the Mediterranean Sea, which protects it from three sides. The wall which surrounds the castle is 6.5 kilometres (4.0 mi) long and includes 140 towers.”

(source : Alanya Castle, wikipedia)

 

 

 

 

 

 

 

 

 

 

 

 

pictures of Alanya Castle (source : Wikipedia)



또한 이 성 가까이 Damlatas cave가 있다이 근처에는 20여개의 동굴이 있다.

 

Damlataş Cave (TurkishDamlataş Mağarası) is a cave in Alanya district of Antalya Province, in southern Turkey. The cave is located west of Alanya Castle on the coast of Mediterranean Sea in the urban fabric of Alanya. Its distance to Alanya city center is 3 km (1.9 mi), and to Antalya is 124 km (77 mi). The cave's entrance faces the beach.”

(source : Damlatas Cave, Wikipedia)

 

 

 

 

 

 

 

pictures of Damlatas Cave (source ; Wikipedia)

 

 

그리고 백제 부흥군이 식량사정으로 주류성에서 이동하려던 '피성'으로 보이는 Pydnai Fortress가 가까이 있다피성의 ‘피’ 발음이 Pydnai의 py와 같은 것은 우연일까?

 

 

Pydnai Fortress

 

Pydnai was probably once a small naval and military base fortress and guarded the very west end of Patara. The marshy area around it was once a bay and was probably a deep water harbour. It is made of well-preserved polygonal masonry with 11 rectangular towers at its corners and mid-way along the walls. It also has 7 protruding stairways which allowed soldiers to quickly scale its walls from the inside. Battlements were later added on upper walls. The only sign of construction within the walls is a small church.

Four or five inscriptions have been found in and around the fort; all are of Imperial date and one links Pydnai with Xanthos.

This site is found on the section of the Lycian Way walk near Gavurağili.”

(source : Lycian Turkey, Discover the Beauty of Ancient)

 


 



 

 

Ruins of Pydnai Fortress (source : Lycian Turkey)

 

 

3. 기벌포 Harbour of Phoenix (modern Finike)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벌포로 추정되는 Phoenix (Finike)항은 역시적으로 시리아이집트, Rhodes섬에 의한 침입에 취약한 점이 항상 노출되었다. (아래 글 참조특히 비잔틴제국이 아리비아반도의 아랍군에 위협을 받았다고 기술되고 있다즉 백제 의자왕시의 성충흥수가 역사적으로 취약한 기벌포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

 

Trade along the coast was established first by the Persians, who relinquished Lycia to the armies of Alexander the Great. However, the coast was always vulnerable to forces from SyriaEgypt and Rhodes until it was brought within the empire of the Ancient Romans and the succeeding Byzantines. Even then the Byzantines were threatened by the Arabian armies coming from the Arabian Peninsula.”

[출처<> Finike (Phoenix)|작성자 죽엽

 

 

3. 덕물도로 추정되는 Rhodes island



웅진하의 건너편에 있는 덕물도에 신라군이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웅진하로 판단되는 Buyuk Menderes river 하구 맞은 편에 Rhodes 섬이 있다.

따라서 Rhodes 섬이 덕물도로 판단된다.



Rhodes 섬은 기원전부터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가 되어 왔다.

뱀이 많다고 해서 Rhodes 이름이 생겼다고 하는데신라의 역사에 ‘사성’에 관한 역사가 있다.

 

The island has been known as Ρόδος in Greek throughout its history. In addition, the island has been called Rodi in ItalianRodos in Turkish, and Rodi or Rodes in Ladino.

…………………

The island's name might be derived from erodPhoenician for snake, since the island was infested with snakes in antiquity.”

[출처<> Rhodes|작성자 죽엽

 

 

Location of Rhodes island (source : Wikipedia)

 

알렉산더 사후에는 이집트와 긴밀한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었다.

Rhodes formed strong commercial and cultural ties with the Ptolemies in Alexandria, and together formed the Rhodo-Egyptian alliance that controlled trade throughout the Aegean in the 3rd century BC.”

[출처<> Rhodes|작성자 죽엽

622/623년에 비잔틴-사산왕조 페르시아 전쟁이 한창일 때사산왕조 페르시아 해군이 이 섬을 점령했다그러나 654년 Battle of Masts때 우마이야왕조의 칼리프가 되는 Muawiyah에 의해 Rhodes섬이 점령된 것으로 아래 기록된다. 660년 백제정벌을 위해 당의 소정방이 왔을 때 신라 태자 법민 (후의 문무왕)이 전선 100척을 거느리고 덕물도에서 기다렸다고 한다시간은 6년의 차이가 있지만 Muawiyah가 칼리프가 되기 전의 시리아 governor로서 Rhodes 섬을 경략한 것과문무왕이 태자 법민으로서 덕물도에서 기다렸다는 기록이 정확히 일치한다. 이후로도 이섬은 비잔틴제국과 아랍세력에 의해 일진일퇴를 하는 전쟁의 중심에 있었다백제의 부흥운동이 강해지자 당증원군이 덕물도를 거쳐 웅진으로 접근했다고 하니 이 Rhodes섬이 덕물도로 판단된다.


In 622/3, during the climactic Byzantine–Sasanian War of 602–628, Rhodes was captured by the Sasanian navy…...

 

Rhodes was occupied by the Islamic Umayyad forces of Caliph Muawiyah I in 654, who carried off the remains of the Colossus of Rhodes. The island was again captured by the Arabs in 673 as part of their first attack on Constantinople. When their fleet was destroyed by Greek fire before Constantinople and by storms on its return trip, however, the island was evacuated in 679/80 as part of the Byzantine–Umayyad peace treaty. In 715 the Byzantine fleet dispatched against the Arabs launched a rebellion at Rhodes, which led to the installation of Theodosios III on the Byzantine throne.”

[출처<> Rhodes|작성자 죽엽

 

신라 태종무열왕 때 나당연합에 의하여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천리에 뻗친 전선을 이끌고 서해를 건너왔을 때신라에서 태자 법민(法敏)을 보내어 전선 100척을 거느리고 나아가 영접한 곳이 바로 이곳(덕물도)..”

 

(자료 덕물도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상으로 백강(백촌강), 기벌포주류성피성덕물도의 위치를 비정하였다이러한 비정이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따라서 비잔틴제국이 백제이고사산왕조 페르시아가 신라라는 나의 추정은 한층 더 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밖에도 ‘카파도키아’로 추정되는 ‘황산벌’, Cilicia지역의 ‘Gaziantep’으로 추정되는 성충과 흥수가 언급한 ‘탄현’지역그리고 앙카라 또는 콘스탄티노플로 추정되는 ‘사비성’의 위치 등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하나이는 추가적인 글로 미룬다.

 

 

*** 부가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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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료는 터어키 남부 지중해에 접한 Antalay Province, Lycia, Taurus Mountains 지역의 지형에 대한 자료이다이를 보면 왜 기벌포로 추정되는 Phoenix(Finike) port 가 중요한 군사적 방어지역이 되어야 하고성충 흥수가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Antalya Province

 

Antalya Province (TurkishAntalya ili) is located on the Mediterranean coast of south-west Turkey, between the Taurus Mountains and the Mediterranean sea. …...................

 

During the mid-Byzantine era (the 5th and 6th centuries) the city of Antalya grew beyond the city w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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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7th century Muslim Arabs started to be dominant in the Levant region and Antalya later……...


The land of the province is 77.8% mountainous, 10.2% plain and 12% uneven. Many of the peaks of the Taurus mountains are above 500–3000 metres.


Ancient cities and ruins

There are sites of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interest all over Antalya including

 

(source : Antalya Province, Wikipedia)

Caves

There are more than twenty caves in Antalya Province, among them some are show caves and registered natural monuments.

 

(source : Antalya Province, Wikipedia)

 

 

Lycia

 

Lycia (Lycian?????? Trm̃misGreekΛυκίαLykíaTurkishLikya) was a geopolitical region in Anatolia in what are now the provinces of Antalya and Muğla on the southern coast of Turkey, bordering the Mediterranean Sea, and Burdur Province inland.

 

Geography

The borders of Lycia varied over time, but at its centre was the Teke peninsula of southwestern Turkey, which juts southward into the Mediterranean Sea, bounded on the west by the Gulf of Fethiye, and on the east by the Gulf of AntalyaLycia comprised what is now the westernmost portion of Antalya Province, the easternmost portion of Muğla Province, and the southernmost portion of Burdur Province. In ancient times the surrounding districts were, from west to east, CariaPisidia, and Pamphylia, all equally as ancient, and each speaking its own Anatolian language.



The name of the Teke Peninsula comes from the former name of Antalya Province, which was Teke Province, named from the Turkish tribe that settled in the region.



Physical geography

Four ridges extend from northeast to southwest, roughly, forming the western extremity of the Taurus Mountains. Furthest west of the four are Boncuk Dağlari, or "the Boncuk Mountains," extending from about Altinyayla, Burdur, southwest to about Oren north of Fethiye. This is a fairly low range peaking at about 2,340 m (7,680 ft). To the west of it the steep gorges of Dalaman Çayi ("the Dalaman River"), the ancient Indus, formed the traditional border between Caria and Lycia. The stream, 229 km (142 mi) long, enters the Mediterranean to the west of modern-day DalamanUpstream it is dammed in four places, after an origin in the vicinity of Sarikavak in Denizli Province.

 

The next ridge to the east is Akdağlari, "the White Mountains," about 150 km (93 mi) long, with a high point at Uyluktepe, "Uyluk Peak," of 3,024 m (9,921 ft). This massif may have been ancient Mount Cragus. Along its western side flows Eşen Çayi, "the Esen River," anciently the Xanthus, Lycian Arñna, originating in the Boncuk Mountains, flowing south, and transecting the several-mile-long beach at Patara. The Xanthus Valley was the country called Tŗmmis in dynastic Lycia, from which the people were the Termilae or Tremilae, or Kragos in the coin inscriptions of Greek Lycia: Kr or Ksan Kr. The name of western Lycia was given by Charles Fellows to it and points of Lycia west of it.



The next ridge to the east, Beydağlari, "the Bey Mountains," peaks at Kizlarsevrisi, 3,086 m (10,125 ft), the highest point of the Teke Peninsula. It is most likely the ancient Masicytus range. Between Beydağlari and Akdağlari is an upland plateau, Elmali, where ancient Milyas was located. The elevation of the town of Elmali, which means "Apple Town," from the density of fruit-bearing groves in the region, is 1,100 m (3,600 ft), which is the highest part of the valley below it. Fellows considered the valley to be central Lycia.



The Akçay, or "White River," the ancient Aedesa, brought water from the slopes to the plain, where it pooled in two lakes below the town, Karagöl and Avlangöl. Currently the two lakes are dry, the waters being captured on an ongoing basis by irrigation systems for the trees. The Aedesa once drained the plain through a chasm to the east, but now flows entirely through pipelines covering the same route, but emptying into the water supplies of Arycanda and Arif. An effort has been made to restore some of the cedar forests cleared in antiquity.



The easternmost ridge extends along the east coast of the Teke Peninsula, and is called, generally, Tahtali Dağlari, "The Tahtali Mountains." The high point within them is Tahtali Dağ, elevation 2,366 m (7,762 ft), dubbed "Mount Olympus" in antiquity by the Greeks, remembering Mount Olympus in Greece. These mountains create a rugged coastline called by Fellows eastern Lycia. Much of it has been reserved as Olimpos Beydağlari Parki. Within the park on the slopes of Mt. Olympus is a U-shaped outcrop, Yanartaş, above Cirali, from which methane gas, naturally perpetually escaping from below through the rocks, feeds eternal flames. This is the location of ancient Mount Chimaera.

Through the cul-de-sac between Baydağlari and Tahtalidağlari, the Alakir Çay ("Alakir River"), the ancient Limyra, flows to the south trickling from the broad valley under superhighway D400 near downtown Kumluca across a barrier beach into the Mediterranean. This configuration is entirely modern. Upstream the river is impounded behind Alakir Dam to form an urban-size reservoir. Below the reservoir a braided stream alternates with a single, small channel flowing through irrigated land. The wide bed gives an indication of the former size of the river. Upstream from the reservoir the stream lies in an unaltered gorge, flowing from the slopes of Baydağlari. The ancient route to Antalya goes up the valley and over the cul-de-sac, as the coast itself is impassable except by boat. The valley was the seat of ancient Solymus, home of the Solymi.

(source : Lycia, Wikipedia)

 

Taurus Mountains

 

The Taurus Mountains (TurkishToros Dağları), are a mountain complex in southern Turkey, separating the Mediterranean coastal region of southern Turkey from the central Anatolian Plateau.

The system extends along a curve from Lake Eğirdir in the west to the upper reaches of the Euphrates and Tigris rivers in the east. It is a part of the Alpide belt in Eurasia.

The Taurus mountains are divided into three chains from west to east as follows;

 

  • Western Taurus (Batı Toroslar)
    • Akdağlar, the Bey Mountains, Katrancık Mountain, Geyik Mountain
    •  
  • Central Taurus (Orta Toroslar)
  • Southeastern Taurus (Güneydoğu Toroslar)
    • Nurhak Mountains, Malatya Mountains, Maden Mountains, Genç Mountains, Bitlis Mountains
    •  

 

The bull was commonly the symbol and depiction of ancient Near Eastern storm gods, hence Taurus the bull, and hence the name of the mountains. The mountains are a place of many ancient storm-god temples. Torrential thunderstorms in these mountains were deemed by the ancient Syrians to be the work of the storm-god Adad to make the Tigris and Euphrates rivers rise and flood and thereby fertilise their land. The Hurrians, probably originators of the various storm-gods of the ancient Near East, were a people whom modern scholars place in the Taurus Mountains at their probable earliest origins.



Bronze Age archaeological site, where early evidence of tin mining was found, is at Kestel. The pass known in antiquity as the Cilician Gates crosses the range north of Tarsus.



The Amanus range in southern Turkey is where the Taurus Mountains are pushed up as three tectonic plates come together. The Amanus is a natural frontier: west is Cilicia, east is Syria. There are several passes, like the Amanian Gate (Bahçe Pass), which are of great strategical importance. In 333 BCE at the Battle of Issus, Alexander the Great defeated Darius III Codomannus on the foothills along the coast between these two passes. In the Second Temple period, Jewish authors seeking to establish with greater precision the geographical definition of the Promised Land, began to construe Mount Hor as a reference to the Amanus range of the Taurus Mountains, which marked the northern limit of the Syrian plain.

 

Late Roman period to present

During World War I, the German and Turkish railway system through the Taurus Mountains proved to be a major strategic objective of the Allies. This region was specifically mentioned as a strategically controlled objective slated for surrender to the Allies in the Armistice, which ended hostilities against the Ottoman Empire.

 

Geography

In the Aladaglar and Bolkar mountains, limestone has eroded to form karstic landscapes of waterfallsunderground rivers, and some of the largest caves of Asia. The Manavgat River originates on the southern slopes of the Beydaglari range.


(source : Taurus Mountains,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