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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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주변의 카자르칸국은 발해의 일부인가?
발해의 일부라 판단되는 Khazar Kaganate(650/660 - 969/1050)는 여러가지로 발해의 특성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검토는 후일 발해에 관한 연구에서 본격적으로 하고, 여기서는 Pechenegs지역에 이전에 있던 나라로서, 특히 말기에 관한 역사에 집중하고자 한다. Khazar Khaganate(650/660-969/1050)는 흑해 주변의 방대한 영토를 확보한 국가로서, 여러 튀르크계 민족이 혼합된 국가이며, 따라서 종교도 Tengrism, Buddhism, Judaism, Muslim, 샤머니즘 등이 혼재하였다. 발해 역사에서도 기독교가 있었다고 언급된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Khazar Khaganate (650-850) (source : Wikipedia) 1) 카..
2022.11.01 -
고구려 - 수, 당 전쟁은 유럽에서 있었다
필자는 요수를 프랑스의 론강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요서는 이 강의 서쪽 즉 프랑스지역이 된다. 따라서 중국사는 이 프랑스 지역에서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요동의 역사, 동이의 역사는 요수의 우측, 즉 론강의 우측에 있는 역사로 추정한다. 이와 관련 하여 필자는 그동안 많은 자료들을 검토하며, 이를 증명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필자가 증명하지 못한 것이 있다. 즉 고구려와 수, 당의 큰 전쟁이다. 이는 누가 보아도 요수를 건너서 공격해 온 수나라, 당나라의 공격이며, 고구려가 잘 막아낸 역사이다. 그만큼 역사를 숨기고자 하는 역사 왜곡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숨겨야 한다. 이것이 그대로 들어 나면 역사왜곡이 들통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듯 하다. ..
2022.10.28 -
신라는 이태리반도에도 있었다
I. 서론 그동안 신라의 위치에 대해 고심해왔다. 파사이사금이 있으니 페르시아 지방에 있는 것 확실하여, 그동안 페르시아 역사로 비교하며, 신라가 사산왕조 페르시아라는 것을 밝혔었다. 그러나 분명 이태리반도에도 있었던 것으로 짐작 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부족하여 망설였었다. 그리고 그동안 의문을 품은 채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 확실하게 판단되어 이글을 쓰게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 신성로마제국 역사를 보면서 요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살수, 을지문덕 장군이 이룬 살수대첩의 장소를 스위스 북쪽 Saar river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또한 진흥왕 시기의 고구려 지역에 대한 점령이 이태리 북부 롬바르드왕국이라는 확인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동안 신라에서의 태백산(발해 지..
2022.10.20 -
해금은 바이올린의 원조이다
우리 주위에서 국악기로 연주되는 해금은 해족에서 연유하였다 한다. "중국의 『문헌통고』(文獻通考)에 따르면 "해금은 오랑캐 중 해족이 좋아하는 악기다. 현도(絃鼗)에서 나온 것으로 모양도 같다"고 했다. 해금은 후에 북송을 통해 고려에 들어갔는데 이후 토착화가 잘 되었는지 당악기가 아니라 향악기로 취급된다. " (자료 : 해족, 나무위키, 인용출처 :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카테고리, 해족) "해금은 해족이 만든 해족 고유의 현악기였으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 : 해족, 위키백과, 인용출처 : 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 Hidden Corea, 카테고리, 해족) 즉 해금은 해족이 만든 고유의 현악기로, 고려시대에 전해졌는데, 향악기로 취급된다 ..
2022.10.10 -
돌궐은 북유럽의 누구인가?
I. 머리말 필자는 그동안 돌궐의 정체와 위치에 대해 계속 연구해 왔다. 지난 3개의 글, "돌궐은 북해의 Saxons족인가?", " 바이킹은 한민족과 연관이 있는가?", "바이킹의 활동지역과 한민족 연관성(2)"에서, 돌궐이 Saxons족 또는 바이킹의 선조들과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혔다. 그런데, 사실, 필자는 511년경 Danish King Chlochilaicus이 프랑크왕국 북쪽 해변을 raids한 기록을 보고, 돌궐이 Saxons족이 아닌 Danes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이들이 후에 바이킹이 되기에, 바이킹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이킹의 선조격인 Danes와 Saxons족의 연관관계를 찾지 못한 필자에게는, 돌궐의 잦은 중국 침입의 역사가, 프랑크왕국에게 자주 침범한 ..
2022.10.04 -
바이킹 활동지역과 한민족 연관성 (2)
지난 글, '바이킹은 한민족과 관련이 있는가?'라는 글에서 바이킹의 문화를 살펴 보며, 한민족과의 연관성을 살펴 보았다. 특히 마한과의 연관성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마한이 중부유럽과 이태리반도에 걸쳐 있고, 백두산 주위 10개국의 하나인 해두국이 마한의 거수국이었으니, 다른 조나국(Juteland로 추정)이나 주나국도 마한의 거수국이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하며, 그러한 면에서 바이킹의 마한과의 연관성은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즉 바이킹의 한민족과의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쪽의 바이킹이 덴마크의 Danes와 연관이 있다면, 북부여지역으로 돌아간 두막루가 Denmark로 추정되므로, 더욱 한민족과의 관련성은 확실해진다. 본 글에서는 8세기 이후의 바이킹의 활동지역에 대해 살펴 보며, 그..
2022.09.29 -
바이킹은 한민족과 관련이 있는가?
I. 서론 필자는 최근 돌궐의 위치 연구에 여념이 없다. 돌궐의 위치가 기존의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Gokturk가 아니라 프랑스 북부 지역에 있다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다. 그 확신은 거란의 별종인 실위지역이 지금의 덴마크 반도지역이나 그 북쪽으로 추론 되는바, 실위에 관련 신당서 문서에는 실위의 서쪽에 돌궐이 있고, 실위의 동쪽에는 흑수말갈이 있다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돌궐은 흉노의 별종이라 한다. 흑수말갈은 최근에 필자가 쓴 글에서 모스크바 지역의 흑수에서 출발한 흑수말갈은 이 지역에서 출발하여 흑해지방까지 진출하고 미구에는 지금의 판노니아지방으로 이동한 마자르족 즉 말갈이 아닌가 한다고 추정했다. 따라서 돌궐은 실위의 서쪽이므로, 북해의 서쪽이나 발트해 북쪽에서 본 서쪽으로 바이킹 지역으로 추정되는 ..
2022.09.26 -
돌궐은 북해의 Saxons족인가?
본 글은 최근 필자가 쓴 글 'Gokturk는 고구려인가?' 라는 글을 쓰면서, 지금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돌궐의 위치를 Gokturk 위치로 보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만약 Gokturk가 고씨계 튀르크라고 하는 고구려라면, 돌궐의 위치는 다시 추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보던 중, 아래 실위 관련 기록중 돌궐은 실위의 서쪽에 있었다는 기록을 보고 확신을 갖게 되어 이글을 쓰게 된다. 필자는 실위를 덴마크지역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리고 평소 프랑스 지역을 중국의 역사지역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는 요수 즉 압록수가 프랑스의 론강이라는 추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아울러 필자는 패수는 라인강으로 추정했다. 최근 '강동6주는 독일의 엘베강 동쪽에 있었다' 라는 글을 쓰면서, 또한 흑수말갈지역..
2022.09.20 -
고려의 강동6주는 독일의 엘베강 동쪽에 있었다.
필자는 얼마 전 '요나라의 역사는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에 숨어 있다"라는 글에서 요나라의 지역이 프랑스 론강인 요수 주위에 있었다 주장했다. 그리고 이 당시 서양사의 역사는 신성로마제국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에서 고려와 거란의 3차에 걸친 전쟁의 역사가 어떻게 기술되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그러면서 고려가 거란과의 전쟁에서 확보한 강동6주 지역은 어디인지 추정해 보고자 한다. 방법론상으로는 먼저 신성로마제국의 역사를 살펴 보면서 이에 해당하는 고려사를 대비하며 검토하고자 한다. I. 여요 전쟁 시기와 신성로마제국의 전쟁 시기의 유사성 먼저 여요전쟁 시기는 1차 전쟁이 993, 2차 전쟁이 1010년, 3차 전쟁이 1018년 시작했다. 이와 유사한 시기에 신성로마제국 역사에서도..
2022.09.09 -
고구려의 수나라에 대한 살수대첩의 살수는 패수인 라인강의 지류 Saar river이다
필자는 이미 라인강을 패수라 추정했다. 따라서 살수는 패수의 지류라고 밝혀진 바 라인강의 지류에서 찾아야 한다. 그동안 살수를 찾지 못해 여러 가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신성로마제국에서 요나라 역사를 찾던 중, 고려와 거란의 전쟁 기록과 신성로마제국과 슬라브족의 전쟁 기록을 보면서 우연히 Saar river 를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 후, 결국 살수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신라와 고구려의 살수에서의 전쟁 기록, 신라의 태백산에서의 제사 내용, 그리고 스위스에서 발견한 신라하의 존재 등의 연관관계를 살펴 본바, 이를 거의 확신하게 되어 이글을 쓰게 되었다. 우선 살수 관련 자료를 살펴 보면 아래와 같다. 블로거 방랑자 님이 잘 정리하여 놓아 이를 인용한다. 필자의 네이버 블..
2022.09.05 -
후백제의 견훤은 불가리아 1제국의 Simeon왕인가?
필자는 비잔틴제국을 백제라 판단했다. 서로마제국도 일부는 백제로 판단했다. 단 비잔틴제국은 백제 멸망 후에는 신라로 판단했다. 통일신라의 세력은 유럽 역사에서 무슬림으로 나타난다. 스페인지역의 무슬림화는 통일 신라가 고구려의 남부인 서고트왕국의 점령으로 판단된다. 위키피디아는 750년경 우마이야왕조가 아바스왕조에게 쫓겨 나서 스페인지역으로 갔다고 했으나, 필자는 이런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한다. 망명 일부 세력이 다른 지역을 점령할 힘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약간의 연대 차이도 난다. 우마이야 왕조가 막을 내린 것은 750년경이고, 스페인의 서고트왕국은 8세기 초까지 존재했다. 고구려 멸망 후 이 지역까지 신라가 점령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고구려도 부흥운동이 있었으니까. 발해고를 보면 ..
2022.08.24 -
볼가 불가리아는 고구려와 발해, 고려의 영역인가?
볼가강 유역에 있었던 Volga Bulgaria(7c-1240)는 자료에 따라 조그만 지역으로 묘사하는 지도도 있고, 카스피해 위에서 극지방까지 지역을 차지한 지도도 있다. (아래 지도 참조) 추후에 살펴 보는 Kievan Rus는 흑해위에서 극지방까지 이르는 지역을 차지 했는데, 그 오른쪽에 있는 볼가 불가리아인 것이다. 볼가 불가리아는 Old Great Bulgaria가 망한 후 Kubrat의 둘째아들인 Kotrag가 북쪽으로 이동해 볼가강과 카마강이 만나는 지점에 볼가 불가리아를 세웠다 한다. (아래 지도 참조) 때문에 초기에는 볼가강 유역의 지역에서 출발하여 점차가 그 영역이 커졌울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미 'Old Great Bulgaria는 고구려 말기의 역사의 일부이다'라는 글에서 살펴 보..
2022.08.21 -
흑해 위 Old Great Bulgaria(632-668)는 고구려 말기 역사의 일부이다
흑해위 지역에는 AD 632년부터 불가리아가 나타난다. Old Grea Bulgaria, Kara Bulgar, Volga Bulgaria 등이 그것이다. 서양사에서는 Huns, 즉 훈족과 Bulgars, 즉 부여족을 아시아에서 온 부족으로 판단한다. 필자는 Bulgar 부족을 부여족으로 판단한다. 부여족은 가는 곳마다 부류 등 '불' 이름을 붙이는 것을 좋아했다. 볼가강 이름도 Bulgars라는 부여족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그리고 Vulga latin이란 언어를 쓰는 로마제국도 결국 부여족의 일부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불가- 이름이 붙는 지역은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한다. 부여족은 백제와 고구려로 이어지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다. 그리고 백제가 고구려보다 더 부여의 전통을 더 계승했다..
2022.08.21 -
흑해 위 Magyar족은 흑수말갈인가?
I. 흑해 위의 Magyar족 지난 글, 견훤과 시메온 왕과의 비교에서 살펴 보았듯이, 당시 흑해 위에 있던 마자르족은 비잔틴제국과의 연합으로 불가리아를 공격했다. 아래 지도에서 오른쪽 상부에 MAGYARS가 나타난 것이 보인다. 즉 890년에 드니에스터 강유역에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불가리아의 시메온왕은 당시 마지르족의 우측에 있었던 Pechnegs와 연합하여 흑해위에 마자르족에 반격 공격하여 이들이 지금의 항가리지역, 즉 판노니아지역으로 이주하게 만들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마자르족의 흑해위의 존재 여부에 대해 자료를 다시 보고자 한다. Bulgaria and Magyar at 890 AD (source : Wikipedia) 아래 자료 Magyar tribes에서 보듯이, 그들은 원래 기원전 5세기 ..
2022.08.21 -
고구려 장수왕이 유연과 함께 도모한 지두우는 어디인가?(수정본)
그동안 필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의 역사의 무대가 유럽과 페르시아에 걸쳐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는 유연과 함께 지두우를 도모한 고구려 장수왕 시기의 역사를 통해 다시 한번 필자의 상기 주장을 검증하고자 한다. 이러한 검증을 위해 우선 지두우에 관한 사료를 살펴 보고, 이어 유연에 관한 자료를 살펴 보고자 한다. 그리고 타타르로 판단되는 지두우와 아바르족으로 판단되는 유연의 위치를 검토하며, 장수왕 시절의 고구려의 영토를 추정해 보고자 한다. 1. 지두우 1) 중국의 북적 중 하나. 아래 자료에 의하면 5세기 당시 지두우는 중국의 16개 북쪽 이민족의 하나라는 것이다. 필자는 중국이 프랑스의 론강 서부에 있다고 추정했다. 따라서 프랑스에 있던 중국의 위치에서 북쪽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
2022.06.26 -
호랑이와 한민족 역사
올해가 호랑이 해라 한다. 우리 나라는 예전부터 호랑이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단군 신화부터 호랑이와 곰이 등장하고 마늘이 언급된다. 고구려에 관한 고구리사 초략을 보면 고국원제가 369년 치양싸움에서 백제 근구수왕(태자시절)에게 패하여 지쳐 있을 때 또한 호랑이 피해를 보았다 했다. (아래 자료 참조) 아래 자료에서 보면 치양은 대암산과 가깝고, 북한산과 가까우며, 수곡성과도 가깝다. 또한 백제는 해로로 군사를 보충하고 치양을 쳤으니, 치양은 바다와도 가깝다는 것이다. 이후 전쟁에서 승리한 근초고왕은 한수 이남에서 군사를 사열(369)하고, 패하에서 고구려군에 승리하고 (371), 평양성 싸움에서 고국원제가 죽게 만들고(371), 그리고 한산으로 수도를 옮겼다(371) 한다. 그러나 375년 수곡성을 ..
2022.03.12 -
연나부 부여는 프랑스에 있었던 Kingdom of the Burgundians이다
성현식님의 글 중에 '위대한 역사 고조선, 신화로 꾸민 ‘부여’의 진실'이란 글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고구려, 펌글 참조)에서 7개 부여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그중에서 우리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연나부 부여(椽那部 夫餘)가 언급된다. "(5) 연나부부여(椽那部 夫餘) : 대소 왕의 6촌 동생이 옛 도읍의 백성 만여 명을 데리고 투항하자 고구리는 그를 왕(제후)으로 봉하고 연나부(椽那部)에 편입시켰다. 뒤에 자립해 개원 서북으로부터 옮겨가니 연(燕)나라 땅과 가까웠다고 한다. 문자명제 때인 494년 나라를 들어 바치고는 아예 고구리의 연나부에 편입되는데, 이를 연나부부여(椽那部夫餘)라 한다." (자료 : 성현식, '위대한 역사 고조선, 신화로 꾸민 부여의 진실', 스카이데일리, 필자의 네이버..
2021.12.10 -
순장, 편두 관습을 통해 본 한민족의 활동 지역(updated)
한민족은 순장(殉,따라 죽을 순, 葬, 장사 장)(Retainer Sacrifice)이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즉 누가 죽으면 따라 죽어 묻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왕이 죽으면 그 신하가,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으면 그 노비가 함께 묻히는 것을 말한다. 고구려사에서 동천왕(東川王) (재위 : 227-248) 사후 이러한 풍습을 언급한 기록이 있다. "가을 9월에 왕이 죽었다. 시원(柴原)에 장사 지내고 왕호를 동천왕이라고 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그 은덕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가까운 신하 중에 자살하여 따라 죽으려고 하는 자가 많았으나, 새 임금이 예가 아니라고 여기고 그것을 금하였다. 장례일이 되어 묘에 와서 스스로 죽는 자가 매우 많았다. 나라 사람들이 땔나무를 베..
2021.12.06 -
진(鎭/津), 포(浦), 령(嶺)의 지명을 통해 본 한반도 한국사와 중공지역 한국사 주장들의 의문점
오늘은 한민족사에 나오는 수군(水軍) 기지 즉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닷가에 접한 곳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보통 수군(Marine) 기지에 대해서는 진(鎭, 진압할 진, 또는 津, 나루 진)을 끝으로 하는 지명이름이 등장한다. 바다에 접한 대표적인 지명이 통일신라 장보고 장군이 설립한 청해진(凊海鎭)이다. 주위 해적들이 신라인을 잡아서 노예로 파는 것을 보고, 당나라에서 돌아와 청해진을 설립하고 무역로 해상을 지배했다고 한다. 즉 당과, 신라, 왜 등의 무역 해상로를 지켰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반도 한민족사를 주장하는 제도권 사학자들은 청해진이 전라남도 완도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해’와는 연관성이 없다. 재야사학자 고 이중재씨는 중공의 내륙 북서부에 있는 청해성(靑海省)의 명칭을 고려하여, 중공..
2021.11.30 -
산, 골의 지명을 통한 한반도 한국사와 중공지역 한국사 주장들의 의문점
한민족은 수도를 정할 때, 배산임수(背山 臨水)를 지리적 요건으로 삼았다. 즉 뒤로는 산을 그리고 앞으로 강을 두는 지형을 선호했다. 비록 그것이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한민족은 산과 강을 많이 접한 지역에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라는 동요는 그래서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언덕 (Hill)에 성을 쌓고 성곽내에서 사는 삶을 고구려인들은 선호했다. 군사적으로 방어 하기 쉬운 지형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민족에게 산(山, Mountain)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민족을 대표하는 영산(靈山, 성스러운 산)으로는 백두산, 태백산 등이 있다. 현재의 한반도에는 북쪽 국경에 있는 백두산, 강원도의 태백산, 설악산,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에 있는 지리산, ..
2021.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