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왕 4

금관가야는 지중해의 카르타고인가?

머리말 '한단고기 고구려본기 중 협보가 마한의 산중에 살았는데 그를 따라서 사는 자가 수백여집이나 되었다. 여러해 동안 흉년이 들어 떠돌아 다니다가 장혁을 알게 되었다. 이에 무리를 꾀어 양식을 배에 싣고 패수를 따라 내려와 바다와 포구를 거쳐 조심조심 배를 저어 곧장 구사한국에 이르렀다. 이곳이 가라해 북쪽해안이다. 여기서 머문지 몇 달만에 아소산에 옮겨 살았다. 이 사람이 다파라국 시조이다. 협보는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의 창업공신으로 고주몽외에 실질적인 2인자로 추앙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동부여에서 온 유리가 왕이 되자 미움을 사 무리를 이끌고 남하하여 남마한의 구사한국 혹은 구야한국에 도달했다고 전한다. 구야한국은 남가라로, 전성기에는 대가라로 불렸고, (한반도) 남단뿐만 아니라 바다건너 왜 지..

김수로왕 부인 허황옥과 카르타고의 Dido 여왕

제목 : 김수로왕 부인 허황옥과 카르타고의 Dido 여왕 I. 머리말 우리는 김수로왕의 부인이 된 허황옥이 인도에 있는 아유타국의 공주가 와서 금관가야의 부인이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아유타국이 어디에 있던 간에 일반적으로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오는 것은 어려운 경로라는 판단들은 하는 것 같다. 필자는 김해(金海)라는 명칭에서 이미 한반도의 김해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판단했다. 바다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김수로왕과 석탈해의 다툼에서 바다 건너에 신라가 있다고 하는 기록을 보면 당연하다고 추정된다. 그러면 이러한 김수로왕의 부인이 된 허황옥 공주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김수로왕의 금관가야는 어디인가가 궁금해지는데, 본 글에서는 허황옥 공주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 주로 살펴 보..

김수로왕, 협보, 석탈해, 일성왕, 아달라왕 모두 백인이었다

부제 : 왜국도 지중해에 있었다. 1. 김수로왕은 백인이었다. 뇌질 청예와 정견모주 : 최치원의 석리정전 - 최치원의 석리정전: 정견 모주의 아들, 뇌질 청예(수로왕), 뇌질 주일(이진아시, 대가야) (조선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인용) ​ ​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기록들을 수집하여 쓴 석이정전(釋利貞傳)의 내용에 따르면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하늘의 신(神)인 이비가지(夷毗訶之)에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 명은 이름이 뇌질주일(惱室朱日)이었고, 다른 한 명은 뇌질청예(惱窒靑裔)라고 하였다. ​금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청예(김수로왕)는 여신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희고 갸름했으며 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주일(이진아시왕)은 이비가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금관가야가 아르메니아에 있었다는 보다 직접적인 증거들

지난 번 올린 글, ‘김수로의 금관가야는 코카서스산맥아래 아르메니아지역에 있었다’라는 글에서, 신라의 역사와 사산왕조 페르시아, 그리고 비잔틴제국(660년이후)의 역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금관가야가 아르메니아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주장했다. 오늘은 김수로의 금관가야가 아르메니아지역에 있었다는 보다 직접적인 증거를 파헤쳐 보고자 한다. 1. 고깔모자 관련 이야기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본인의 저서 강역고에서 '가나(駕那)'가 기원이고 이는 가야 사람들이 끝이 뾰족한 고깔을 쓰고 다닌 데서 유래한 말이고 이를 중국인들이 삼국지를 쓸 때 변한(弁韓) 또는 변진(弁辰)으로 쓴 것은 그 모습을 형용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한치윤 등 많은 실학자들이 이 견해를 따랐고 일본의 아유가이도 가야가 갈(冠弁)에 기원을 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