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신라(백제, 고구려, 발해)의 유라시아에 걸친 활동의 가능성
필자는 그동안 신라의 동쪽 끝이 어디인가에 대해 궁금해 왔다. 서북아프리카 끝에서 '신라언어', '신라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보면 통일신라가 대서양까지 진출한 것 같은데(아래 자료 참조), 그러면 동쪽은 어디이냐에 대해 고심해 왔다. 동쪽의 한반도에 신라의 잔재가 있는 것을 보면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그러면 신라가 대서양에서 대동양까지 있었다면, 과연 그 넓은 지역을 어떻게 관리 했을까 의심이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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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지역에서의 신라, 백제의 활동을 추정하는 필자는, 신라의 파사이사금 시기(AD 80-112)에 신라가 페르시아에 이르지 않았나 추정한다. (아래 자료 참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토함산은 화산이다. 그래서 폼페이의 베수비우스 화산과 비교 연구했다. 신라와 금관가야의 위치와 관련된 김수로왕과 석탈해는 모두 백인이었다 한다. 필자는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금관가야가 카르타고가 아닌가 추정했다. 즉 계림지역인 신라는 이태리 반도지역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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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첨해이사금 시기(재위: 247- 261), 처음으로 동해가 언급된다. 사산왕조 페르시아지역인 신라에서 동해라 한다면, 대양이라면 대동양 즉 태평양이 되는 것이다. 위키피디아 자료에서는 과거에는 인더스강을 바다로 여겼다는 언급이 있다. 그러나 신라가 강과 바다를 혼동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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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신라, 백제 시기에, 탐라국은 3달을 걸려 가야 한다고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로마시대에도 이집트를 지나는 운하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필자는 탐라국을 인도남부 스리랑카 지역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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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 of the Sanskrit word drāviḍa is Tamil.
.........
Dravidian speakers form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of South India and are natively found in India, Pakistan, Afghanistan,[2] Bangladesh, the Maldives, Nepal,[3] Bhutan[4] and Sri Lanka.[5]
................
According to a large craniometric study (Raghavan and Bulbeck et al. 2013) the native populations of India and Sri Lanka have distinct craniometric and anthropologic ancestry. Both southern and northern groups are most similar to each other also show deep relations to populations of Europe, the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source : Dravidian peoples,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Tamil country)
로마제국시에 인도서남부와 무역교류가 많았다는 기록을 보면, 탐라국을 속지로 둔 백제, 신라는 넓은 해양세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자료 참조)
"The Roman emperor Julian received an embassy from a Pandya about 361.
A Roman trading centre was located on the Pandya coast at the mouth of the Vaigai river, southeast of Madurai.
Pandyas also had trade contacts with Ptolemaic Egypt and, through Egypt, with Rome by the 1st century, and with China by the 3rd century. The 1st-century Greek historian Nicolaus of Damascus met, at Antioch, the ambassador sent by a king from India "named Pandion or, according to others, Porus" to Caesar Augustus around 13 CE (Strabo XV.4 and 73)."[47][4
(source: Pandya dynasty, Wikipedia,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Tamil country)
신라 첨해이사금 시기의 동해가 대양일 것이라는 추정은 큰 물고기 3마리를 잡았다는 삼국사기 기록때문이다. 대양의 고래 정도가 아닐까 추정된다. 일본은 지금도 부근에서 고래잡이를 한다. 그리고 이은 미추이사금 시기, 263년에 '동쪽으로 순행하여 바다를 보다'라는 삼국사기 기록이 있다. 이는 해양을 따라 배를 타고 항해하여 갔다기보다는, 육로로 순행하여 동쪽의 바다를 보았다는 기록으로 해석된다. 지금의 태평양에 도달한 느낌을 준다. 아래 지도는 이러한 가능성을 말해 준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육로와 해양 실크로드 (자료 : 위키피디아)
상기 지도에서 China로 표시된 지역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흔히 역사학계에서 돌궐이라 추정하는 Gokturk가 고구려가 아닌가 추정했다. 로마제국은 백제가 그 일부이며, 비잔틴제국은 백제라고 추정한다. (아래 자료 참조)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나오는 성이름은 유럽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유럽의 고트족은 편두, 순장 등 여러가지 문화상 특징으로 고구려로 추정된다. 고트족의 Alaric I왕은 광개토태왕으로 추정된다. 서고트왕국이 이베리아반도에 있었으며, 동고트왕국이 이태리 반도를 점령한 것은 장수왕, 문자왕이 이 지역 신라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동서로 천리에 걸쳐 있는 백두산 산맥은 알프스산맥으로 추정되며, 푸른 거위 머리 색깔을 띤 압록수, 즉 요수는 프랑스의 론강으로 추정된다. 발해시기에는 이 지역에 압록부를 두었는데, 주위가 압록생갈을 하고 있어 그렇게 명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론강과 그 우측 지역은 광물질로 인하여 물이 푸른 색깔을 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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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또한 발해도 유라시아에 걸쳐 활동했다고 추정한다. (아래 자료 참조). 중앙아시아의 카자르칸국은 발해로 추정되며, 러시아의 볼가 볼가리아 지역도 발해 지역으로 추정된다. 흑수말갈과 연관된 지역은 모스크바 지역으로 추정된다. 신당서에 보면, 발해는 멀리 동쪽바다에까지 이르렀다 했다. 동아시아의 유적은 발해가 유라시아 동쪽 끝까지 활동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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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필자는 거의 확신을 가지고 중국은 프랑스지역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아래 자료 참조) 북위의 효문제가 토욕혼의 왕에게 '서해개국공'이라는 직위를 주었다. 그리고 안록산의 난 당시에 당나라는 북해절도사, 북해태수를 임명했다. 북해위의 회흘의 도움을 받고서 겨우 안사의 난을 진압할 수 있었다. 따라서 중국은 서해가 있고 북해에 접한 프랑스지역에 있었다 판단한다.
따라서 프랑스 론강, 즉 요수의 동쪽인 요동에 있는 동이는 론강의 우측에 있으며, 요서에 2개현을 두었다는 하는 백제는 론강 서쪽의 부르군디언지역에 일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어, 동성왕 시기 북위와 전쟁을 하였다.
현재 중공지역에 하나라 문명의 흔적이 없는 것은 중공지역이 중국사의 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하나라가 북아프리카, 그리스지역에 있었다 추정했다.
또한 거란의 별종인 황두실위의 언급에서 노랑머리를 의미하는 황두가 실위가 북유럽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아래 자료 참조). 필자는 그래서 돌궐은 북유럽에 있었다 추정한다. (아래 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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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국뽕을 주장하지 않는다. 근거 없는 이야기는 삼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신라가 활동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동안 고심해 왔는데, 최근에 우연히 한 자료를 보고, 신라의 지구촌 경영을 실감하게 되어 펜을 들었다.
II. 신라의 동쪽 끝에 장인국이 있다
우연히 청화수님의 유튜브(아래 주소)를 보다가 신라의 동쪽 끝에 장인국이 있었다는 신당서 기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화수님은 여러 사료기록을 언급하며, 역사의 미궁 같은 사건을 논리로 추정하곤 하는 것이 좋아 자주 본다. 그러나 한반도의 사관을 벗어나지 못해 그 논리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쉽다.
https://youtu.be/Nt8CAHo-oLM?si=ELZ6FVeb-3ShwDOL
신라 동쪽 거인들의 나라 정체는 이거다!
신라 동쪽에 인간의 몇 배가 넘는 키의 거인 나라가 있었다는 역사 기록은 실제로 있다. 그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youtu.be
여하튼 장인국에 대한 신당서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新羅, 弁韓苗裔也. 居漢樂浪地, 橫千里, 縱三千里, 東拒長人, 東南日本, 西百濟, 南瀕海, 北高麗. (···) 長人者, 人類長三丈, 鋸牙鉤爪, 黑毛覆身, 不火食, 噬禽獸, 或搏人以食, 得婦人, 以治衣服. 其國連山數十里, 有峽, 固以鐵闔, 號關門, 新羅常屯弩士數千守之.
신라는 변한의 후예이다.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니, 횡으로는 1천리, 종으로는 3천리이다. 동쪽으로는 장인국, 동남쪽으로는 일본국, 서쪽으로는 백제국, 남쪽으로는 바다, 북쪽으로는 고려와 맞닿아 있다. (···) 장인은 그 키가 거의 세길이나 되고, 톱니 이빨에 갈퀴 손톱에다 검은 털이 온 몸을 덮고 있다. 요리할때 불을 사용하지 않으며, 새나 짐승을 날로 물어뜯으며, 간혹 사람을 잡아 먹기도 한다. 부녀자를 얻으면 의복이나 만들게 한다. 그 나라의 산은 수십리씩 연결되어 있는데, 입구의 골짜기에 튼튼한 쇠문짝을 만들어 달고 관문(關門)이라 한다. 신라는 이 곳에 항상 궁사 수천명을 주둔시켜 지킨다.
신당서 권220 열전 제145 신라전(원문), 번역1, 번역 2
(자료 : 장인국(거인국), 나무위키,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여인국/장인국)
아래 삼국사기 기록도 전해지는 소문이라 하며 언급하였다.
『신당서』에도 “동쪽으로 장인(長人)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장인이라는 것은 키가 세 길이며, 톱날 이빨과 갈구리 손톱으로 사람을 잡아 먹으므로 신라에서는 항상 활 쏘는 군사 수천 명을 주둔시켜 수비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는 모두 전해지는 소문이지 실제적인 기록은 아니다.
삼국사기 제34권 잡지 제3
(자료 : 장인국(거인국), 나무위키, 인용출처: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여인국/장인국)
상기 거인에 대한 신당서의 내용은 내려오는 이야기나 설화 등에 근거를 하였다 하여 믿을 것이 못된다 청화수님은 결론 내렸다. 그러나 필자는 그동안 여러 자료를 살펴 보니, 실제 장인국, 거인국이 있었을 가능성을 본다.
III. 장인(거인, 네필림, Giants, Bigfoot, ) 설의 정체
거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수메르의 점토판에서 신과 인간의 결합의 산물로 언급되며, 그래서 신이 노해 홍수로 벌했다 한다. 성경에서도 네필림으로 언급되며, Giant라는 자료로 위키피디아 자료를 보면, 세계 각지에 이에 관련 설화가 존재한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에 관한 연구가 주가 아니므로, 태초의 이야기는 접어 두고, 신라의 시기에 관한 장인국이 문제의 핵심이므로, 그 이후 역사시기의 자료를 보고자 한다. 과거에 반신반인이었는지 몰라도, 당나라, 신라 시기에는 몸에 털이 많이 있는 식인까지 하는 거인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최근의 시기를 근거로 하는 자료를 모아 보니, 다음의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여인국/장인국에 실린 유튜브 자료 참조)
1) 칸다하르(아프카니스탄 전쟁중)에서 미군이 거인 사살한 이야기, 북아메리카 대륙의 거인(Bigfoot)뼈 발견 신문보도(San Diego, Wisconsin), 일본제국의 거인 동행 행진 이야기
2) 멕시코의 거인뼈 200개 발견이야기(아즈텍문명 이전 매장지), 북아메리카 네바다주 인디언과 식인 거인종족(=시테카)과의 전쟁 이야기.
3) 1500년경 스페인 항해선원들이 아메리카 해안 탐험중 거인 목격담
(거인족의 역사를 추려 놓은 유튜브 자료)
IV. 장인국이 가능한 위치
이러한 거인에 관한 이야기들을 종합할 때, 장인국이 있는 신라의 동쪽 끝이 가능한 지역은 다음의 3지역으로 말할 수 있다.
1. 아프카니스탄
이는 다음의 3가지 이유로 그 가능성을 본다.
1) 아프칸전쟁에서 미군이 직접 거인과 마주하여, 사살했다는 실존적 이야기이다. 21세기에도 털이 많은 거인이 존재했다는 이야기이므로 그 의미가 크다. 21세기에 거인이 있었으니, 신라시대에는 당연히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프카니스탄이 장인국이 있는 신라의 동쪽 끝이 될 수 있다.
2) 상기 미군이 거인과 마주친 지역은 칸다하르 산간지역이라 했다. 따라서 신라인이 거인종족을 경계하는 장소와 같은 조건이다.
3) 아프카니스탄은 페르시아 우측에 있다. 필자는 페르시아지역에 신라가 있었다 추정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가능한 후보이다. 또한 이란의 과거 왕인 거인 미이라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한반도에 남아 있는 신라의 잔재를 설명할 수가 없다. 즉 신라의 동쪽 끝은 적어도 한반도 동쪽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한 때, 한반도 경주의 고분군도 그 실체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 있다. 그러나 황남대총의 고분에서 시신이 나왔다는 자료를 보고, 이를 부인하기 힘들다 판단했다. 유물들이야 옮겨 놓을 수 있지만, 시신은 이동시키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즉 한반도에는 일부 신라인들이 거주했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언제부터 신라인들이 이곳에 있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2. 북아메리카 록키산맥지역
북아메리카의 록키산맥을 신라의 동쪽끝으로 보는 연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1) 서태평양에 접한 부상국의 존재
부상국의 존재는 이미 재야사학자들이 많이 언급하는 곳이다. 혹자는 캘리포니아 북쪽의 Fusang이 부상국 지역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고구려 직위인 '대대로'의 직분을 가진 자가 있었다 한다. 통일신라 시대의 '해동고승전'에서 부상국을 방문한 고승들 이야기가 나온다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이 거인설화가 많은 로키산맥에 가까이 있어서 후보지의 하나가 된다.
2) 그랜드캐년의 Kincaid cave의 불상 : 1909년 발견
또 하나의 근거는 이 지역에서 가까운 그랜드캐년의 킨케이드 동굴에서 불상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경주의 석굴암의 불상과 유사하다. 발견연대도 유사하다.
이러한 석굴속의 부처상이 돈황에도 있다. 돈황의 막고굴에서 숨겨 있던 방(장경동)이 1908년 발견되어 고문서가 3만점이 나왔는데, 이중 일부를 빼돌린 프랑스 탐험가 펠리오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입수했다 한다. 당나라 시기에 석굴이 225개나 만들어져 가장 많이 만들어졌다 한다. 신라의 석불사는 돈황에 지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랜드캐년 킨케이드 동굴속의 불상 모습
그랜드캐년 지역에서의 많은 불교 불상이나 Watch Tower의 존재는 신라나 백제 또는 고구려의 진출 가능성을 말해 준다. 이 지역은 거인유골이 많이 발견되는 록키산맥지역과 가깝다. 따라서 신라의 동쪽 끝지역이 장인국이 있는 록키산맥이지 않나 한다.
그랜드캐년 속의 거대 불상 사진
Desert View Watch Tower in Grand Canyon
아래 비디오는 킨케이드 동굴에서 발견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거인의 크기를 가진 미이라가 발견되었다는 언급도 한다. 필자는 처음 접하는 거인 미이라 이야기이다. 불상을 보면, 그리고 5만명의 사람이 살 수 있는 동굴이라면, 피신하여 온 것 같은 뉴앙스를 주는데, 또 거인 미이라가 발견되었다 하니, 숨어 사는 거인족 이야기인지, 백제인들이 피난와서 사는 곳이었는지, 판단이 안선다. 또 이집트 유사 유물, 상형문자, 상수도 시설, 도자기, 악기, 동양적인 대형 석상 등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상당히 오래된 문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국은 이러한 곳을 오픈해서 역사의 진실을 파악하는데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은폐하면 할 수록 음모론만 증폭시킬 뿐이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는 이곳이 신라의 동쪽 끝일 수 있다는 가정을 딋받침하는 할 수 있는 자료의 하나라고 판단하고 다음으로 넘어 가고자 한다. 자세한 연구는 후일을 생각해 본다.
https://youtu.be/fy0L5p3i6MA?si=hYmT2dqNUsnsI-zX
그랜드 캐니언 땅 속에서 발견된 엄청난 장소! │ 미스터리 고대 문명 (비밀의 문)
3) 유난히 많은 거인의 유골 발견 이야기
록키산맥지역에는 유난히 거인 이야기가 많다. Bigfoot라는 말로 언급되는 거인관련 이야기는 매우 많다. 일부는 지어낸 이야기라는 설도 있으나, 뼈가 발견되었다는 20세기 신문보도와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하려는 스미소니언재단의 행동을 볼 때, 진실로 거인들의 유해가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여인국/장인국에 관련 유튜브자료를 모아 놓았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따라서 신라의 동쪽 끝 산맥에 있는 장인국이 이곳에 있을 확율이 매우 높으며, 이 또한 전후의 다른 조건을 고려하여도 그렇다.
- Wisconsin의 거인 유골 18점 발굴 이야기
- San Diego에서 거인 뼈 발견했다는 신문보도
-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거인 유골 파괴 등 은폐 시도
4) 네바다주 인디언과 식인 거인종족과의 전쟁이야기
록키산맥 주위의 거인관련 이야기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네바다주의 Native American들이 붉은 머리의 식인 거인종족인 시타케들과 맹렬히 싸웠다는 이야기이다. (위에 옮겨 놓은 거인족의 역사 유튜브 내용 참조). 매우 실제적인 정황을 말하여 준다. 이러한 매우 사실적인 이야기가 네바다주에서 있었다. 그랜드캐년이 있는 네바다주이다. 따라서 신라의 동쪽끝에 있는 장인국이 이 주위지역일 수 있다.
5) 편두지역 : 북아메리카 서북쪽
필자는 편두 관습이 있는 지역이 한민족과 관련있는 지역이라 했다. 그런데 북아메리카에서 편두의 관습이 나타나는 지역이 북아메리카 서북부와 북아메리카 동남부이다. 따라서 이들지역에 한민족의 역사가 있을 수 있으며, 위의 부상국의 존재, 불상들의 존재와 맞물려, 신라가 이지역에 있지 않았나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3. 멕시코 지역
또 하나의 후보지역으로 멕시코지역을 들 수 있다. 이 지역은 을멕문명, 마야문명 등으로 고조선시대부터 관련 있는 지역으로 판단된다. 멕시코지역에서도 거인 뼈가 200개가 발견되었다 한다. 아즈텍문명 이전 문명의 매장지에서 발견되었다 한다. 한편 메소아메리카지역의 신화에 의하면, 태양의 신들이 '퀴나메친'이라는 거인종족을 시켜 대도시를 건설했다 한다. (본블로그, 카테고리, 여인국/장인국, 유튜브, 이디오피아의 거인도시, 자료 참조)
멕시코지역은 다음의 3가지 이유로 이 지역이 장인국의 후보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1) 멕시코의 을멕문명은 상나라의 문명이다
필자는 '상나라의 동방행은 어디까지인가?'라는 글에서 을멕문명이 고조선의 제후국인 상나라의 활동지역이 아닌가 했다. (아래 자료 참조) 따라서 이들지역에 신라도 진출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2) 신라 토우 중 개미핡기(멕시코지역) 존재
특히 신라의 토우 중에 멕시코에 사는 개미핡기 동물의 모습이 있었다 한다. 이는 명백히 신라가 이들지역에 진출했다는 증거이다. 아래 재야사학자 우화등선님의 블로그에서는 아묵리가(아메리카)대륙이 신라지역이라 주장하고 있다.
개미핡기 토우 모습
아묵리가대륙은 신라때 扶桑대륙이었다. 원래 유구는 멕시코 유카탄반도가 맞을 겁니다.
아묵리가대륙은 신라때 부상대륙이었다. [자료의 근거] 1421. 중국,세계를 발견하다 개빈 멘지스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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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편두지역 : 멕시코 마야문명지역
또 하나 멕시코지역이 유력한 지역이라는 것은 마야문명지역이 편두의 관습지역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티스토리 블로그의 '추억의 놀이문화와 씨름'이라는 글에서 마야인들이 편두를 만들기 위해 어린애들에게 어떤 도구를 썼는지 자료를 제시했다.
https://paulcgpark.tistory.com/72
편두 관습지역이, 북아메리카의 서북부와 동남부에 있는 것외에도, 태평양 폴리네시아지역에도 있고 카리브해의 하이티섬에도 있는 것을 보면, 과거 고조선이후 한민족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통해 아메리카대륙에 진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4) 1500년경 스페인 해양 선원들이 아메리카 해안에서 살아 있는 거인 목격 이야기
이 자료는 유튜브자료에서 얻었지만,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당서의 장인국 이야기의 출처와 관련한 여러 자료 중 하나에서, 당나라의 배가 풍랑에 휩쓸려 도착한 어느 해안가에 도달하니 거인국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인 여자 50명이 거인들의 옷을 만들고 있었다 한다. 남자들은 모두 거인족이 식인했다 한다. 그래서 모두 같이 도망쳤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거인국이 있는 장소가 해안가라는 것이다. 위의 신라의 동쪽 끝에 있는 장인국은 높은 산지역이라 했으므로, 멕시코지역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당나라 사람들이 마주한 이 거인지역은 해안가에 있으므로, 스페인 해양선원들이 거인을 목격한 지역이 이 지역일 수 있다. 비록 아메리카 대룩 해안을 탐험하던 중 보았다니, 어느 지역인지 알 수 없으나, 필자의 판단으로는 대서양의 멕시코지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1500년경이면, 콜럼버스가 1492년 대서양을 건너온 후 가까운 시기이다. 그러므로 스페인 항해선원들은 컬럼버스의 항로를 택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또한 이는 당인들의 거인족 이야기도 대서양을 건너 멕시코쪽 해안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당나라가 프랑스지역이라 추정했다. 당인은 백인이다라는 글도 있다. 당인이 풍랑을 만나 어딘지 모르게 도달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컬럼버스가 풍랑을 만나, 인도로 간다고 하며, 아메리카쪽에 도달한 이야기와 비슷하다.
한편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멕시코는 1824년까지만 해도 북아메리카의 서부지역을 점하고 있었으므로, 당시 신라시기에는 멕시코지역과 북아메리카 서부지역이 동일 문명권이었는지도 모른다. 즉 위 당나라의 당인들 이야기나 신라의 장인국 이야기가 동일 문명권에서 일어난 거인족 사건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신라는 태평양쪽에서, 당나라는 대서양쪽에서 접근한 것이 다르다 할 것이다.
Mexico in 1824 with the boundary line with the U.S. from the 1818 Adams-Onís Treaty that Spain negotiated with the U.S. (source : Wikipedia)
(By Giggette - This image was created with Adobe Photoshop.,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6142344)
5) 중남미에 있는 신라 지명
아래 유튜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남미 지역에 '신라'지명이 많이 있는 것을 고려하면, 신라의 동쪽 끝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북미, 멕시코 등 북아메리카에 중점을 두었는데, 남미에서도 그런 지명이 있는 것을 보면, 잉카문명 이전 신라시대부터 이 지역에 진출했다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https://youtu.be/2lQNVosIoGg?si=6RAvuKQxKkhuyqpj
V. 신라의 동해는 어디인가?
1. 한반도 신라 사관의 의문
이제까지의 거인설화에 의한 신라의 동쪽 끝 추정은 이정도로 하고, 실제 역사에서의 가능성을 살펴 보자.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한반도 경주 무덤, 황남대총애서 남자 유골이 발굴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신라가 이지역에 실존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즉 신라가 대서양에서 대동양까지 진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공이나 중앙아시아지역에서 보다 많은 신라의 유물이 발견될 수 있다는 추정이지만, 현재는 중공측의 역사 왜곡으로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 고구려 벽화가 존재하고, 백제의 유물이 발견되는 상황에서, 백제, 고구려, 신라가 동아시아까지 진출한 것은 무리한 결론이 아니다. 필자는 Gokturk가 돌궐이 아닌 고구려라 추정했다. 그리고 당나라는 북해와 서해를 가진 나라로서 프랑스지역에 있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필자는 신라의 본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경주에 신라 시대의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일제 시대의 모조품일 수 있다. 신라 당시의 유적이 이렇게 존재한다면, 왜 왕궁은 남아 있지 않은지 의문이다. 필자는 토함산이 화산이라고 최근의 글, '토함산과 폼페이'에서 주장했다. 현재 경주의 토함산이 화산인지 의문스럽다.
석굴암도 일제시대 1907년에 발견 되었는데, 그 스토리가 애매하다. 한 농부가 발견하였다는데, 그 정도 유물이 나왔으면, 대단한 사건으로 대서특필 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소문도 없다. 그리고 이 당시에 (1909년) 그랜드캐년에서 킨케이드동굴에서 석불이 발견되었다는 것도 수상하다. 왜 동일한 시기에 유사한 유물이 발견되었을까?
또한 서울에 여러 개 궁이 있는 것도 의문이다. 보통 다른 지역으로 수도를 이동하면 궁을 짓는다. 그런데 서울에만 경복궁, 창경궁, 경희궁 등 여러 개가 겹쳐 있다. 한국을 방문한 영국 여왕이나 덴마크여왕이 왜 한 도시에 여러 궁이 있냐고 물었다 하는데, 이는 역사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표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 모두가 일제의 역사 왜곡 흔적일 수도 있다. 일제는 한반도내로 우리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이러한 왕궁들을, 석굴암을 건축했는지 모른다. 그에 대한 비사 자료는 아마 일본의 정창원에 자고 있을 지 모른다. 최근에 안 소식이지만, 일본에서 발견된 거대 고분(오사카의 다이센고분)이 공개되지도 않고 탐사되지도 않는다 한다.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카테고리, 백제, 오사카 다이센고분, 유튜브자료 참조). 세계 3대 고분이 될 정도로 거대한 고분이라는데, 홍수로 일부 유물이 표촐되어 미국 스미소니언박불관에 팔렸는데, 백제 유물과 비슷하다는 이야기이다.
신당서에서는 발해의 영역이 멀리 동쪽 바다까지 이르렀다 했다. 필자는 발해가 유럽에서 카자크칸국을 거쳐 동아시아까지 있지 않았나 추정했다. 남북국의 남국인 신라가 그랬으니, 북국인 발해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상기 북아메리카 서태평양지역의 흔적으로 볼 때, 신라는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까지 진출했을 가능성 있다. 부상국에 대대로 직분이 있었다 하는데, 고구려 진출지역일 수 있으며, 이를 통일신라가 흡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해동고승전의 부상국 방문 이야기와 불상 등의 존재는 이를 증명한다. 어쩌면 통일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의 불국사, 석불사 건조(750년경)가 북아메리카에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잠자고 있는 유물들 속에 이러한 유물이 있을 지도 모른다. 최근에 본 유튜브 자료에서 19세기 신대륙의 개척시대에 서부이민들은 많은 고분들을 파헤쳤는데, 그 속에서 거인들의 유골도 나왔다 한다. 스페인이 중남미를 정복하며, 그 문화를 파괴했다고 비난하는데, 북아메리카의 역사 파괴도 이와 별다르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 유물들을 잘 추스렸으면, 지금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잠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아시아의 역사자료는 중공과 일본이 감추고 있고, 태평양 건너 자료는 스미소니언재단이 감추고 있으니, 한민족의 역사는 앞으로도 많은 세월이 흘러야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조선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끼가 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2. 삼국사기 기록에서의 신라의 동해와 서해
신라의 동해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자.
1) 첨해이사금 (247-261)
십년 춘삼월 (256) : 동해에서 큰 물고기 세마리가 나오다 :
큰 물고기는 고래를 말하지 않을까? 이는 동해가 큰 바다 즉 대양이라는 의미이다. 이전의 파사이사금(재위 AD 80-112)이 페르시아에 영토를 가졌다 하면, 거기서 동해는 2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인도의 동쪽 벵골만이고 다른 하나는 동지나해나 남지나해인 태평양이다. 이에 대해서는 또한 여러 차례의 긴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잠깐 보다 가능성이 큰 벵골만의 가능성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우선 필자는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신라라고 추정했다. 일단 여기서부터 출발해 보자. 사산왕조 페르시아 우측에는 쿠샨왕조가 있었다. 그런데 쿠샨왕조는 226년 사산왕조의 번속국이 되고 240년경에는 사산왕조에게 멸망한다.
" 226년 파르티아 대신에 사산왕조페르시아가 이란에서 발흥하여 아프가니스탄을 병합하자 쿠샨왕조는 그의 번속국(藩屬國)이 되었다. 240년경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에게 멸망했다.
(자료 : 쿠샨왕조, 두산백과)
그러나 240년경 쿠샨왕조를 멸망 시킨 사산왕조 페르시아(=신라)는 아직 벵골만에 도착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후를 더 보자.
이 시기 이후에 인도에는 굽타제국이 있다. 굽타제국은 260/290 - 543 기간 존속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시작 시기는 불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260년 경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럼 굽타왕국은 벵갈만까지 진출했는가가 관건이다.
굽타왕조의 영토 (375년, 보라색 경계영역) (자료 : 위키피디아)
위지도를 보면, 굽타왕조는 뱅갈만까지 진출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인도의 서쪽해안지역은 진출하지 못하고 동쪽해안지역을 주로 차지했다. 즉 쿠샨왕조를 흡수한 신라(=사산왕조 페르시아)가 굽타왕조를 병합했다면, 신라는 벵갈만에 진출한 것이다. 따라서 벵갈만이 동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굽타왕조를 신라가 차지한 것인가? 우선 굽타왕조가 시작한 시기가 260년경이다. 그런데 신라의 침해이사금이 동해에서 큰 물고기 3마리가 나오다 라는 기록은 256년이며, 아래 미추이사금이 261년부터 재위하는데, 263년 동쪽으로 순행하여 바다를 보다 하였다. 즉 신라에서 동해가 언급되는 시기가 굽타왕조의 초기 시기와 맞물리는 것이다. 따라서 신라가 굽타왕조를 세운 것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관점은 이 지역에서의 굽타왕조와 Huns(훈족)과의 전투기록이다. 아래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455년경, 에프탈의 Huns족과 싸워 물리쳤지만, 그 후유증으로 굽타왕조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455년경이면, 고구려 장수왕 시기이다. 에프탈의 훈족은 고구려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시기의 굽타왕조가 신라로 판단된다.
"He repelled a Huna attack around 455 CE, but the expense of the wars drained the empire's resources and contributed to its decline." (source : Gupta Empire, Wikipedia)
마지막으로 굽타왕조가 신라일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은 이들이 페르시아에서 온 아리안이라는 것과 카스트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이다. 필자는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신라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이들은 신분제도인 카스트제도, 즉 골품제를 유지하고 있다. 신라인, 신라언어 라는 표현을 가지고 있는 서부 모로코지역은 21세기 들어서도 골품제를 유지하고 있어 UN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만큼 신라지역은 골품제가 특징이다. 이태리반도에 진입한 진흥왕 시기의 롬바르디왕국도 카스트제도를 가졌었다. 즉 골품제를 가진 지역은 신라의 지역과 관련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2) 미추이사금 (261-284)
3년 춘2월 (263) : 동쪽으로 순행하여 바다를 보다
따라서 위의 미추이사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바다를 보다 라는 기록은, 육로로 이동하여 벵갈만 바다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육로로 갔다면, 그 과정의 땅이 신라의 영토가 확보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자기 땅이 아닌 지역을 가로지르는 위험을 왕이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굽타왕조가 신라가 아닌가 한다.
또한 이러한 표현은 한반도만의 신라가 아니라는 것도 의미한다고 본다. 한반도의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바다가 있는데, '동쪽으로 순행하여 바다를 보다' 라는 감격에 겨운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것이란 추정이다.
3) 실성이사금 (402-417)
15년 춘3월(416) : 동해 바닷가에서 뿔이 있는 큰 고기를 잡다
뿔이 있는 큰 고기는 상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동해는 대양의 의미이다. 그래서 삼국사기에 언급될 정도라 판단한다. 따라서 여기서도 동해는 벵갈만이라는 판단이다.
이 이후 동해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문무왕에 이르러서야 서해가 언급되고, 통일신라 효소왕에 이르러 동해가 언급된다.
4) 문무왕 (661-681)
13년추9월 (673) : 서해를 지키게 하다
여기서 서해는 대서양을 의미한다고 본다. 신라에서 서해가 처음 언급된 사례이다. 문무왕은 당과 22차례의 해전에서 모두 이겼다고 한다. 이 해전은 지중해에서 있었다고 추정된다. 신라의 문무왕으로 추정되는 우마이야 왕조의 무아위아는 지중해에서 많은 해전을 하며 승리한 위키피디아 기록을 보여 준다. 그리고 문무왕은 서북아프리카의 탁순국, 탁기탄 등 가야지역을 점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대서양인 서해로 진출한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5) 통일신라 효소왕(692-702)
8년 추7월 (699) : 동해물이 핏빛으로 변하다
추9월(699) : 동해에서 수전이 벌어지다
통일신라 초기라 할 수 있는 효소왕 시기에 동해에서 수전이 벌어져 핏빛으로 변하였다 기록된다. 상당히 격렬한 해전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이전의 기록을 보면 일본과의 해전이 아닐까 추정된다. 아래 자료를 보면, 698년 처음으로 일본이란 이름으로 사신이 온다. 일본은 백제가 망한 후에 생긴 나라이다. 이어 699년 살별이 나타났다 했다. (아래 자료 참조) 주로 외적이 나타났을 때 쓰는 표현이다. 그래서 상기 해전은 백제의 잔존세력인 일본과 해전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七年春三月 일본국 사신이 오다 (AD 698)
七年秋七月 도읍에 홍수가 일어나다
八年春二月 살별이 나타나다 (AD 699)
(자료: 효소왕, 삼국사기, 나무위키)
그러면 이 시기의 동해는 어디일까?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벵골만이 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동지나해나 남지나해의 태평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벵골만이 계속 동해로 남으면, 신라의 유물이 한반도에 있는 것이 설명이 안된다. 즉 미추왕 시기 이후 신라가 더 동진하여 한반도까지, 나아가 아메리카까지 진출한 것을 고려하면, 동해의 장소가 더 동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벵골만의 동쪽에서 일본과 해전을 벌일 수 있는 가능성을 아주 배제하기 어렵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섬 지역으로 이루어진 점이 이들이 왜의 세력이나 백제의 일부인 일본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재야사학가 한부울님은 자바섬지역이 Java -> Japan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이들지역의 세력과 인도지역의 세력이 충돌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도 동부지역의 세력이 동남아시아에까지 세력을 넓힌 역사가 있다. 그리고 같은 불교문화권, 이슬람문화권 등의 공존, 그리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등의 유적은 이들 지역이 백제의 문화권, 나아가 일본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2차대전시 이 지역을 일본이 침략한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벵골만에서 또는 남지나해에서 신라와 일본이 해전을 할 수 있었다 추정한다.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에서 즉 동지나해에서의 신라와 일본의 충돌 가능성이다. 이 지역 주위에도 백제의 담로지역 등이 있을 것으로 자료가 나타나는 바, 그렇게 추정된다. 더구나 현 일본 오사카의 다이센 고분이 세계 3대 고분의 하나가 될 정도로 크다 하는데, 일본정부는 접근을 못하게 하고, 발굴도 안하는 상황에서, 일부 유출된 유물이 백제의 양식이라 하니, 더욱 동해인 태평양에서 일본과 해전을 벌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상당히 큰 백제의 일부세력이 현 일본지역에 있었을 수 있다는 추정이다. 그러나 이는 중공지역에 신라가 있었다는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설득력이 있다. 필자는 아직 여기까지 연구가 되지 못해 후일의 숙제로 미룬다.
3. 신라와 일본의 관계
일본을 태평양에 있는 백제의 잔존세력으로 본다면, 신라와 일본의 관계 자료를 통해 신라의 동해, 태평양지역에서의 활동을 가늠할 수 있다.
七年春三月 일본국 사신이 오다 (AD 698)
七年秋七月 도읍에 홍수가 일어나다
八年春二月 살별이 나타나다 (AD 699)
八年 당에 방물을 바치다
八年秋七月 동해 물이 핏빛으로 변하다 (AD 699)
八年秋九月 동해에서 수전이 벌어지다 (AD 699)
(자료: 효소왕, 삼국사기, 나무위키)
효소왕 시기의 동해 해전이후를 보면 731년 성덕왕 시기에 일본군이 습격하였다고 기록된다. (아래 자료 참조)
三十年 일본군이 습격하다 (731)
三十年 백관이 거노를 쏘는 것을 보다
三十一年冬十二月 사공 등을 장군으로 삼다 (732)
三十二年秋七月 당 현종이 군대를 요청하다 (733)
(자료 : 성덕왕, 삼국사기, 나무위키)
그리고 경덕왕 시기에도 742년, 753년 일본의 사신을 접견하는 것을 거절할 정도로 양국 관계는 긴장관계에 있다.
《삼국사기》 경덕왕 본기
一年夏五月 경덕왕이 즉위하다 (742)
一年冬十月 일본국의 사신이 왔으나 받아들이지 않다
............
秋八月 (753) 일본국 사신이 왔으나 접견하지 않다
(자료, 경덕왕, 삼국사기, 나무위키)
그리고 신라는 애장왕 시기 803년에 가서야 일본과 우호를 맺는다. (아래 자료 참조). 802년 기록에는 왜가 언급된다. 즉 일본과 왜를 구분해서 언급했다는 것은 이들이 동일체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당시 탐라국이 조공을 받쳤다(801년)는 기록은 신라가 인도양에 있는 탐라국(필자는 스리랑카로 추정)까지 미치는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신라는 인도양을 거쳐 태평양에 이르는 세력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二年冬十月 탐라국에서 조공을 보내다 (801)
...........
十二年三年秋八月 가야산 해인사를 창건하다 (802)
三年秋八月 삽량주에서 붉은 까마귀를 진상하다 (802)
三年冬十二月 균정을 왜에 인질로 보내려 하나 사양하다 (802)
四年夏四月 왕이 남교에 가서 보리 농사를 살피다 (803)
四年秋七月 일본과 우호를 맺다 (803)
四年冬十月 지진이 일어나다
五年春一月 수승을 시중으로 삼다 (804)
五年夏五月 일본이 사신을 파견해 황금을 바치다 (804)
.....
七年春三月 일본 사신이 와서 만나다 (806)
七年春三月 사찰 창건과 불사에 대한 금령을 제정하다
七年春三月 김헌충이 당에서 귀국하다
七年秋八月 사신을 보내 입당 조공하다
八年春一月 김헌창을 시중으로 삼다 (807)
八年春二月 왕이 숭례전에서 주악을 감상하다
八年秋八月 큰 눈이 내리다
九年春二月 일본에서 사신이 오다 (808)
(자료 : 애장왕(800-809), 삼국사기, 나무위키)
VI. 맺음말
신라의 동해가 태평양이라면, 태평양 건너 록키산맥에 있는 장인국이 신라의 동쪽 끝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만큼 신라의 대양을 건너는 해양 능력이 강했다는 의미이다. 물론 베링해 연안을 통해 북아메리카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나라 시절부터의 항로를 보면, 태평양을 건너 가는 여정도 있었다고 판단된다. 물론 중간 중간에 폴리네시아 섬에 의지하는 항로였을 것이다. 즉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고대인들은 해상무역에 진출했고, 상나라가 부여로 이어지고, 부여가 고구려, 백제로 이어지는 것을 고려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많은 해상활동을 통해, 지중해, 인도양, 태평양, 대서양을 누빌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발틱해를 건너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토욕혼의 포루투갈까지 이른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고구려 유민이 이동한 돌궐이 바이킹세력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 바이킹 세력은 북해, 발트해, 지중해, 흑해를 누볐다. 부상국의 대대로 직분을 고려하면, 고구려도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까지 진출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백제의 세력인 로마도 인도양에까지 무역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스리랑카 지역에 탐라국이라는 속국을 두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여러 백제 흔적은 백제의 22담로 중의 하나일 것으로 판단된다. 즉 백제도 태평양까지 진출했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백제가 아메리카까지 진출할 수도 있다. 서부아메리카의 불교 흔적은 백제 또는 신라가 전파한 것일 수 있다.
신라는 고구려 일부와 백제를 통합한 국가이다. 따라서 백제의 영토를 흡수했을 것이며, 결국 신라도 동해인 태평양까지 진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석굴암과 유사한 불상이 그랜드캐년에 존재한다는 것은 신라가 이 지역까지 진출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볼 때, 신라의 동쪽 끝에 있다는 장인국이 록키산맥에 있으며, 신라가 북아메리카의 서부에 진출했을 수 있다는 추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당나라 사람들이 해안에 접해서 거인들을 만났다는 기록은 비록 야화이지만, 1500년경 스페인 항해인들이 해안에서 살아 있는 거인을 보았다는 기록은, 멕시코지역의 거인유골 등을 고려할 때, 대서양쪽의 멕시코 해안일 가능성이 충분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설화에 의지한 장인국 자료이지만, 거인들에 대한 21세기까지의 여러 기록들을 고려할 때, 설화로서 끝나지 않는 역사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따라서 신라의 동쪽 끝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서쪽일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필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한반도의 한국사관과 중공지역의 중국사관이 틀렸다는 것을 밝혔다. 아래 자료를 첨부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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