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백제

백제와 고구려가 싸운 청목진과 청목령은 Wales에 있었다.

Chung Park 2025. 9. 1. 12:07

I. 서 론

 

지난 글에서 필자는 곤미천과 청목산에 대한 글을 썼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https://lainfos.tistory.com/520

 

백제가 말갈과 싸운 지역인 곤미천, 청목산은 웨일즈에 있었다.

I. 서 론 필자는 각미성은 사방이 바닷물과 절벽으로 되어 있는 섬에 있다는 서술에 기인하여 웨일즈의 Holy Island에 있는 Gybi Fort라 했다. (아래 글 참조) https://paulcgpark.tistory.com/111 드디어 각미성

lainfos.tistory.com

 

 

이 시기는 백제 초기 온조왕 시기로서 백제와 말갈의 싸움으로 기록되었다. 이글에서 필자는 곤미천은 Conwy river로 추정했으며, 청목산은 Conwy river의 좌측에 있는 Wales의 산악지형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청목에 관련된 지명은 청목진, 청목령에 대해, 4-5세기 백제와 고구려의 전투에서 다시 거론된다. 특히 백제의 근초고왕 시기부터 개로왕 시기까지 백제와 고구려가 치열한 전쟁을 하는 시기에 언급된다. 진사왕, 아신왕 시기는 고구려의 광개토태왕 시기이며, 개로왕 시기는 고구려의 장수왕 시기이다. 필자는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나오는 각미성, 그리고 삼국사기에 나오는 관미성이 웨일즈에 있었다는 글을 쓴 바 있다. (아래 글 참조) 그리고 한국사계에서 각미성과 관미성이 동일하지 않는가 하는 추정과 달리, 비록 같은 웨일즈에 있지만, 각각 별도의 성이라는 것을 밝힌 바 있다. 

 

https://paulcgpark.tistory.com/111

 

드디어 각미성을 찾았다

I. 머리말 그동안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백제의 각미성(광개토태왕 비문 속의 이름)(관미성:삼국사기 속의 이름)이 어디인지 궁금하였는데, 최근 광개토태왕이 점령한 성들의 위치를 찾는 과정에

paulcgpark.tistory.com

 

https://blog.naver.com/lainfos/223968660215

 

광개토태왕이 함락한 관미성과 각미성은 별도의 성이다.

I. 서 론 필자는 최근에 웨일즈의 Caer Gybi성이 각미성이란 아래 글을 썼다. 사방이 절벽으로 된 지형...

blog.naver.com

 

 

 

따라서 본 글에서는 청목진과 청목령에 대한 위치 추정을 함으로써, 청목진과 청목령에서의 백제와 고구려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던 역사적 지역을 밝혀 보고자 한다. 

 

 

II. 본 론

 

1. 청목산과 청목령, 청목진과의 연관성

 

백제와 고구려의 4-5세기 전투 역사 자료에서 청목과 관련된 자료가 많이 언급된다. 청목진, 청목령 등이 그것이다. 또한 이들 자료는 한수, 한산성, 한성의 위치와도 아주 멀리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청목진과 청목령이 혹시나 웨일즈 청목산 지역과 관련이 있나 잠시 살펴 보고자 한다. 

 

1) 청목진, 청목령에 관련 사료 내용

 

아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 청목진, 청목령에 관한 자료를 소개했다. 주로 백제의 근초고왕시기부터 진사왕, 아신왕, 개로왕 시기까지이다. 

 

"청목령은 고구려와 국경을 이루는 백제의 국경요새로서 매우 중요시되던 곳이며, 개로왕 때까지 많은 전투가 있었다.

 

373년(근초고왕 28)에 청목진에 성을 쌓아 방위를 튼튼히 하였다.

386년(진사왕 2)에 15세 이상인 자들을 징발하여 관방(關防)을 건설하였는데 청목진에서 시작하여 북쪽은 팔곤성(八坤城)에, 서쪽은 바다에 이르렀다.

 

395년(아신왕 4) 고구려 광개토왕이 친히 군사 7000명을 이끌고 패수(浿水) 강변에 진을 치고 침공해오니 백제의 군사들이 이들과 싸웠으나 크게 패하여 사망자가 8,000명이나 되었다.

 

그 해에 왕은 패수전을 보복하려고 친히 군사 7,000명을 거느리고 한수(漢水)를 건너 청목진 밑에 이르렀다. 그러나 큰 눈을 만나 사졸이 많이 동사(凍死)하므로 회군하여 한산성에 이르러서 군사를 위로하였다.

469년(개로왕 15)에는 쌍현성(雙峴城)을 수리하고 청목령에 큰 울타리를 쳤다.

475년(문주왕 1)에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을 포위하여 달아나는 개로왕을 살해함에 따라 한성이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이로 미루어 이 시기에 청목령이 고구려의 영토가 된 것이다.

 

(자료 : 청목령,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백제)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근초고왕 시기 373년에 청목령에 성을 쌓았다 했다. 상기 자료는 373년에 청목진에 성을 쌓았다 했는데, 삼국사기 자료에는 청목령에 성을 쌓았다 했다고 나온다. 청목령을 청목진으로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二十八年秋七月 청목령에 성을 쌓다. (373)

三十年秋七月 고구려가 침입해 수곡성을 빼앗다. (375)

三十年冬十一月 근초고왕이 죽다. (375)

 

<<삼국사기》 근구수왕 (375 - 384) 본기

 

二年冬十一月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입하다 (376)

..........

(자료 : 근초고왕, 근구수왕, 삼국사기, 나무위키)

 

 

(1) 청목령은 백제와 고구려의 국경 요새지역이라 했다.

 

필자는 웨일즈지역을 살펴 보면서, 이 지역이 백제와 고구려의 전투지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즉 로마의 영토인 웨일즈 오른쪽지역과 비로마지역인 아일랜드와 가까운 웨일즈지역이 백제와 고구려간의 전투지역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웨일즈지역은 아일랜드 요소가 많다고 위키피디아 자료는 말하고 있다. 즉 청목령이 웨일즈에 있지 않나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상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자료를 자세히 보면, 근초고왕, 진사왕, 아신왕 시기에는 청목진만이 언급되었다. 청목령은 개로왕 시기 469년에만 언급되었다. 따라서 청목령이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 요새라는 기록은 없는 것이다. 단지 상기 자료 작성자가 임의로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를 전제로 한 역사관에서는 좁은 국토에 거기가 거기로 추정되지만, 필자 같이 백제의 영토가 로마제국의 그것이라고 추정하는 입장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역사자료에 바탕을 두고 추정해야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 자료에는 근초고왕 시기 373년 청목령에 성을 쌓았다 했다. 상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자료에는 청목진이라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한국고대사료 DB를 보니 청목령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근초고왕 시기 373년에는 청목령에 성을 쌓은 자료를 정식 자료로 인용하고자 한다.

 

필자는 관미령이 Conwy valley라 추정했다. 령을 Pass개념으로 본다면 관미령은 Conwy Valley근처 어디에 있을 것이다. 백제 진사왕 2년 386년에 관방을 쌓았다 했는데, 청목진에서 북쪽으로 팔곤성까지 그리고 서쪽으로 바다까지 쌓았다 했다. 그리고 진사왕 3년, 387년 관미령 전투가 있다 했다. 청목진은 근초고왕, 진사왕, 아신왕 시기에 걸쳐 언급되었다.

청목령은 근초고왕 시기 373년(삼국사기 자료)과 개로왕 시기 469년에 언급된다. 지난 글에서 청목산은 Conwy river의 좌측 산악지형 어디에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만역 청목령이 청목산 근처에 있다면 (가정상), 청목진과 청목령이 웨일즈 지역에 있다면 지형상으로 Conwy river의 좌측이 된다. 즉 청목령과 관미령은 다른 것일 수 있다. 

 

"관미령에서 벌어진 백제와 말갈 · 고구려와의 전투.

백제 진사왕 3년(387) 가을 9월 말갈과 싸운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백제는 패하였으며, 명칭으로 미루어 관미성과 연관되는 고개이다."

 

(자료 : 관미령 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아래 Conwy valley 조감도가 있는데,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것이 백제가 쌓은 관방의 일부 흔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관건은 청목진이 어디냐이다. 

 

Conwy valley의 조감도 (자료 : 위키피디아)

 

(2) 청목진에 대해서는 386년, 395년에 언급되었다. 

 

(a) 진사왕은 386년, 15세 이상인 자들을 징발하여 관방(關防)을 건설하였는데 청목진에서 시작하여 북쪽은 팔곤성(八坤城)에, 서쪽은 바다에 이르렀다.

 

(b) 아신왕은 395년, 패수전을 보복하려고 친히 군사 7,000명을 거느리고 한수(漢水)를 건너 청목진 밑에 이르렀다. 그러나 큰 눈을 만나 사졸이 많이 동사(凍死)하므로 회군하여 한산성에 이르러서 군사를 위로하였다.

 

關防  관방
 

  • 1.국경()을 지킴.
  • 2.부정행위()를 막음.
  • 3.변방()의 방비()를 위하여 설치()한 요새().

(자료 : 네이버 사전)

 

진사왕은 관방(=국경 변경의 요새)을 건설했는데,  청목진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팔곤성까지 그리고 서쪽은 바다에 이르렀다 했다. 따라서 청목진은 바다나 강에 접한 수군기지로 보인다. 또한 청목진 북쪽에는 팔곤성이 있다 했다. 그리고 아신왕이 청목진 밑에 이르렀는데, 큰 눈을 만나 동사하는 병사들이 있어 회군했다 했다. 이는 청목진이 바다나 강가에 있으면서 산과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산이 있는 지역은 눈이 많이 오고 매우 추운 날씨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할 때, 청목진은 Snowdonia지역 또는 그 남쪽에 있는 Brecon Beacon National Park 남쪽의 수군기지이며 또한 성곽이 있는 곳으로 판단된다. 

 

(3) 469년 개로왕은 쌍현성을 수리하고 청목령에 큰 울타리를 쳤다.

 

쌍현성의 현(峴)자가 고개현이다. 위에서 살펴 본 '봉현'의 지리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웨일즈의 좌측지역에 있는 산성(山城)으로 쌍 봉우리가 있는 지역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이 지역에 이러한 지형을 많이 보아 왔다. (아래 그림 참조) 그리고 청목령이 쌍현성 주위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아래 사진은 웨일즈 북서부의 Snowdonia National Park지역에서  가장 높은 Snowdon봉의 모습이다. 

 

The "knife-edge" arête of Crib Goch (foreground) and the pyramidal peak of Snowdon (background)  in Snowdonia National Parks (source : Wikipedia)

 

아래 사진은 웨일즈의 보다 남쪽의 Brecon Beacon Nationa Park (아래 지도 참조)에 있는 두 봉우리, Corn Du와 Pen Y Fan 봉우리의 모습이다. 

Corn Du (right) and Pen Y Fan (left) in Brecon Beacons National Park (source : Wikipedia)

 

 

Relief map of Brecon Beacons National Park (source : Wikipedia)

 

만약에 청목령이 쌍현성 근처에 있다면  상기 두 지역 근처 중의 하나일 것이다.

 

 

2) 눈이 많이 쌓이는 Snowdonia의 Gwydir Forest 

 

"아신왕은 395년, 패수전을 보복하려고 친히 군사 7,000명을 거느리고 한수(漢水)를 건너 청목진 밑에 이르렀다. 그러나 큰 눈을 만나 사졸이 많이 동사(凍死)하므로 회군하여 한산성에 이르러서 군사를 위로하였다." 이런 내용을 참조하면 청목진 근처에 눈이 많이 오는 추운지역이 있어야 한다.

Snowdonia National Park 안에 Gwydir Forest가 있는데, 이곳의 정상인 Moel Siabod라는 872미터의 산이 있다. 그런데 이곳의 이름은 눈이 덮혀있어 bare hill라는 뜻을 가졌다 한다. (아래 사진과 내용 참조) 그리고 이 산은 북쪽과 남쪽에서 접근이 용이하다고 한다. (아래 자료 참조)

 

"Gwydir Forest, also spelled Gwydyr, is located in Conwy County Borough and the Snowdonia National Park in Wales."

 

Gwydir Forest는 Gwydyr라고도 쓰이는데, 웨일즈의 Snowdonia National Park와 Conwy County에 위치해 있다.  (상기 내용)

(source : Gwydir Forest,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Snowdonia National Park (녹색부분)

 

Conwy County Borough 위치

 

Moel Siabod from Gwydir Forest

 

"Moel Siabod (Welsh for 'bare hill' with unknown meaning of 'Siabod') is a mountain in Snowdonia, Wales, which sits isolated above the village of Dolwyddelan. At 872 metres (2,861 ft), it is the highest peak in the Moelwynion mountain range. The UK National Mountain Centre, Plas-y-Brenin, is located at the foot of Moel Siabod. From the top of the mountain, it is reputedly possible to see 13 of the 14 highest peaks in Wales on a clear day without turning one's head.[3][4][5]

Moel Siabod (Siabod는 의미 모르며, 웨일즈말로 bare hill (벌거벗은 고지대) 뜻인데, Snowdonia에 있는 산이며, 872미터(2861피트)로  Moelwynion 산맥에서 가장 높다. ..산 정상에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웨일즈의 14개 정상중에 13개를 볼 수 있다는 평판이 있다. (상기 내용)

 

Etymology

 

The name Moel Siabod is wrongly translated as shapely hill,[by whom?] although William Williams in Observations on the Snowdon Mountains (1802) proposed that the name comes from siadod, meaning 'bare hill, whose head or crown is covered in new-fallen snow'..........

 

Moel Siabod는 siadoa라는 bare hill을 의미하는 말에서 왔다고 Williams은 주장하는데, 이는 산 정상이 새로 온 눈에 의해 덮혀있기 때문이다. 

 

Access (접근성)

 

The mountain is easily accessible from the north via Capel Curig and nearby Pont Cyfyng (by separate paths) and from the south via Dolwyddelan....."

 

이 산은 북쪽에서는 Capel Curig와 근처의 Pont Cyfyng (각각 별개의 길로)로부터 쉽게 접근할 수 있고 , 남쪽에서는 Dolwyddelan으로부터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다. ..

(source : Moel Siabod,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Moel Siabod 위치 (Snowdonia, Gwynedd, Wales) (source : Wikipedia)

 

필자는 이 곳이 아신왕의 병사들이 동사하는 지역의 산의 후보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한다.  이미 위에서 Snowdonia지역은 일년에 강수량이 5100밀리 이상이 되는 습한 지역이라 했고, 눈이 많이 내린다 했다.

 

필자는 한수는 르와르강의 일부 지류이고, 한성은 프랑스의 Clermont-Ferrand이라 추정했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패수는 라인강이라 했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아신왕이 395년 패수 전쟁에서 패한 것은 광개토태왕의 세력이 라인강을 넘어 서쪽으로 건넌 시기이다. 반달족이 이 시기에 라인강을 건너 침략한다. 즉 아신왕이 프랑스의 Clermont-Ferrand지역에서 르와르강을 타고 서쪽으로 가서 대서양으로 나간 다음 북쪽으로 항해 웨일즈의 남쪽 해안(Bristol Channel)에 다다르고, 여기서 다시 북상하여 눈이 많은 지역에 오지 않았나 추정하는 것이다. 

 

https://lainfos.tistory.com/53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인가?

제목 :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가 되는 패수(浿水)는 독일의 라인강(Rhine River)인가? 우리는 패수에 대해 여러 기록이 있음을 안다. 그 중에서도 한나라와 조선 (위만조선)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

lainfos.tistory.com

 

 

https://lainfos.tistory.com/333

 

백제가 활동한 한수(漢水)지역은 프랑스의 르와르강 유역에 있었다

'의문의 한 중 일 역사'가 마지막편으로 이어집니다. X. 백제가 활동한 한수(漢水)지역은 프랑스의 르와르강 유역에 있었다 삼국사기에 보면 백제가 한수(漢水) 이북에서 백성을 징발해 쌍현성을

lainfos.tistory.com

 

 

https://lainfos.tistory.com/79

 

서양사 자료를 통한 백제의 한성 위치 추정 (1)

한성백제의 한성(漢城)은 백제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나라 한자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한(漢)나라지역에 있던 도시라고 추측하고 있었는데, 그 실체를 파악하는데 다소 시간이

lainfos.tistory.com

 

3) 눈이 많이 오는 Brecon Beacons National Park의 추운 산악지형

 

Wales의 북서쪽 Snowdonia지역 외에 또 다른 추운 눈이 많이 오는 산악지형이 있다.  바로 웨일즈의 중남부에 있는 Brecon Beacons National Park지역이다. (아래 지도 참조)

 

Brecon Beacons National Park 지역 지도

 

이 지역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겨울에 추워 훈련하는 군인이 사망하는 사례가 있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아신왕 시기  눈이 와 동사하는 병사가 있어 철수했다는 기록이 떠오른다. 

 

A soldier training in the Brecon Beacons above Llyn y Fan Fawr.

 

The Brecon Beacons are used for training members of the UK armed forces and military reservists. The Army’s Infantry Battle School is located at Brecon,[34] and the Special Air Service (SAS) and Special Boat Service use the area to test the fitness of applicants.[35][36] .... An army captain had been found dead on Corn Du earlier in the year after training in freezing weather for the SAS.[34]

Brecon Beacons지역은 영국 육군과 예비군의 훈련장소로 쓰였다. 육군 기병 전투학교가 Brecon에 있고 특수공군 서비스(SAS)와 특수 보트서비스 기관은 이 지역을 지원자 적격여부를 가리는데 이용한다. ..한 육군 대위 장교가 SAS  동계 훈련하는 해의 초기에 Corn Du에서 사망하여 발견되었다. 

(source : Brecon Beacons National Parks,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4) 관방의 건설과 청목진

 

진사왕은 386년, 15세 이상인 자들을 징발하여 관방(關防)을 건설하였는데 청목진에서 시작하여 북쪽은 팔곤성(八坤城)에, 서쪽은 바다에 이르렀다 하였다.

 

필자가 추정하는 청목령은 청목진에서 위로 올라가 Snowdonia지역에 있는 것이 첫번째 추정지역이다. 그런데 이 지역인 Gwynedd 지역에는 많은 돌담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필자는 이들이 진사왕 시기 건설한 관방(국경 변경의 요새)의 흔적이 아닐까 한다. (아래 사진 참조)

 

 

 

Tre'r Ceiri in Llyn peninsula (source : Wikipedia)

 

"Inside the Celtic Iron Age hillfort of Tre'r Ceiri, Gwynedd Wales, with its 150 houses; finest in Europe Inside the Celtic Iron Age hillfort of Tre'r Ceiri, Llithfaen, Gwynedd Wales, with its 150 houses. It is counted by many as one of the largest, best preserved and finest Iron Age hillforts in Northern Europe. The settlement is located 450 metres (1,480 ft) above sea level on the slopes of Yr Eifl, a mountain on the north coast of the Llŷn Peninsula in Gwynedd, north-western Wales. According to Roman writers there were four different groups of Celts living in what is now Wales: the Silures lived in South Wales, and the Deceangli in North-East Wales, the Ordovices in Central North Wales and the Gangani in the Llŷn peninsula. "

 

Gwynedd Wales지역의 Tre'r Ceiri의 켈트족 철기시기 언덕요새안에는 150개의 집이 있다. 이는 북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되고 세련된 철기시대 언덕요새 중의 하나로 간주된다. 주거지역은 해발 450미터에 있고, 북서쪽 웨일즈의 Llyn 반도의 북쪽해안에 있는산,  Yr Eifl의 경사지역에 있다. 로마인 기술에 의하면, 지금의 웨일즈에는 4개 그룹의 켈트족이 있었다. 남쪽에 살았던 Silures부족, 북동쪽에 살았던 Deceangli부족, 중부 북쪽에 살았던 Ordovices부족, 그리고 Llyn반도에 살았던 Gangani부족이 그것이다. (아래 지도 참조) 

(source :Tre'r Ceiri ,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그런데 상기 Tre'r Ceiri 지역은 Snowdonia서쪽의 Llyn peninsula의 북쪽 해안에 있다. 그러나 이곳에 있던 켈트족 Gangani의 Hill Fort라 한다. 로마시기의 유적이라는 말이 없다. 그러나 아래 자료에서 유물로 판단해서 AD 150- AD 400년까지 로마군이 주둔한 것으로 판단하므로 로마시기의 성곽으로 판단할 수 있다. 

 

 

Llyn Peninsula in Wales (source : Wikipedia)

 

 

 

Pre-Roman Wales with Celtic peoples (source : Wikipedia)

 

또한 청목진의 서쪽으로  바다까지 관방을 쌓았다 하니 지리적 위치상으로 청목진의 후보지가 될 수 없다. 단지 이곳은 Gangani 부족이 있던 곳이라 한다. Gangani(강가 부족?) 부족은 Proto-Celtic부족으로 아일랜드 서쪽지역에서도 있는 해양부족이라 한다. 그리고 이곳의 고고학적 발굴로 판단하건데, BC 200년부터 150-400년 사이에 정착한 지역으로 보인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Tre'r Ceiri ([treːr ˈkɛiri] ) is a hillfort dating back to the Iron Age. The name means "town of the giants", from cewri, plural of cawr, "giant".[1] The settlement is 450 metres (1,480 ft) above sea level on the slopes of Yr Eifl, a mountain on the north coast of the Llŷn Peninsula in Gwynedd, north-western Wales. Evidence suggests the fort was first built around 200 BC, though most of the archaeological finds date from AD 150–400, showing the site continued as a settlement during the Roman occupation.[2][3]

 

Tre'r Ceiri는 철기시대의 산악요새이다. 이 이름은 "거인의 타운"이라는 의미이다. 이 요새는 BC 200년경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유물로 판단하건데 AD 150-400기간에 걸쳐 계속 로마군이 주둔한 것으로 보인다. 

 

Tre'r Ceiri is one of the most spectacular ancient monuments in Wales. The settlement is surrounded by stone walls that are largely intact, and which reach up to 4 metres (13 ft) in some places. Within the walls are ruins of about 150 stone houses, which would have had turf roofs. During Roman times, it may have housed up to 400 people.[3]

Tre'r Ceiri는 웨일즈의 가장 큭별한 고대 유적의 하나이다.  주거지는 돌로 만든 성벽에 싸여 있고, 대부분 원형 그대로인데, 어떤 곳은 4미터에 달한다. 성벽안에는 약 150개의 돌집 잔해가 있는데, 잔디로 된 지붕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시기에는 약 400명까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source : Tre'r Ceiri,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아래 지도를 보면 로마시기의 웨일즈의 성곽과 도로망을 표시하고 있다. 즉 관방은 이러한 여러 요새를 세운 것이 아닌가 한다. 

 

Wales in the Roman Era (75-300년 후반) Forts, Fortlets and Roads (source : Wikipedia)

 

2. 청목진의 위치 추정

 

 

청목진에서 진이라는 명칭은 바닷가에 접한 수군기지를 말하는 경향을 필자는 보아 왔다. (아래 필자의 글 참조) 그러므로 바닷가에 있는 청목진으로 추정하는 것이 더 확율이 높은 것이다. 

 

https://blog.naver.com/lainfos/222581874617

 

진(鎭/津), 포(浦), 령(嶺)의 지명을 통해 본 한반도 한국사와 중공지역 한국사 주장들의 의문점

오늘은 한민족사에 나오는 수군(水軍) 기지 즉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닷가에 접한 곳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

blog.naver.com

 

 

이런 추정을 근거로 하면, 아신왕은 프랑스의 르와르강 지류인 한수(漢水)를 넘어, 바다를 건너 웨일즈의 어느 청목진 수군기지에 도착하고, 이에서 북상하여 전투하다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병사들이 동사하니 다시 한산성, 한성으로 철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목진은 Snowdonia National Park 근처지역이나 Brecon Beacons National Park의 남쪽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1) 청목진의 제1후보 : Cardiff Roman Fort

 

 

필자는 웨일즈의 Snowdonia National Park과 Brecon Beacon National Park 남쪽의 Bristol channel의 바닷가에 Cardiff castle, Chepstow castle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Cardiff castle은 로마시대부터 있어온 성곽이고, 보다 해협의 안쪽에 있는 Chepstow castle은 11세기에 지은 성곽이라 한다. (아래 자료 참조)

 

Cardiff Roman Fort 위치 (Bristol channel 안)

 

Chepstow castle 위치 (Bristol channel안)

Cardiff , Chepstow and Bristol channel location map (source : Google map)

 

"Chepstow Castle (Welsh: Castell Cas-gwent) at Chepstow, Monmouthshire, Wales, is the oldest surviving post-Roman stone fortification in Britain. Located above cliffs on the River Wye, construction began in 1067 under the instruction of the Norman Lord William FitzOsbern. Originally known as Striguil, it was the southernmost of a chain of castles built in the Welsh Marches, and with its attached Lordship of Striguil took the name of the adjoining market town in about the 14th century."

(source : Chepstow castle,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Chepstow성은 로마시대이후의 브리튼 요새중에 가장 오래된 남아 있는 성곽이다. Wye강의 절벽위에 위치한 이성은 1067년 건설이 시작되었다. (상기 내용 참조) Wye강과 Severn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하구(Bristol channel)에 위치해 있다. 

Chepstow Castle, seen from the north bank of the River Wye (source : wikipedia)

 

반면 Cardiff 성곽은 웨일즈의 카디프 시의 중심에 위치한 성곽으로 중세의 빅토리아 고딕 양식 재현의 맨션이다. 원래의 성은 11세기 후반 노르만 침입자에 의해, 3세기의 로마 요새 위에 세워졌다. (아래 자료 참조)

 

"Cardiff Castle (Welsh: Castell Caerdydd) is a medieval castle and Victorian Gothic revival mansion located in the city centre of Cardiff, Wales. The original motte and bailey castle was built in the late 11th century by Norman invaders on top of a 3rd-century Roman fort ..............

History

1st–4th centuries AD

Main article: Cardiff Roman Fort

Parts of the original Roman fort beneath the red stones on the southern wall

The future site of Cardiff Castle was first used by the Romans as a defensive location for many years.[6] The first fort was probably built about AD 55 and occupied until AD 80.[7] It was a rectangular structure much larger than the current site, and formed part of the southern Roman border in Wales during the conquest of the Silures.[8] When the border advanced, defences became less important and the fort was replaced with a sequence of two, much smaller, fortifications on the north side of the current site.[9]

Cardiff castle은 여러해 동안 방어지점으로 로마인에 의해 이용되었다. 첫 요새는 아마도 AD 55년 지어져 AD 80년까지 있었다. 현재 보다 훨씬 큰 사각형의 규모를 가졌으며, 웨일즈의 로마 남쪽 국경의 일부를 이루었다. 국경이 전진함에 따라, 방어는 덜 중요해졌고, 요새는 현재보다 북쪽에 이어진 2개의 보다 소규모의 요새들로 대체되었다. (상기 내용)

 

A fourth fort was built in the middle of the 3rd century in order to combat the pirate threat along the coast, and forms the basis of the Roman remains seen on the castle site.[10] The fort was almost square in design, approximately 635 feet (194 m) by 603 feet (184 m) large, constructed from limestone brought by sea from Penarth.[11] The fort's irregular shape was determined by the River Taff that flowed along the west side of the walls.[12] The sea would have come much closer to the site than is the case in the 21st century, and the fort would have directly overlooked the harbour.[11] This Roman fort was probably occupied at least until the end of the 4th century, but it is unclear when it was finally abandoned.[13] There is no evidence for the re-occupation of the site until the 11th century.[13]

 

3세기 중반에 네번째 요새가 세워졌는데, 이는 해안을 따라 위협하는 해적과 싸우기 위해서이며, 이 성곽지역에 남아 있는 로마의 유물의 근간을 이룬다. 요새는 거의 4각형이며, 약 194mx184m의 크기로, Penarth에서 배로 운반한 limestone(석회암)으로 만들어졌다. 요새의 불규칙적인 모습은 성벽의 서쪽을 따라 흐르는 Taff 강 때문이다. 당시에는 지금 21세기보다 훨씬 바다에 가까왔으며, 요새에서 항구를 직접 내려볼 수 있었다. 로마 요새는 아마도 적어도 4세기말까지 점하고 있었으며, 그후 언제 마지막으로 포기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11세기까지 이 지역을 다시 점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상기 내용)

(source : cardiff castle,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Cardiff castle에 대해 Roman Fort 시기에 대해 좀 더 알아 보면 다음과 같다.

 

" Cardiff Roman Fort was a coastal fort in the Roman province of Britannia Superior, of which Roman Wales was a part. Its original Latin name is uncertain. Its remains are incorporated into Cardiff Castle in the modern capital city of Wales.

Cardiff Roman Fort는 Roman Wales가 부분을 이루는 Britannia Superior의 로마 지방에 있는 해안의 요새이다. 라틴어 원래 이름은 확실하지 않다. 그 잔재는 웨일즈의 현대 수도인 카디프 시의 Cardiff Castle 안에 있다. (상기 내용)

Name

Cardiff Castle. The stones below the bed bricks are the original Roman fort (아래의 벽돌은 원래 로마 요새 것이다)

The fort's name is uncertain. It could have been Tamium as appears in the Ravenna Cosmography, although this may have been a river name and thus refers to the River Taff. Alternatively it may be Bovium (corrected from Bomio) of the Antonine Itinerary.

​요새의 이름은 확실하지 않다. 이것이 Taff강을 말하는 강이름일 수 있지만 Ravenna Cosmography(AD 700년에 나온 지리서)에 나타난 Tamium일 수 있다. 또는 Antonine Itinerary(Antonine 시기의 로마 도로망 지리서)의  Bovium (Bomio에서 정정된) 일 수 있다. (상기 내용)

 

Early forts

Prior to the building of the extant fort, there were at least two previous Roman forts on the site. The first was probably a vexillation camp built during attempted conquest of the Silures tribe around AD 55. About twenty years later, after a period of abandonment, a new smaller Roman auxiliary fort was constructed and was possibly occupied, along with a civilian vicus, until the reign of the Emperor Hadrian. From the late 2nd to the mid-3rd century, civilian timber buildings associated with iron working occupied the site.

확장된 요새가 세워지기 전에, 적어도 2개의 로마 요새가 여기에 있었다. 첫번째 것은 약 AD 55년경 Silures 부족을 정복하는 시기에 지어진 동일한 깃발하의 병사들 캠프였을 것이다. 약 20년후, 새로운 보다 작은 로마 예비병 요새가 새워졌는데, 아마도 민간 행정기관과 함께 Hadrian황제시기까지  주둔하였을 것이다.  2세기말에서 3세기중반까지는 쇠를 다루는 일과 연관된 민간 목재 빌딩이 이 자리에 있었다. (상기 내용)

 

 

Carausian shore fort

Portchester (Portus Adurni) is the best preserved Roman fort north of the Alps.[1] The D-shaped towers are typical of 3rd-century of Roman forts.

Around 290, a 9-acre (3.57 hectare) shore fort was built on the site, not unlike the almost complete example at Portchester in Hampshire. Its walls were ten feet thick and it was positioned to control access to the upper reaches of the River Severn. There may have been associated watch towers on the now eroded cliffs to the west. This is believed to have been the Emperor Carausius' response to increased Irish raids. Its military/naval force eventually moved elsewhere about 370.

약 290년에는, ​9에이커의 해변 요새가 여기에 세워졌다. 이는 거의 햄프셔지역의 Portchester의 예와 거의 같다. 성벽은 10피트의 두께이며, Severn 강의 상류에 접근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서쪽에는 지금은 침식된 절벽위에 관련된 감시탑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증가하는 아일랜드인의 침탈에 대항하기 위해 Carausis황제(재위:286-293, 브리타니아 및 Gaul지역 황제)가 취한 조치인 것으로 믿어진다. 이 보기/수군은 궁극적으로 약 370년경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상기 내용)

​(source : Cardiff Roman Fort,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즉 Cardiff Roman Fort는 Taff강 하구 해안에 세워진 요새이며, AD 55년경 이 지역의 Silures부족을 정복하기 위해 세워진 이후, 행정기관, 민간활동 등이 함께하여온 장소이었으나, 290년이후 9에이커의 요새로 발전했다. 이는 Irish raids에 방어하기 위해 Carausis황제 시기 지어진 요새이며, Bristol channel 안쪽의 Severn 강의 상류에 접근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11세기 Chepstow castle이 이역할 담당). 여기 주재하던 수군/보기 병력은 370년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즉 Cardiff 항구에 접근하여 Taff강이나 Severn강 상류로 올라가는 것을 지키는 해군기지 성곽이였던 것이다. 우리가 추정하는 청목진의 위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연대는 약간 차이가 난다. 근초고왕은 373년 청목진에 성을 쌓고 이후 아신왕까지 활발히 청목진 주위에서 전쟁을 하였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Norman에 의해 확장되고, 근처에 11세기에 Chepstow castle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 Bristol Channel의 수군기지로 역할은 계속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의 Cardiff Castle 조감도 (자료 : 위키피디아)

아래의 사진은 Cardiff를 지나는 Taff강의 일부 모습인데, 그야말로 청목이 우거진 모습이다. 청목진의 가능성을 더 확인시켜주는 모습이다. 

 

Part of the River Taff, running through Cardiff (source : Wikipedia)

The Taff flowing through Llandaff  (Llandaff는 이 지역 수도)(source : Wikipedia)

 

Cardiff Roman Fort에서 하구가 되는 위 사진의 Taff river를 보면 이 부근이 청목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Taff river 물관리하는 곳의 아래 사진에서도 주위의 청목을 볼 수 있다. 따라서 Cardiff Roman Fort가 청목진의 유력한 후보의 하나가 될 것이다.

 

Pontsticill Water Treatment Works (source : Wikipedia)

 

2) 제2의 청목진 후보 : Fortress Caerleon 

 

아래 지도는 AD 80년 로마의 군단 기지가 있는 지역을 나타낸 지도이다. 그런데 웨일즈 남부지역에  하나의 기지가 있는데, Cardiff Castle이 있는 지역에 가깝다. 여기에 Fortress Caerleon 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곳이 유럭한 청목진 후보의 하나라고 추정한다. 

 

 Roman legion camps in AD 80 (source : Wikipedia)

 

여기에는 Isca Augusta라는  요새가 있어 AD 300년까지 지역의 군사기지 본부로서 역할을 했다 한다. 마지막 로마 동전은 Valens황제시기의 것이었다 한다. 이 황제의 재위시기는 AD 364-378년이다. 백제의 근초고왕 시기에 해당한다.  근초고왕은 373년에 청목령에 성을 쌓았다 했다. 또한 로마 시기에 여기에 항구가 있었다는 흔적이 발굴되었다 한다. 그야말로 청목진의 요건을 다 갖춘 것이다. 

 

"Isca Augusta

 

"Isca, variously specified as Isca Augusta or Isca Silurum, was the site of a Roman legionary fortress and settlement or vicus, the remains of which lie beneath parts of the present-day suburban town of Caerleon in the north of the city of Newport in South Wales. The site ncludes Caerleon Amphitheatre and is protected by Cadw..............

 

Isca는 Isca Augusta 또는 Isca Silurum으로도 불리는데, 로마군단 요새이며 주둔지역이다. 그 잔재들은 남부 웨일즈의 Newport도시 북쪽의 Caerleon 외곽타운 아래에 있다. 이곳은 Caerleon Amphitheatre를 포함하고 있다. 

 

Isca became the headquarters of the Legion II Augusta based in the large fortress of typical legionary "playing-card" shape and built initially with an earth bank and timber palisade. It remained their headquarters until at least 300 AD.......

 

Isca는 2군단 Augusta 본부로서 전형적인 군단의 거대 요새안에 위치하며, 초기에는 흙담과 목책으로 지어졌다. 본부로서 적어도 AD 300년까지 있었다.

 

The latest coin from this site is that of Valens (364–378).[9]

 

이 지역의 마지막 로마 동전은 Valens황제 (364-378) 시기의 것이다. 

 

Harbour

In August 2011 the remains of a Roman harbour were uncovered in Caerleon.[10][11]

 

2011년 8월에, 로마시기의 항구 잔재가 Caerleon에서 발견되었다. 

 

(source : Isca Augusta,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Caerleon의 로마시기 요새 Isca Augusta 성벽 잔재 (자료 : 위키피디아)

 

Caerleon의 로마 성곽 흔적 Isca Augusta  (자료 : 위키피디아)

 

Caerleon 지역의 로마시기의 목욕탕 잔재 (자료 : 위키피디아)

 

Caerleon지역의 로마 Amphitheatre  잔재 (자료 : 위키피디아)

 

Caerleon지역의 로마시기 성벽 잔재 (자료 : 위키피디아)

Roman Tower at caerleon (1783년 그림) (자료 : 위키피디아)

 

 

3. 청목령에 가까운 쌍현성 위치 추정

 

쌍현성은 쌍현은 쌍으로 되어 있는 봉우리를 말하는데 상기의 Corn Du와 Pen Y Fan이 될 수 있으며, Corn Du에서 Taff강이 발원하여 남으로 내려간다 하였다. 쌍현성은 이 지역 주위에 많이 세워진 로마성중의 일부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Corn Du 정상의 모습 (자료 : 위키피디아)

 

 

Pen Y Fan 의 모습 (자료 : 위키피디아)

 

1) 쌍현성 제1후보 :  Brecon Roman Military base

 

남으로 바로 흐르는 Taff강과 달리 웨일즈 중부에서 남동쪽으로 흘러 Cardiff 근처로 흐르는 강중에는 River Usk가 있다. 이 강가에 Brecon이라는 지역에 순수 군사기지가 있다. 

 

 

Usk 강의 지도 (자료 : 위키피디아)

 

 

 

로마시기 (75-300년대 후반) 요새와 도로망 (자료 : 위키피디아)

 

Brecon 군사기지에는 Y Gaer 로마 요새가 있는데 기병이 머물렀다 한다. 

 

 

Before the building of the bridge over the Usk, Brecon was one of the few places where the river could be forded. In Roman Britain Y Gaer (Cicucium) was established as a Roman cavalry base for the conquest of Roman Wales and Brecon was first established as a military base.[7]

 

Usk강의 다리를 건설하기 전에, Brecon은 강을 건널 수 있는 몇 안되는 지역중의 하나였다. 로마 브리튼에서 Y Gaer는 로마 웨일즈를 정복하기 위한 로마 기병기지로 세워졌고 Brecon은 군사기지로서 처음 세워졌다.

(source : Brecon,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Brecon 위치, in Powys county, Wales

 

 

Y Gaer (Latin: Cicucium) is a Roman fort situated near modern-day Brecon in Mid Wales, United Kingdom. Y Gaer is located at grid reference SO00332966 (Landranger 160).

Y Gaer는 현재 웨일즈 중앙에 있는 Brecon에 위치한 로마 요새이다.

 

Y Gaer was built around AD 75 and sits on a crossroads of Roman roads in the valley of the River Usk at a strategic point in Roman Wales, linking South Wales and Mid Wales. It was part of a chain of similar forts, such as Gobannium at Abergavenny, a day's march away down the Usk valley, and larger bases, such as Moridunum (Carmarthen) via Alabum (Llandovery), Cardiff Roman Fort to the south and Isca Augusta, Caerleon, the main base for the Roman legion locally.[1]....

 

Y gaer는 약 AD 75년경 세워졌는데,  남쪽 웨일즈와 중부 웨일즈를 연결하는 로마 웨일즈의 전략적 위치의 Usk강의 계곡에 있는 로마의 도로가 교차하는 곳에 있다. 이는 유사한 요새들의 chain의 일부인데, 예를 들어 Usk 계곡을 따라 하루 도보거리에 있는 Abergavenny에 있는 Gobannium요새, 보다 큰 base들로는, Alabum(Llandovery)를 거쳐 Moridunum요새, 남쪽의 Cardiff 로마 요새, 지방의 로마군단 본부인 Caerleon의 Isca Augusta 요새 등이다. (상기 내용)

........

The fort was built for a contingent of up to 500 cavalrymen, recruited originally in Spain from the Vettones, and these Vettonian cavalry would have played a significant part in the conquest of the area held by the Silures.

​Y Gaer요새는 Vettones 스페인에서 원래 온 용병으로 500명에 이르는 기병대를 위해 세워졌다. Vettonian 기병은 Silures부족이 점한 지역을 정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상기 내용)

 

Their early stables were wooden and their accommodation basic, protected by clay banks topped with a wooden palisade. This was rebuilt in the 2nd century AD by the Legio II Augusta and also shows signs of being repaired again in the 4th century.

 

그들의 초기 상태는 목재로 되어 있었고 목책과 함께 토성으로 보호된 것이었다. 2세기에 Augusta  2군단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4세기에 다시 수리한 흔적을 보인다. 

(source : Y Gaer,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2) 쌍현성 제 2 후보 : Taff river상의 Roman Fort

 

Taff강이 남쪽으로 흘러 Brisrol Channel에서 만나는 Cadiff 도시 북쪽 23마일에 Merthyr Tydfil 도시가 있으며, 여기에 Roman Fort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예비병력 요새인 Penydarren Roman Fort가 있다. 

 

 

"History

 

Pre-history

 

Peoples migrating north from Europe had lived in the area for many thousands of years. The archaeological record starts from about 1000 BCE with the Celts. From their language, the Welsh language developed.[16] Hillforts were built during the Iron Age and the tribe that inhabited them in the south of Wales was called the Silures, according to Tacitus, the Roman historian of the Roman invaders.

 

유럽으로부터 북으로 이주하는 부족들은 수천년동안 이 지역에서 살았다. 고고학적 자료는 켈트족이 BC 1000년부터 시작합니다. 켈트족 언어로부터 웨일즈 언어가 발달했습니다. 철기시대에 언덕요새가 세워졌고, 남부 웨일즈에 사는 부족은 Silures부족으로 불리웠다고 로마 침입에 대한 역사학자 Tacitus가 말했습니다. (상기 내용)

 

The Roman invasion (로마의 침입)

The Romans arrived in Wales by about 47–53 CE and established a network of forts, with roads to link them. They had to fight hard to consolidate their conquests, and in 74 CE they built an auxiliary fortress at Penydarren, overlooking the River Taff. It covered an area of about three hectares, and formed part of the network of roads and fortifications; remains were found underneath the Merthyr Town F.C. football ground. A road ran north–south through the area, linking the southern coast with Mid Wales and Watling Street via Brecon. Parts of this and other roads, including Sarn Helen, can be traced and walked.[17]

 

로마는 웨일즈에 47-53 AD기간에 도달했으며, 요새망을 세우고 그들사이의 도로를 만들었다. 로마인들은 정복을 공고히 하기위해 매우 힘들게 싸워야 했다. 74년에는 Taff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Penydarren에 보조 요새를 세웠다. 이는 약 3헥타르를 점하였고, 도로와 요새망의 일부를 형성했으며, 이들의 잔재는 Merthyr Town 축구장의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도로는 이지역의 남북으로 만들어져, 남부해안을 중부 웨일즈로 연결했는데,  Brecon을 지나는 도로를 만들었다. 이것과 다른 도로들의 일부는, Sarn Helen을 포함하여  걷게 되어 있다. (상기 내용)

 

The Silures resisted this invasion fiercely from their mountain strongholds, but the Roman army eventually prevailed. In time, relative peace was established, and the Penydarren fortress was abandoned by about 120 CE. This was bad for the local economy, which had come to rely upon supplying the fortress with beef and grain, and imported items such as oysters from the coast. The Romans had intermarried with local women and many auxiliary veterans had settled on farms locally.

 

Silures부족은 산 요새에서 강렬하게 로마의 침략에 저항했으나, 로마는 결국 정복했다. 그후 평화가 회복되고 120년경에 Penydarren 요새는 버러졌다. 이것은 지역경제에는 나쁜 것이었는데, 요새에 쇠고기와 곡물을 보급하는 것에 의존하고 해안으로부터 굴 등을 수입하였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지역 여인들과 결혼하였으며, 많은 예비병력들이 지역 농장에 정착했다. (상기 내용)

 

With the decline of the Roman Empire, Roman legions were withdrawn about 380 CE. By 402, the Roman army in Britain consisted mostly of Germanic troops and local recruits; the cream of the army had been withdrawn to the continent of Europe. Sometime in that period, Irish Dalriadans (Scots) and Picts attacked and breached Hadrian's Wall. During the 4th and 5th centuries the coasts of Cambria (Wales) had been subject to the raids of Irish pirates, in much the same way as the south and east coasts of Britain had been raided by Saxon pirates from across the North Sea. Around the middle of the 5th century, Irish settlements had been established around Swansea, the Gower Peninsula, Carmarthenshire, and in Pembrokeshire and eventually petty kingdoms were established as far inland as Brecon.[18]

 

로마제국의 쇠락과 함께, 로마군단은 380년경 철수되었다. 402년까지 브리튼의 로마군은 대부분의 게르만인 부대와 지역 동원군으로 이루어졌다. 군의 핵심인력은 유럽대륙으로 철수되었다. 이 시기에, 아일랜드인 dalriadans (스코트인)와 Picts인들은 공격했고, Hadrian's Wall이 무너졌다. 4-5세기에는,  브리튼의 남부와 동쪽 해안이 북해를 건너온 삭슨족에 의해 침탈되는 같은 방식으로, 웨일즈의 Cambria해안은 아일랜드인의 침탈에 노출되었다. 약 5세기 중반에는 아일랜드인들의 정착이 Swansea, Gower 반도, Carmarthenshire와 pembrokeshire에서 이루어졌고, 결국 Brecon의 내륙에까지 소왕국들이 세워졌다. (상기 내용)

(source : Merthyr Tydfil,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상기 지역에서도 특히 Penydarren에 로마요새가 있다 했다 그래서 이에 대해 더 살펴 보자.

 

"Penydarren is a community and electoral ward in Merthyr Tydfil County Borough in Wales.

​Penydarren은 웨일즈의 Merthyr Tydfil 카운티의 community이다. 

 

Description

The area is most notable for being the site of a 1st-century Roman fort.......

 

이 지역은 1세기 로마 요새로서 가장 주목되는 장소이다. .

 

Penydarren Park, the site of the Roman fort and the football ground, is today outside the community boundary.

Penydarren 공원 즉 로마 요새의 장소와 축구장은 오늘날 community 밖에 있다. 

 

Roman fort

 

Its location on a spur of land 700 feet (210 m) above sea level,[3] just southwest of the River Taff, made Pen-y-Darren an ideal location to build an occupation outpost fort for the Romans in AD 75, during the governorship of Sextus Julius Frontinus. It was during this period that he subdued the Silures and other hostile tribes of Wales by establishing a new base at Isca Augusta for Legio II Augusta, and this was one of a network of smaller forts 15–20 kilometres (9.3–12.4 mi) apart for his auxiliary units............

 

Taff강의 남서쪽에 해발 700피트(210m) 땅에 위치는 AD 75년 로마의 외곽 요새를 세우기 좋은 장소로  Pen-y-Darren이 되었다. Sextus Julius Frontinus 통치시기에, 그는 Augusta 2군단을 위해 Isca Augusta에 새로운 기지를 세움으로써, Silures부족과 웨일즈의 다른 적대적인 부족들을 복속시켰고, 이것이 예비병력 단위와 15-20킬로미터(9.3-12.4마일) 떨어진 보다 조그만 요새들의 네트워크의 하나가 되었다. (상기 내용)

 

Flavian pottery confirms the origin of the fort as a wooden structure, replaced in stone around AD 100, with the bath house located outside the fort's southern defences contemporary with the rebuilding. The latest pottery recovered is Trajanic, confirming that the site was abandoned in the Hadrianic period, with its garrison, moved to a new build fort at Gelligaer.[3][5]

 

Flavian시기의 도자기는 나무구조로된 요새의 원래 모습이 약 100년경에 석성으로 바뀌었고 재건축시 요새의 남쪽 방어지점 바깥에 목용탕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발견된 가장 최근의 도자기는 Trajan시대의 것으로 이 장소가 Hadrian시기에 버려졌고, 병력은 Gelligaer의 새로운 요새로 옮겼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상기 내용)

(source : Penydarren,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Hadrianic period이후 Gelligaer로 성이 옮겨졌다 하였다. 

"Gelligaer is known for its stone Roman fort, part of a network within Roman Wales, believed to have been built between 103 and 111 A.D. and excavated in the early 20th century."

Gelligaer는 로마시대 석성으로 알려지는데, 이는 로마 웨일즈의 네트워크의 한 곳으로, 103-111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판단되며, 이는 20세기초에 발굴되었다. 

(source: Gelligaer,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4세기에 수리 흔적이 있거나 주둔흔적이 있는 Y Gaer 로마요새와

Merthyr Tydfil 로마 요새가 유력한 쌍현성 후보가 될 것이다. 

 

 

4. 웨일즈에서의 청목령의 존재 가능성 검토

 

 

Pass의 개념으로 청목령을 본다면, 다음의 후보지가 될 수 있다. 이는 웨일즈의 Pass list에서 로마시기와 관련된 것을 살펴 본 것이다. 하나는 Snowdonia에 있는 Bwlch-y-Ddeufaen Pass이고 또 다른 하나는 Brecon Beacons에 있는 Gospel Pass이다. 

 

(1)  Snowdonia에 있는 Bwlch-y-Ddeufaen Pass

The taller (3m) south-east stone

The north-west stone (2m)

 

Bwlch-y-Ddeufaen (Welsh for 'gap/pass of the two stones') is a mountain pass in Conwy county borough, north Wales, traversable only on foot or horseback, following the former Roman road from Caerhun (Canovium) to Caernarfon (Segontium). The route may be followed by road to Rowen or to Llanbedr-y-Cennin and from either, the way, through a mountain gate, is a clearly marked green path to Abergwyngregyn. The route lies between the peaks of Tal y Fan and Drum, in the Carneddau range in north Snowdonia. The distance from Rowen to Abergwyngregyn is about nine miles of mostly high mountain footpath. Near the Abergwyngregyn end, the route forms part of the North Wales Path.

 

Bwlch-y-Ddeufaen (2개의 돌의 령(Pass/gap)이란 웨일즈어)는 북웨일즈의 Conwy 카운티의 산고개의 령 (Pass)인데, 걷거나 말에 타서만 건널 수 있으며, 이전의 로마길을 따라 Caerhun(Canovium)에서 Caernarfon(Segontium)까지 갈 수 있다. 이 루트는 Rowen이나 Llanbedr-y-Cennin로의 길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이중 하나로부터, 산의 gate를 지나, Abergwyngregyn에까지 잘 갈 수 있다. 이 길은 Snowdonia북쪽의 Carneddau 산악지역에 있는 Tal y Fan과 Drum의 정상 사이에 있다. Rowen으로부터 Abergwyngregyn까지 거리는 약 9마일에 달하는데, 모두 높은 산의 도보길이다. Abergwyngregyn끝 가까이에서 이 길은 북웨일즈길의 일부를 형성한다. (상기 내용)

 

History

 

The Two Stones are large pre-historic monoliths of unknown date, which mark the summit at about 1,400 feet (430 m). The south-eastern stone measures 3m in height, the smaller north-western stone is 2m high. Also, near the mountain gate, on the south side of the track, is a stone circle and a cromlech called Maen-y-bardd (the bard's stone) nearer Rowen.

 

두개의 돌은 선사시대의 거대한 돌기둥인데, 약 1400피트(430미터)의 정상을 표시한다. 남동쪽의 돌은 3m 높이이며, 북서쪽의 보다 작은 돌은 2m높이이다. 또한 mountain gate가까이, 트랙의 남쪽에는 Rowen에 보다 가까이에 stone circle과 Maen-y-bardd(시인의 돌)라 불리는 환상열석(Cromlech)이 있다. (상기 내용)

 

 

The path was a drovers' road leading via the Lavan Sands to Anglesey. On the mainland side, the route was part of the network of drovers' roads that reached all the major centres of population in Wales and England. Cattle, sheep and even geese were regularly driven that way on foot down the ages to 1850 or even later, quite often as far as London, which was the largest market in Britain.

 

이 길은 양치기나 소몰이의 길이며, Lavan을 거쳐 Anglesey에 이르는 길이다. 본토쪽에서 이 길은 양치기/소몰이의 길들의 일부이며, 웨일즈와 잉글랜드에서 주요 주거지에 도달하는 길이다. 소, 양, 거위까지 1850년 또는 그 이후까지도 이길을 따라 주기적으로 이동하였으며, 때로는 브리튼에서 가장 큰 시장인 런던까지도 간다. (상기 내용)

 

 

Several Roman milestones have been discovered on this route or in the area, including one giving the distance to Kanovium (sic).

 

몇몇 로마시기의 돌로된 마일표가 이 길에서 또는 이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Kanivium(sic)까지의 거리를 나타내고 있었다. 

Near the Abergwyngregyn end of the green path is a green mound, the relic of a motte-and-bailey castle of Llywelyn the Great.

이 초원의 길이 끝나는 Abergwyngregyn 가까이에는 푸른 언덕이 있는데, 이는 Llywely the Great의 작은 언덕위에 성벽을 두르고 지은 성채의 유적이다. 

(source : Bwlch-y-Ddeufaen,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2) Brecon Beacons에 있는 Gospel Pass

West from the Gospel Pass road on a day of strong winds, bright sunshine, snow showers and wonderful clear views

 

The Gospel Pass (Welsh: Bwlch yr Efengyl) is the highest road pass in Wales. It is at the head of the Vale of Ewyas in the Black Mountains of southeast Wales.[1] Starting from Hay-on-Wye the narrow mountain road climbs steeply to a height of 549 metres (1,801 ft) [2] above sea level, squeezing between the mountains of Twmpa to the west and Hay Bluff to the east, before dropping down into the valley to the south on its way to Llanthony Priory, Llanfihangel Crucorney and Abergavenny. At one time a small lead-mining operation was established at the pass.[3] The Gospel Pass is one of the most celebrated locations within the Brecon Beacons National Park, being a popular destination for sightseers and is popular too with walkers and cyclists. Indeed, the Gospel Pass road forms a part of route 42 of the National Cycle Network. It also featured in the opening scenes of the film "An American Werewolf In London".

 

Gospel Pass(웨일즈어 : Bwlch yr Efengyl)는 웨일즈에서 가장 높은 고개길이다. 웨일즈 남동쪽 Black Mountains에 있는 Vale of Ewyas의 머리부분에 있다. Hay-on-Wye에서 시작하여, 좁은 산길은 해발 549미터(1801ft)에서 갑자기 가파르게 올라간다. 이는 서쪽의 Twmpa산과 동쪽의 hay Bluff사이를 좁히며, 이는 Llanthony Priory, Llanfihangel Crucorney 와 Abergavenny로 가는 길에 남쪽으로 가는 계곡으로 내려가지 건의 길이다. 한때는 납을 캐는 소형 광산이 이 Pass에서 운영되었다. Gospel Pass는 Brecon Beacons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중의 하나이다.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장소이며,  자전거타는 사람들이나 걷는 사람들에게 선호된다. (상기 내용)

 

 

It is a single track road over most of its length, but there are numerous passing places. Owing to its height and exposure, it is occasionally blocked by snow during the winter. It is well used by walkers since it gives access to the major peaks of the Black Mountains, especially at the northern end of the road, where there are several car parks.

 

이곳은 대부분의 길이 하나의 트랙만이 있는 길이며, 여러 지나치는 장소가 있다. 그 높이로 인해 겨울에는 가끔 눈때문에 폐쇄된다. Black Mountains의 주요 봉우리에 접근하는 길이기 때문에 도보여행자들에게 잘 이용된다. 특히 도로의 북쪽 끝에는 몇몇 자동차 파킹장이 있다. (상기 내용)

 

 

Origin of name

 

View of Hay Bluff from the north and near the Gospel Pass

The name is believed locally to derive from St Paul, brought to Wales through the pass by the daughter of Caradog (or Caractacus), first preaching the gospel to her people here.

이름은 지역적으로 St Paul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믿어진다. 그는 Caradog (or Caractacus)의 딸이 불러 이 Pass를 통해 웨일즈에 와서 그녀의 부족들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설교했다. 

(source : Gospel Pass,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3) 5세기 웨일즈왕국의 시작 시기의 차이를 고려한 청목령의 추정

 

 

이제 5세기 이 웨일즈지역의 지방 정권 설립시기를 살펴 보자. 서로마제국이 패망하는 과정 속에서 웨일즈 지역은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면 이 지역에서의 로마군의 철수 시기를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필자가 이 지역에서 알아 낸 각미성, 관미성 곤미천, 청목산 등을 고려하면, 이 지역에서 고구려와 말갈의 세력이 백제인 서로마제국과 어떻게 대치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들 지역의 지방정권의 수립은 2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광개토태왕 시기에 세워진 Post-Roman 웨일즈 왕국이다. 이는 Gwynedd Kingdom (401- 1283)과 Dyfed Kingdom (410- 920)이다. Gwynedd 지역은 웨일즈의 서북부지역으로 Snowdonia가 있는 지역이다. Dyfed왕국 지역은 웨일즈 남서쪽 해안지역으로 광개토태왕의 수군이 먼저 확보한 지역으로 추산된다. (아래 지도 참조)

 

두번째 그룹은 장수왕 시기에 세워진 Post-Roma 웨일즈 왕국으로,  Kingdom of Brycheiniog (450-1045), Kingdom of Gwent (5c - 1075), Kingdom of Gwynllwg (5c - 6c)으로 이들 지역은 웨일즈의 남동부지역에 있다 (아래 지도 참조)

 

 

 

Medieval Wales  (source : Wikipedia)

 

 

즉 웨일즈 남동부지방은 로마군의 철수가 450년이후 일 수 있다는 추정이다. 따라서 469년 개로왕이 이 지역의 청목령에 목책을 세울 수 있다, 쌍현성도 이지역에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추정에 근거한다면, 청목령  쌍현성은 Brycheiniog Kingdom지역 즉 Brecon Beacons지역에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위에서 살펴 본 Gospel Pass가 청목령일 수 있다.

 

5. Severn river 와 Wye river 상의 청목진 가능성 검토

 

청목진이 Bristol Channel 바닷가에 있지 않고 강으로 수군이 내륙으로 들어와 있는 곳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지금도 배가 다니는 Severn 강변의 어느 지점을 청목진으로 고려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물이 풍부한 Severn 강을 살펴 보았다.  

 

Map of Severn river and its tributaries (source : Wikipedia)

Tributaries (light blue) and major settlements on and near the Severn (red)

 

상기 지도는 Severn 강의 주위를 그린 지도이다. 이 Sever강의 주위에 있는 도시들을 검토해 보았으나, 수군기지의 역사는 찾을 수 없었다. 또한 Severn강은 대부분의 지역이 England지역에 있어 Wales지역에 있는 도시들을 살펴 보아도 수군기지의 역사는 찾을 수 없었다. 

 

"The River Severn (Welsh: Afon Hafren, pronounced [ˈavɔn ˈhavrɛn]) is the longest river in Great Britain, with a length of 220 miles (354 km).[4][5] It is also the river with the most voluminous flow of water by far in all of England and Wales, with an average flow rate of 107 m3/s (3,800 cu ft/s) at Apperley, Gloucestershire. It rises in the Cambrian Mountains in mid Wales, at an altitude of 610 m (2,000 ft), on the Plynlimon massif, which lies close to the Ceredigion/Powys border near Llanidloes. The river then flows through Shropshire, Worcestershire and Gloucestershire. The county towns of Shrewsbury, Worcester and Gloucester lie on its course."

Severn 강은 220마일(354km)의 길이로 영국에서 가장 긴 강이다. 또한 Gloucestershire카운티의 Apperley에서 강의 수량이 초당 평균 107입방미터(3800 큐빅피트)로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가장 수량이 많은 강이기도 하다. 이 강은 중부 웨일즈의 Cambrian mountains(고도 610미터(2000피트), Llanidloes 가까이 Ceredigion/Powys경계에 가까이 있는 Plynlimon massif)에서 흘러 내린다.  이 강은 그리고 Shropshire, Worcestershire와 Gloucestershire를 지나 흐른다. 카운티 타운인 Shrewsbury, Worcester, Gloucester가 이 강의 코스에 있다. (상기 내용)

 

(source : River Severn,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그래서 이번에는 Wye강의 주위 도시들을 살펴 보았다. Wye강은 Engalnd에 걸쳐 있지만 Wales의 Pwys county에 있는  두 도시가 있다. Builthwells, Rhayader가 그것이다. 그러나 역시 수군기지에 대한 역사는 없었다. 그외에 Taff강이나 Usk강을 살펴 보아도 항구나 수군이 올라가서 있는 수군기지 관련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6. 팔곤성 (八坤땅곤)의 가능성

 

팔곤성은 웨일즈 북쪽의 Conwy river(곤미천)하구에 있는 관미성(Conwy Castle)과 강건너 있는 Deganwy castle이 있는 Conwy community를  아래 지도에서 그렸는데, 그 모습이 여덟 팔자 모습이다. 그래서 팔곤성이라 하지 않았나 추정한다. 

 

 

Conwy community map 

 

 

Conwy (/ˈkɒnwi/, Welsh: [ˈkɔnʊɨ] ), previously known in English as Conway, is a walled market town, community and the administrative centre of Conwy County Borough in North Wales. The walled town and castle stand on the west bank of the River Conwy, facing Deganwy on the east bank. The town formerly lay in Gwynedd and prior to that in Caernarfonshire. The community, which also includes Deganwy and Llandudno Junction, had a population of 14,753 at the 2011 census.[1]

영어로는 Conway로 알려진 Conwy는 타운 성벽으로 둘러 싸인 커뮤니티이며, 북부 웨일즈의 Conwy 카운티의 행정 중심지이다. 성벽으로 둘러 싸인 타운과 성곽은 Conwy강의 서쪽 강안에 있고, 동안의 Deganwy성을 마주하고 있다. 이 타운은 공식적으로  Gwynedd에 있는데, 전에는 Caernarfonshire에 속했다. 이 커뮤니티는 또한 Deganwy와 Llandudno junction을 포함하는데, 인구는 2011년 센서스에서 14,753명이었다. (상기 내용)

(source : Conwy,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웨일즈)

 

 

III. 결 론

 

이상으로 지난 글에서 살펴 본 곤미천과 청목산에 이은 청목진과 청목령에 대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앞의 긴 글에서 보았듯이 현재 웨일즈에는 많은 선사시대부터의 Hillforts가 존재한다. 그러나 로마시대부터 역사가 있고, 그리고 4세기까지 존속하는 성곽과 요새들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청목진은 바닷가인 Bristol channel에 접한 수군기지가 될 수 있는 곳으로 살펴 보았고, Cardiff Roman Fort 뿐만아니라 Caerleon Roman Fort가 유력한 청목진의 후보가 되었다.

 

청목령은 쌍현성과 연결시키고 또한 개로왕 시기 469년까지 언급된 것을 참고하여 살펴 보면 Brecon Beacons 지역의 Gospel Pass가 유력한 후보지가 되었다.

 

쌍현성은 Corn Du와 Pen Y Fan의 두 봉우리와 가까운 지역에서 두 요새가 후보로 추정되었다. Brecon에 있는 Y Gaer 요새와 Merthyr Tydfil 로마 요새가 쌍현성이 아닌가 한다. 이 또한 청목령이 언급된 4세기까지 수리하거나 주둔한 내역을 고려하였다.

 

그리고 청목진의 북쪽에 있다는 팔곤성은 Conwy community에 있는 성을 의미하지 않나 추정한다. 관미성이란 이름이 있는데 왜 팔곤성이란 이름을 썼을까에 대한 의문은 든다.

 

그리고 관방이란 여러 요새를 세운 것을 로마 당시의 웨일즈 도로망과 요새들의 지도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웨일즈의 당시 역사적 모든 상황이 청목진, 청목령의 추정에 들어 맞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글에서 추정했던 각미성, 관미성, 수곡성, 곤미천, 청목산에 이은 것으로 보다 확실해진 추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